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한국인기사 판소리 중흥의 시조, 동리 신재효(1812-1884)2021/06/20 신재효(申在孝)는 조선국 가선대부, 오위장 등을 지낸 조선 말의 판소리 연구가, 판소리 작가, 문신이다. 전라도 고창현(지금의 고창군) 출생. 자(字)는 백원(百源), 호(號)는 동리(桐里)•호장(戶長)이고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신재효는 판소리를 최초로 집대성하고 체계화한 구한말 판소리 중흥의 시조이다. 전북 고창에서 천석꾼 부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재력을 활용해 팔도의 예인(藝人)들을 불러모아 후견인 역할을 하였다. 전설적인 명창으로 꼽히는 김세종, 이날치, 최초의 여류명창 진채선 등이 그의 지도와 보호 아래서 예술혼을 꽃피웠다. 끝까지 조국을 그리며 잠든 세계적 현대 음악가 윤이상(1971~1995)2021/04/30 윤이상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현대음악가이다. 서양 음악에 동양적인 요소를 입힌 도교와 불교를 소재로 하는 곡이 많다. 그는 서양음악의 기교와 스타일, 한국전통음악 '아악'의 미학논리를 통해 만들어낸 자신의 고유의 음을 융합시켜 전혀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냈다. 동양 도교사상의 음양의 원리가 적용되면서 부분 속에 전체를, 변화 속에서의 동질성을 추구하는 그의 음악세계는 서구의 예술세계에 새로운 충격을 주면서 현대음악사의 한 획을 그었다. 특히 두고 온 고향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나라를 빼앗긴 일제로부터 분단까지 우리 민족의 고통과 희망은 그의 예술을 관통한 주요한 주제였다. 윤이상은 1917년 9월 17일 경상남도 산청에서 태어나 1... 조선 영화계의 위대한 개척자, 춘사 나운규(1902-1937)2021/04/05 춘사 나운규는 일제강점시기에 활동했던 한국영화의 선구자이다. 그의 영화사적 위치는 그대로 한국영화의 성장과정이라 보아도 틀리지 않는다. 나운규는 함경도 회령에서 태어났다. 1918년에 만주 간도의 명동중학에 입학했지만 일제에 의해 학교가 폐교되면서 만주를 떠돌며 독립운동을 하다가 잡혀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출감 후 1924년 부산으로 내려가 조선 키네마주식회사의 연구생이 되었다. 윤백남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연기력을 인정받아 일약 명배우가 되고 독립운동을 배경으로 한 저항적인 작품 '아리랑'을 직접 쓰고 감독, 주연을 맡는다. 1927년에 나운규 프로덕션을 설립하고 '옥녀', '벙어리 삼룡' 등을 만들어 예술적 성취와 대중적 인... 생전에 못 받은 조명 사후에야 받은 박수근화백2021/03/08 박수근(朴壽根, 1914.2.21~1965.5.6, 서양화가, 호는 美石)은 유화로서 가장 한국적이고도 독자적인 조형세계를 펼친 한국화단의 거목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생전에는 조명을 받지 못하다가 사후에 재평가를 받으면서 명성을 얻었다. 그의 작품 속에서는 화려하고 다채로운 요소를 찾을 수가 없다. 무채색계열의 채색은 둔중하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그의 화폭은 저항감 없이 한국인의 가슴에 파고드는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났다.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가세가 몰락하자 진학을 포기하고 독학으로 그림공부를 시작했다.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에 당선된 후 화가로서의 기반을 닦았다. 이후 1... 한국 전통무용 기틀 마련, 장단과 가락을 무대화한 대가, 한성준2021/01/29 한성준(韓成俊, (1875-1942))은 우리 춤과 장단, 가락을 무대화하고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장본인으로서 한국 전통무용의 기틀을 닦은 대가이다. 그는 진지한 연구와 탁월한 예술성으로 역사적으로 전해오고 있던 춤을 체계화, 민간에서 민중들이 하던 일상적인 일의 몸짓, 생활습속 등이 어우러진 민속예술을 기반으로 하여 무당, 광대 등 천민계급의 재인활동에 궁중무악요소까지도 수렴해 체계화했다, 또한 학춤을 비롯한 여러 전통무용은 민족적 전통과 유산에 대한 자각을 불러일으켰으며 봉건주의 사상이 기조를 이루던 전통무용의 관념을 바꾸어 놓았다. 처음 1 2 3 4 5 맨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