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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에비타’, 70년전의 아르헨티나와 오늘의 대한민국
뮤지컬 ‘에비타’, 70년전의 아르헨티나와 오늘의 대한민국
에비타. 오늘은 한때 아르헨티나의 국모(國母)로 추앙받던 '에바 페론'의 별칭인 'EVITA'의 뮤지컬 이야기로서 주요 출연자는 '대통령:후안 페론' '영부인:에바 페론' '이야기꾼:체 게바라'이다. 참고로 Evita는 ‘Little Eva’의 아르헨티나식 줄임말이다. 1952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담배연기 가득찬 어느 영화관. 갑자기 영화상영이 중단되고 '에바 페론'의 서거가 발표되는데 수많은 국민들은 슬퍼하고 그 모습은 어린시절 에바 페론의 부친장례식과 오버랩 되고 다시 그녀의 장례식 모습으로 이어진다. 근현대사에서 가장 극적인 신분상승의 신데렐라 스토리. 15세때 연예인의 꿈을 꾸며 고향을 떠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상경하지만 겨우 클럽댄서로 일하게 되는 그녀. 성공을 위해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남자들을 그 수단으로 활용하고 결국 모델과 성우 그리고 배우를 거쳐 방송계로 진출한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쿠테타로 연이은 정국불안이 계속되었고 이때 '후안 페론'이 국민적 지지를 받게 되지만 그 상승세는 예측하지 못했던 전국적인 큰 지진으로 묻혀진다. 바로 그때 '후안페론'은 기금모금 이벤트에 유명 인사를 초청하는데 거기서 두 사람의 만남이 우연히 이루어지고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아르헨티나 현대사의 순간순간들. 1920년대 봉건적인 체제를 유지했지만 세계 4대 경제 강국이었던 아르헨티나는 미국 대공황의 영향으로 극심한 빈부격차와 노사갈등을 겪게 된다. 당시 군인출신 노동부장관이었던 '후안 페론'은 반정부활동으로 감옥에 가고 시위 노동자의 석방은 총체적인 난국을 풀어가는 열쇠였는데 이때 '에바 페론'의 라디오 연설이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정치범 후안 페론이 감옥에서 풀려나고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린다. 연이은 희소식이 들려오는데 후안페론이 대통령 당선되고 곧이어 에바 페론은 26세에 영부인이 된다. 그리고 그녀는 대통령 영부인이란 지위를 이용해 파퓰리즘 정책의 선봉에 선다. 가난한 국민들을 위한 재단설립, 여성인권신장을 위한 사회운동, 유럽외교의 상징적 인물, 복지노동성 장관 취임 그리고 부통령으로 추대. 그러나 그녀에게는 이런 조롱이 언제나 따라다녔다. '거룩한 악녀(惡女)이자 천박한 성녀(聖女)'. 열정적으로 경제적 하위층과 어린이들을 위해 헌신했던 영부인 에비타는 수차례 유산을 겪기도 하고 암세포가 점점 퍼지면서 공무수행 중 쓰러진다. 가상의 상상 속에서는 이야기꾼으로 등장하는 '체 게바라‘ (의사출신으로 제국주의 배척의 혁명가)와 왈츠를 추는데 마치 죽음을 암시하듯 지나건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고 마치 예언처럼 그녀의 자서전 ‘내삶의 이유’에서 나온 사건들이 하나둘씩 포개진다. (사진:malvern-theatres) 지난 수년간 세상 밖으로 밝혀지진 않게 꼭꼭 감춰놨지만 소녀시절의 성폭행과 그리고 삼류 창녀로 살아온 그녀의 인생을 아르헨티나의 경제적 사회적 기득권자들은 잔인할 정도로 조롱한다. 병원에서 돌아온 그녀는 국민 앞에서 노래로 마지막 연설을 하는데 이 노래가 바로 Don't cry for me Argentina.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난 이렇게 변화를 가져와야 했어요. 밑바닥 인생으로 나를 내버려둘 수는 없었어요. 