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밤섬(栗島) ‘뽕도 따고 님도 보고’

기사입력 2019.09.10 10:14 조회수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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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영화 이야기 하다가 이미숙.이대근 으로 나온 말 후배가 형! 그럼 뽕 소재지가 어디라는 거야? 서강대교 아래 위치한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밤섬이다.  

 

조선시대 밤섬은 뽕나무 천지였다

세종실록을 보면 당시 뽕나무 수 는 8280주 였다고 한다. 밤섬의 토양이 뽕나무에 매우 적합 하다는 기록도 있고 성종 때는 잠실에 심은 뽕나무 묘목을 밤섬에 옮겨 심게 하고 관아의 노비로 하여금 지키게 했다

 

마포강변의 경우 풍광이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했는데 특히 밤섬의 모래밭은 율도명사(栗島明沙)라 하여 마포팔경 중 으뜸으로 꼽혔다. 따라서 마포강변에서 얼큰하게 취한 풍류객들이 하룻밤 풋사랑 나누기 위해 밤섬에 뽕나무 밭 만큼 좋은 곳도 없을 것 이다

 

예로부터 뽕나무하면 유난히 섹스나 에로티시즘의 이미지가 강했다

나도향의 단편소설 에서 유부녀가 남의 뽕을 훔치러 갔다가 뽕지기에게 들켜 정조를 파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작품에서 뽕나무는 물질적 욕구와 탐욕적인 본능을 동시에 상징하고 있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 뽕시리즈는 1980년대를 대표하는 에로티시즘 영화로 인정 받고 있다

일석이조를 의미하는 뽕도 따고 임도 본다는 속담 역시 뽕을 따러 간다는 구실로 맺어지는 

남녀 관계를 암시했다

 

뽕나무 桑자는 3개의 가지가 뻗은 뽕나무의 모양을 본떠 만들어 졌다

남녀 칠세부동석 이라는 유교의 가르침을 철칙으로 삼았던 조선시대는 젊은 남녀가 몰래 만날 만한 장소가 없었다. 따라서 뽕잎을 따던 뽕나무 밭은 이와 같은 최적의 장소였던 것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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