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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십리(往十里), 왕심리(旺深里), 왕심리(旺心里)
내 어릴 적 별명이 ‘왕십리 똥파리’ 였다. 왕십리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어릴 때는 그 이유를 몰랐다. 커서 안 이유가 왕십리엔 파리가 들끓어서. 생각해 보니 일대에 채소밭이 많았고 인분을 거름으로 그 곳에 뿌렸으니 당연히 파리가 많았다. 당시에 사대문 안에는 전차가 다녔는데 왕십리를 다니는 특별히 지나는 전차는 기동차로 불렀다. 시내전차는 객실을 하나로 앞뒤로 두 개 운전석이 있어 앞으로 갈 땐 앞 운전석에서 운행, 뒤로 갈 땐 뒤에서 운행하여 다녔으나 뚝섬이나 광나루에 가는 기동차는 너덧 개의 객차나 화차를 달고 다녔다.
왕십리의 유래는 여러 설이 있다. 고려 말 문인인 이색(1328~1396)의 시문, ‘목은시고’에 무포(務浦)에 와서 배에서 내린 뒤에 남경(南京) 동촌(東村) 왕심리(旺心里) 민가에서 묵었다는 구절에 왕심리라는 지명이 나온다. 따라서 이 때부터 비롯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861년(철종 12) 고산자(古山子) 김정호가 편찬한 대동여지도에는 왕심리(旺深里)라고 표기하고 있다.
또 가장 잘 알려진 무학대사 한양 도읍지 유래가 있다. 무학대사가 계룡산으로 내려가 산세와 지세를 살폈으나 아무래도 도읍지로는 적당치 않았다. 발길을 북으로 옮겨 한양에 도착한 대사는 봉은사에서 하룻밤 묵고 이튿날 아침 일찍 뚝섬 나루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니 넓은 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사방으로 지세를 자세히 살핀 스님은 그곳이 바로 새 도읍지라고 생각했다. 무학대사가 흐뭇한 마음으로 걸어오는데 한 노인이 소를 몰면서 소리쳤다. “꼭 무학 같구나. 왜 바른 길로 가지 않고 굳이 굽은 길로 들어서느냐?” 순간 무학대사의 귀가 번적 뜨였다. 스님은 얼른 노인 앞으로 달려갔다. “노인어른, 지금 소더러 뭐라고 하셨는지요?” “미련하기가 무학 같다고 했소.” “그건 무슨 뜻의 말씀이신지요?”
“아마 요즘 무학이 새 도읍지를 찾아 다니는 모양인데, 좋은 곳 다 놔두고 엉뚱한 곳만 찾아다니니 어찌 미련하고 한심한 일이 아니겠소?” 무학대사는 보통 노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스님은 공손히 합장하고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더 좋은 도읍지가 있으면 이 나라 천년대계를 위하여 일러 주시기 바랍니다.” 노인은 채찍을 들어 서북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서부터 10리를 더 들어가서 주변지형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시오.” 그때 스님이 당도한 곳이 바로 지금의 경복궁 자리 근처였다. 삼각산, 인왕산, 남산 등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땅을 보는 순간 무학대사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만면에 미소를 띠운 스님은 그 길로 태조 이성계와 만나 한양을 새 도읍지로 정하여 도성을 쌓고 궁궐을 짓기로 했다. 노인이 무학대사에게 10리를 더 들어 가라고 일러준 곳은 갈왕자와 십리를 써서 왕십리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소를 몰고 가다 무학대사의 길을 안내한 노인은 바로 풍수지리에 능했던 도선국사의 후신이라 한다. 이런 이유로 왕십리에 속했던 일부지역이 지금의 도선동으로 분할됐다.조선시대 왕십리 일대는 말을 사육하던 마장이었다.(마장동) 이후에는 소를 잡아 도성 안에 공급하는 곳으로 바뀌었다.(우시장) 현재에도 유명한 ‘왕십리 곱창 골목’이 생긴 배경도 이와 관련이 있다. 마장동에 소 도살장에서 싸고 신선한 부위들이 공급될 수 있었기 때문에 곱창골목이 형성될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는 경성(서울) 사람들이 쓸 여러 물자를 생산하고 보관하는 기지 역할을 했고 기와 공장, 석탄 공장, 방직 공장, 주물과 공작기계 공장 등이 골목골목에 들어섰다. 일본식으로 ‘마치코바(まちこうば, 시내에 있는 작은 공장)’라 불리던 이 소규모의 영세 공장들은 해방 이후에는 금형 공장, 자개 공장, 봉제 공장 등이 들어서며 가내공업지대로 바뀌었다.
하지만 가난한 이미지의 과거의 모습이 무색할 만큼 왕십리는 큰 변화를 겪으면서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부상했다. 왕십리역은 1983년 2호선 개통을 시작으로 1995년에 5호선, 2007년에 중앙선과 2012년에 분당선까지 연장 개통되며 교통의 요지 사통팔달의 중심축으로 각광받는 도시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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