난 자유를 선택했고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답니다.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지금까지의 힘든 나날 속에서도 우리들은 그 약속들을 지켜왔습니다~~. 국민들의 추모열기 속에서 그녀는 33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작사가 ‘팀라이스’ ‘작곡가 엔드류 로이드 웨버’, 두 천재 음악가는 의기투합하여 이 작품을 뮤지컬로 만들고 이후 이 이야기는 영화로도 제작된다. 비하인드 스토리, 영화의 주인공으로 '마돈나'가 낙점 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20년동안 영화제작을 준비하면서 언제나 에바 페론 역의 1순위는 ‘메릴 스트립’ 이었다고 한다. 1947년에는 스페인의 철권 독재자 '프랑코'가 에바 페론에게 스페인 최고훈장인 '이사벨라 십자훈장'을 수여했는데 모든 각료와 언론이 반대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그러나 젊은 미녀 에비타에게 반한 프랑코가 강력하게 추진하여 수여했다고도 한다. 그녀는 퍼스트레이디로서 엄청나게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정치인과 기업가들의 부인들로 구성된 사교모임에서 회원 가입을 거부당해 한동안 갈등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그 사교모임의 회장은 대통령영부인이 한다는 조항이 만들어 지고 그녀는 회장이 되지만 짧은 가방끈과 떳떳하지 못했던 그녀의 지난 인생은 늘 스트레스였다고 한다. 하지만 '크리스찬 디오르' 같은 유럽의 디자이너들이 가장 선호하는 모델이었으며 그래서 옷과 구두 장신구 보석등을 가장 먼저 착용하는 호사를 누렸다고 한다. 미국이 개입한 군부 쿠테타에 의해'후안 페론정부는 순식간에 무너지는데 에바 페론이 사망하고 미국은 그녀의 흔적을 지우려고 그녀의 시체를 이탈리아에 16년이나 숨겼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의 시신은 고향의 허름한 공동묘지로 돌아가게 된다. 70년전의 아르헨티나와 오늘의 대한민국. 단순하게 비교하기에는 많은 차이점들이 존재하지만 미국이라는 나라의 존재와 더불어 권력의 중심에 서 있었던 한 여성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너무나 닮은 점이 많다. ‘대한민국이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의 논리전개는 가능할 것인가.
소설보다 소설 같은 시대, 소설 쓰시네!
소설보다 소설 같은 시대, 소설 쓰시네!
소설을 하나 쓴다고 생각해 보자. 소설 속 주인공은 엄마와 중학생 아들이며 배경은 아들이 공부는 안 하고 나쁜 짓만 하고 다녀서 엄마의 속을 썩이고 있는 상황이다. 어느 날 아들 녀석이 술을 진탕 처먹고 새벽에 집으로 기어들어 오다가 거실에서 잠 못 자며 기다리던 엄마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 인사불성이 되어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아들내미의 꼴을 보다 못한 엄마가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이 망할 놈의 자식, 애미가 제 명에 못 살겠으니 나가서 죽어 버려!" 분을 참지 못한 엄마는 고함을 치고 나서 그만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고 놀란 아들이 구급대원을 불러 실신한 엄마를 병원으로 실어 날랐다. 병상에 누워 잠든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던 아들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참회의 감정이 북받쳐 오르더니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병실을 떠났다. 