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성공회 인천내동교회
본래 이곳은 영국병원(성누가 병원) 이었으나 근처에 있던
성공회 교회가 불타버려 이곳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랜디스 박사는 최초 처음, 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선구자적인 인물이다.
1894년 4천464명의 신규 외래 환자와 방문 치료를 하기에 이르렀다.
인천에서 최초 영어학교. 시민들과 외국인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었으며
고아를 데려와 최초의 고아원을 창시했다.
성누가병원 입주일에 그는 성누가병원 이름은 한국인에게 별 의미가 없다며
뛰어난 한자 실력으로 낙선시의원(樂善施.
선행을 함으로써 기쁨을 준다는 이름)으로 간판을 달았다.
시람들은 그를 ‘大人’ 으로 높여 불렀으며 랜디스는 헌신적으로 환자를 돌보다
결국은 장티프스에 걸려 32세로 요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