지금까지 자신이 저질렀던 불효막심한 언행들이 떠오르며 자책감에 괴로워하던 아들은 엄마가 자신에게 바랐던 염원대로 한강으로 가서 투신하여 그만 뒈져버리고 말았다. 이 황당무계한 결말의 소설은 비극인가, 아니면 희극인가?나는 조심스럽게 '총체적 난극'이라고 칭하고 싶을 뿐이다. 앞서 '난국'이란 표현 대신에 '난극'이라고 의도적으로 표기한 이유는 일종의 수사법(레토릭)이라고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앞서 희'극'과 비'극'이란 단어가 나왔으니 재미와 의미를 포섭하기 위해 이미 있던 용어인 (총체적) ‘난국’을 ‘난극’ 비틀어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강조하려고 하는 글쟁이의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가와 같이 글 짓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이들은 목수가 나무를 가지고 작업을 하듯 요리사가 물과 불로 음식을 만들듯 언어를 가지고 논다. '가지고 논다'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글을 짓는 데 있어서 흑백논리 같은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소명이 있다는 뜻이다. 소설에서 작가적 상상력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독자들이 그 상상력의 날개에 올라타서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고 경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이란 장르는 팩트를 공정하게 전달하는 기자들의 뉴스 기사와 다르고 내각의 책임자인 장관과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에서 질의와 응답을 하는 논쟁과도 다른 것이다. 지난주에 법무부 장관을 불러다 놓고 법사위원 중 한 명이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는데 듣다 못한 장관이 "소설 쓰시네"라며 일침을 놓았다. 장관으로선 있지도 않은 사실을 끌어다가 논증의 근거로 삼으려는 질의자의 태도가 심히 못마땅했을 터이고 국회의원의 처지에선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답변자의 태도에 발끈할 수도 있었다고 본다. 여기까지야 지금껏 늘상 봐왔던 국정감사장의 인신공격성 감정싸움의 흔한 풍경이었는데 느닷없이 소설가 협회에서 성명을 발표하면서 희극인지 비극인지 모를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협회는 "한 나라 법무부 장관이 소설을 '거짓말 나부랭이' 정도로 취급하는 현실 앞에서 ‘문학을 융성시키는 일은 참 험난하겠다는 생각을 했다’라며 자신들이 상처를 입었다"라고 주장했다. 많은 사람이 이 성명을 전해 듣고 씁쓸한 기분이 들며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왜냐하면 '소설(을) 쓰다'라는 수사적 표현은 이미 언중들에게 '지어내 말하거나 거짓말을 하다'라는 뜻으로 통용이 되어 굳어져서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도 관용구로 등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지의 소치라고 한다면 부끄러운 일이고 피해 의식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어를 가지고 즐겁게 놀아야 할 사람들이 뭔가 모를 덫에 걸려 상상력이 거세되고 창작자로서 지녀야 할 마음의 여유마저 상실한 듯하여 보는 입장에서 짠하기도 하고 서글퍼지기도 했다. 그건 마치 이 글의 첫 부분에서 인용한 이야기에 나오는 '비장한 마음을 지닌 채 한강으로 투신해 버린 아들 녀석'을 바라보는 독자의 소감과도 같은 느낌이라고 말하고 싶다. 동시대의 희로애락을 다루며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며 존경과 사랑을 받던 소설이란 문학 장르가 점점 과거의 명성과 지위를 잃고 뒷방 늙은이처럼 쭈글쭈글해지는 현상을 목도하게 된다. TV와 영화가 등장하며 자리를 내주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디지털 미디어의 영상 콘텐츠 등에 영향력을 뺏기면서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취미란에 <독서>라고 기재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사흘을 3일이 아닌 4일이라고 착각하는 언중들은 A4 한 장도 안 되는 길이의 텍스트를 스마트폰 기기에서 읽어 내리는 일도 버겁고 거추장스럽게 여기게 되었다. 그뿐인가, 없는 일을 있는 것처럼 그럴듯하게 꾸며서 흥미를 자극하는 상상력으로 치자면 소위 말하는 '기레기'들께서 그 능력과 소양을 마음껏 유감없이 발휘하는 현상도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자본이 언어를 대신해서 최고의 권력으로 군림하는 시대에서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한국에서 가장 소득이 낮은 직업' 9위에 속한 소설가들은 이제 자부심도 함께 바닥으로 처박히게 된 것일까? 법무부 장관의 발언에 "놀라움을 넘어 자괴감을 느낀다"라느니,"소설가들의 인격을 짓밟는 행위"라는 듣기 민망하고 옹색한 논평 대신에 "장관님께서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요즘은 기자들께서 소설가들보다 더 실감 나게 이야기를 잘 만드시고 계시니 다음부터는 차라리 '기사 쓰시네~'라는 표현으로 바꿔 보시는 게 좋겠다“라는 자신만만한 레토릭으로 받아칠 수는 없었을까? 천박하고 졸렬함이 넘실대며 우리들의 언어를 훼손하고 손상시키는 세태에 맞서 통렬한 한 방을 먹이는 여유 따위는 이제 문단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사치가 돼버린 것일까? 소설을 좋아하고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정신 못 차리고 방황하며 일탈하는 아들 녀석을 바라보는 엄마의 심정으로 한마디 하고 싶을 따름이다. "괜히 무게 잡고 그 자리에 계시지 말고, 그냥 조용히 물러나 어디 가서 묫자리 알아보시라"라고. (그렇다고 진짜로 어디 가서 뒈지지는 마시고)
송추(松楸) 가마골
송추(松楸) 가마골
최근 방대한 고깃집 식당을 가진 가마골이 공익 제보로 사회 뉴스가 되었다. 송추 가마골? 양주 송추(楊州松楸)라는 그림이다. 서쪽 양주 고을 송추에는 소나무와 가래나무가 가득 심어져 있다. 정선의 손자 정황(1737~19세기)이 바로 이곳 송추를 그렸는데 양주 송추이다. 얼핏 보면 빼어난 산수화로 보이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희귀하고 기이하고 신비하기까지 하다. 산줄기를 온통 채우고 있는 무덤 앞 비석들이 보이고 화폭 왼쪽에 도봉산 바위도 보인다. 노란 단풍으로 물든 나무들은 송추할 때 ‘추’(楸子木)인 가래나무이다. 옛부터 묘 주변에는 가래나무. 소나무를 식목했다. 해서 한식 추석 때 벌초 시기가 되면 인사말로 추행(楸行) 하셨습니까?라고 묻곤 했다. 불광동에서 박석고개를 넘어 한참을 가다 보면 일영. 송추를 만난다. 이곳 장흥면 일대는 워낙 풍수가 뛰어난 길지(吉地)로 왕실이나 판서들 묘소가 즐비하다. 그림 무덤에서 성묘하는 사족(士族)들이 가마타고 드나들다 보니 이 지역을 ‘가마골’이라 했다. 또 상여에서 송장이 굴러 떨어져 ‘송장골’이라고도 했다. (사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지금은 유원지로서 학창시절에는 서울역 뒤편 서부역에서 교외선을 타고 MT를 다녔던 송추역도 있었다 권율장군 묘도 이곳에 있고 7일간의 사랑. 중정반정으로 폐위된 단경왕후 ‘온릉’도 고갯마루 아래 있다. 지봉유설(芝峰類說)의 이수광 묘도 자리잡고 있다.
이것도 노래야! ' 가곡 ‘명태’의 황당한 탄생비화
이것도 노래야! ' 가곡 ‘명태’의 황당한 탄생비화
(유튜브 캡쳐) "이것도 노래야?" "집어 치워!" "이거 코미디에요. 코미디". 20여년의 세월이 지나 캐비넷에 처박힌 휴지조각에서 대박으로 화려하게 변신한 가곡이 있었으니 바로 '명태'의 이야기다. 오늘은 우리나라 가곡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하는데 M 방송사에서 ‘가을맞이 가곡의 밤’을 수차례 맡았었는데 그러다보니 가곡에 대해 많은 애정도 갖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여기저기 불만 담긴 아쉬운 마음도 생겼다. 긍정적으로 보면 우리의 정서를 잘 갖고 있는 문화유산이고 부정적으로 보면 일본 가곡의 표절 퍼레이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일파' 같은 편가르기가 아니고 그냥 복제품 수준의 가곡은 참으로 많다. 마치 역사가 100년이 넘는다고 자랑하는 학교들의 교가는 상당부분 일본의 유명 고등학교 교가와 비슷비슷한데 아마 전수 조사를 해보면 끔찍할 것이다. 가곡 또는 예술가곡은 유명 시인의 멋진 시에 곡을 만든 그런 형태의 노래로 독일어로는 리트(Lied)라고 한다. '괴테'나 '밀러' 등이 지은 시에 '슈베르트' '슈만' 등이 음률을 달아 멋진 노래로 만든 것이다. '명태' 이곡은 부르기 어려운 노래다. 부를 수는 있어도 그 맛과 드라마틱한 느낌을 故 '오현명'선생 만큼 표현하기가 절대로 쉽지 않기에 '명태'는 수많은 바리톤 가수 들의 희망이자 ‘넘을 수 없는 '벽'이다. 그래서 출연섭외가 너무 힘들었는데 이유는 아무리 잘 불러봐야 흔한 말로 중간밖에 못가기 때문이다. 노랫말도 해학이 넘치고 '권주가'로도 손색이 없는 대한민국 대표 가곡으로 육군 종군작가였고 서울대 국문과 교수를 역임했던 작사자 '양명문'님의 시를 보면 검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지어 찬물을 호흡하고, 길이나 대구리가 클대로 컸을 때 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치고 춤추며 밀려다니다가...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살기 좋다던 원산 구경이나 한 후 이집트의 왕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 늦게 시를 쓰다가 소주를 마실 때 카아~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짜악 짜악 찢어지어 내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 명태~~라고 으허허허허허~~이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이 시에 한국전쟁 당시 국군장교였던 '변훈'님이 곡을 붙여 가곡으로 만드는데당시에는 생소한 형식 그리고 돌연변이 같은 음악으로 지독한 혹평을 받는다. 또한故 오현명선생(1924년 출생) 역시 국군정훈음악대에 있을때 '변훈'으로부터 이곡을 받아 몇번 불렀는데 엄청난 혹평을 받는다. 작곡가 '변훈'은 하도 낙담해서 직업을 바꿨고 28년간 포르투갈 대사 등 외교관으로 변신한다. 1952년에 당시에 음악평론 의 대가였던 이성삼선생이 연합신문에 '이것도 노래라고 발표를 하나...' 혹평한 얘기는 유명하다. 이곡의 악보는 약20여년간 캐비닛에 묻혀 있다가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대학생들과 함께 한 음악회에서 ‘오현명’에 의해 ‘번외곡’으로 다시 불리우게 되고 거기서 대박이 난다. 기존의 형식을 뛰어 넘은 신선한 가사와 멜로디에 젊은층들이 열렬히 환호했고 그때부터 '명태'는 언제나 빼놓을 수 없는 우리 가곡의 중요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한다. 음악 평론가 서우석선생이 문예중앙 80년 겨울호에서 극찬을 하는데 그래서 80년대부터 소위 인기가곡으로 빵! 터지게 된다. (사진: 한국소방안전원 웹진) 이젠 지구 온난화현상으로 인해 동해에서 명태가 거의 안 잡힌다. 봄에 잡으면 춘태, 가을에 잡으면 추태, 그물로 잡으면 망태, 낚시로 잡으면 조태, 새끼 명태는 노가리, 갓 잡은 살아있는 명태는 생태, 얼린 명태는 동태, 일반 건조하면 북어, 반쯤 말리면 코다리, 얼렸다 녹였다 반복해서 말리면 황태. 첼로의 묵직한 스윙이 바닷속의 명태가 이리저리 떼지어 헤엄치는 모습을 표현하는 전주로 시작하는 가곡 '명태'. '명태'에 참으로 많은 이름이 따라 다닌다. 한국인의 밥상에 가장 많이 올렸던 생선임을 증명하듯이...
애도, Make your choice!
애도, Make your choice!
서울 시장이 죽었다. 자연사가 아닌 급작스러운 자살 뉴스에 시민들은 혼란과 당혹감에 빠지고 말았다. 수년 동안 지속해서 성추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고소한 피해자가 있었기에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망자를 두둔하려는 측과 비난하려는 측이 서로 팽팽하게 대립하며 설전을 벌이고 있다. 개인의 죽음 앞에서 그의 정치적 과업에 대한 평가와 애도를 표하는 방식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는 지금, 나는 과연 어떤 식으로 입장표명을 해야 할지 난감하다. 여권의 대선주자라고 하는데 나는 그를 후보로서 선호하거나 지지하는 편은 아니다. 서울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2년 전인 지난 지방 선거에서 그에게 비록 한 표를 행사했지만, 그건 내가 지지하는 정당의 대표로 그가 출마했기 때문이었다. 조금 길게 보자면 지난 2016년 겨울, 적폐 청산을 위한 대통령 탄핵 집회에서 길거리 연설을 하는 그를 직접 지켜본 적이 있었다. 당시 대중 연설에는 능하지 못해 보이는 그의 모습 때문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조금 안쓰러운 느낌마저 받았다. 그가 서울 시장의 자리에서 단호하게 시민의 편에 서서 광장을 열어주고 화장실 등 편의 시설을 개방해 준 덕분에 기본적인 호감과 감사를 지니고 있었지만 말이다. '시민운동 1세대'로 시민 단체의 전성시대를 주도하며 이 땅의 풀뿌리 민주화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나, '권인숙 성고문 사건'을 비롯해 인권(특히 여성 인권)을 수호하는 인권 변호사의 면모들은 그저 말로만 전해들은 이야기라서 피부에 와서 닿는 감흥이 나에겐 없다. 그렇다고 해서 고인이 위선적인 모습으로 피해 여성을 괴롭히며 가해를 가했다는 주장에도 선뜻 허탈감이나 배신감에 치를 떨고 싶은 마음도 일어나지 않는다. 사건은 이제 막 고소 접수가 되었고 향후 법정 공방을 통해 실제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진위가 가려질 것이기에 비난해야 한다면 그 이후로 보류하며 지켜보고 싶을 따름이다. 굳이 사법절차가 아니더라도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하면 이후 어떤 형태로든지 진실을 밝히기 위한 행위들이 멈추지 않고 지속될 것으로 생각한다. 결국 세간의 설왕설래에 휘둘리지 않고 내 안의 심정을 바탕으로 조촐하게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면 되는 일인데 왜 이리 마음 한편이 찜찜하고 불편한 기분이 드는 것일까? 그건 바로 세간에서 떠들어 대는 사람들의 세 치 혀가 칼날과도 같은 비수가 되어 허공으로 날아가 누군가의 가슴에 꽂히는 일들을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극 영화 등에 보면 전쟁터에서 양국이 대치하며 진을 펴고 있다가 화살이며 화염 포며 총을 난사하며 아수라장이 펼쳐지는 장면을 보게 된다. 시대가 바뀌면서 전쟁터는 이제 온라인으로 장소가 바뀌었고 그곳에서 원색적인 비난과 협박과 근거 없는 흑색선전과 가짜 뉴스들이 판을 치고 있다. 그냥 온라인 게임처럼 킬링타임용으로 즐기다가 로그아웃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좋을 텐데 마치 실제로 길거리에서 치고받는 폭력 행위처럼 사람들이 서로 상처를 받는다. 그 꼴이 보기 싫다고 하여 외면하면 그만일 텐데 사람들과 더불어 숨 쉬며 살아가는 세상이라 그럴 수도 없고 이제 더는 '정.알.못'이나 '정치 혐오론자'로 살지는 않기로 결심했기에 그마저도 길이 막혔다. 누구도 내게 견해를 밝히라고 강요하지는 않지만 내 안에서 올라오는 음성이 '그래도 뭔가 네 의견을 말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압박을 가하는 듯하여 가슴이 답답하기까지 하다. 그 음성을 번역해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명령과도 같은 말이다. "Make your choice!" (선택을 하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도 모르게 그만 피식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이 유명한 대사는 헐리웃 영화 등에서 악당들이 자주 하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다리를 갖고 뭍으로 나가고 싶다는 인어공주에게 바다의 악녀 '우르줄라' Ursula가 목소리를 담보로 계약을 하자며 밀어붙였던 말이고 ‘배트맨, 다크 나이트’에서 희대의 악당 조커가 시민이 탄 배와 죄수들이 탄 배에 각각 폭탄을 설치하고 상대방의 배를 먼저 폭파하지 않으면 모두 죽을 것이라고 협박을 하며 강요했던 전략이기도 했다. 멀리 보자면, 예수라는 사내가 광야에서 40일 동안의 금식을 통해 자신에게 부여된 신의 소명을 인식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사탄이 찾아와 그의 귓속에 속삭였던 말도 결국은 '(나에게 무릎을 꿇고 세상의 권세를 얻을지 말지를) 선택하라!'였다. 필자는 최근에 지방 출장 공연을 업으로 삼고 있는 음악 밴드의 리더로부터 아주 기묘한 애도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들을 수 있었다. 시골 어느 마을에 노인대학 졸업식이 있었고 인구가 거의 없는 그곳에서 일 년 중 가장 성대한(?) 졸업식 행사가 기획되어 그 밴드는 초청 공연을 의뢰받아 새벽부터 세 시간 넘게 운전을 해서 내려갔다고 한다. 그런데 하필 행사 당일 아침에 노인대학 수료생 중 한 분이셨던 할머니께서 집 앞 노천에서 변사체로 발견되는 바람에 마음에 도착하니 분위기가 뒤숭숭한 상황이었다. 자연 사고사인지 타살인지 밝히려는 경찰의 탐문 수사에 협조하기 위해 마을 회관에 모여 계시던 노인들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는 무거운 분위기에서 수군수군하며 심경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말소리가 점점 커지고 다들 자신들의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지게 되면서 갑자기 어느 한 분께서 기가 막힌 멘트를 날리시고 말았다. "아니 그 할망구는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니고 왜 하필이면 오늘 뒈지고 말았데?" 그 말을 듣고 있던 밴드의 리더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어서 그저 헛기침만 하고 말았다면서 그때의 난감한 심정을 담담하게 들려주는 것이었다. 결국 마을 이장님께서 멀리서 손님을 부른 마당에 행사를 취소할 수는 없으니 당일 행사는 예정대로 진행하고 다음 날 아침에 상가에 문상하러 가는 것으로 결론을 내려서 밴드는 행사비를 받고 귀경했다는 말과 함께. "저는 그분들의 마음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이번 행사가 취소되면 내년을 기약해야 하는데 그때에는 거기 모이신 분 중에 어느 한 분도 확실하게 살아계실 거란 보장이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분들은 그날 흥겹게 노래하고 춤추며 놀았고 아마 다음날엔 상갓집에 가셔서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며 애통해하셨을 게 틀림없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흑백 논리로 무장하고 적인지 아군인지 태도를 분명하게 밝히기 어려운 일도 벌어지게 마련이다. 사람은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 시장의 자리에서 돌연 불의의 객이 된 고인에게 어떤 자세로 애도를 표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나는 차라리 어느 한 편에 서서 애도의 행렬에 참여하는 대신에 애도하는 일을 멈추고 그저 그 행렬의 끝에 어떤 묘지가 나타나는지, 그리고 그 무덤의 묘비명에 어떤 말들이 새겨지는지 마지막까지 지켜보며 그에 맞춰 고인에 대한 예의를 갖추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