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 역사, 국내 첫 민간 백운산장 3대에서 막 내리다

1924년 1대 산장지기 이해문, 2대 이영구, 3대 이인덕
기사입력 2019.12.09 09:01 조회수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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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백운산장 보존대책위원회)

 

1924년 지어진 국내 첫 민간 산장, 백운산장이 우여곡절 끝에 2019 12월로 95년 역사를 마감했다. 산악인은 물론이고 주말이면 서울 북한산을 찾았던 일반인들도 백운대에 오르려면 누구나 한 번쯤 막걸리 한 잔과 국수로 힘든 산행을 쉬어가게 해 주던 보금자리였다. 그러던 백운산장이 국립공단과의 오랜 소송 끝에 패소하고 현판을 내린 것이다공단 측은 향후 새 단장을 하고 백운대피소로 산악 안내와 특수산악구조대의 근무 공간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백운대와 인수봉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는 백운산장은 1924년 이해문씨가 작은 움막으로 시작한 것이 그 출발이었다. 그 후 이영구씨가 1946년 산장에 들어왔으며 20183일 이영구씨가 87세를 일기로 별세하면서 이인덕씨가 이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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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승용)
 

백운산장이 공단과 소송이 시작된 것은 1992년 등산객 실화로 화재가 발생했고 1998년 기부채납(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무상으로 재산을 증여하는 것)을 조건으로 국립공원관리공단으로부터 신축 허가를 받은 것에서부터 기인한다. 그 후 무상사용기간으로 정한 20년 경과 후 2017년이 되자 공단은 기부채납 이행을 요구했고 산장 측은 민간이 계속 운영하도록 산악인들의 유지 서명으로 맞서자 공단 측이 2017 7월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법원이 2019 5월 공단 승소 판결을 내리면서 2019 122일 민간인 산장의 역사는 막을 내린 것이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2014년 제 12회 소중한 문화유산상으로 북한산 백운산장을 선정한 바 있다. 그리고 백운산장을 사랑하는 산악인들은 서명을 통해 문화재로 남기자고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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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백운산장 보존대책위원회)
 

백운산장에는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백제시대 백운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는데 이 암자터에 이해문씨와 산악인들이 의기투합해 1933년 경성영림소의 묵인하에 지은 것이 역사의 시작이다. 그후 산악인들이 의기투합으로 4년간의 공사 끝에 1960년에 번듯한 백운산장(白雲山莊)으로 완공한다. 이렇게 30년을 지켜왔는데 불행하게도 화재사고를 당한다. 1992 6월 등산객의 부주의로 화재가 발생해 산장지붕이 전소되었다. 이로 인해 한동안 지중에 천막을 치고 운영을 하게 된다.  

 

그러다 지붕보수를 위해 공단 측과 합의를 통해 국립공단 국유지에 건축을 허기하는 조건을 20년 기부채납 약속을 하게 된다. 사실 백운산장은 국내 국립공원 내 유일한 민간산장이고 최초의 민간산장이어서 산악인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유지에 마음을 모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지난 1971 11월 뉴스에도 보도된 인수봉 조난사고는 아직도 산악인들의 기억 속에 있다. 71 11 28일 일요일 많은 암벽등반인들이 올해의 마지막 암벽등반에 나섰다. 변덕스런 산 날씨는 오후 2시부터 갑자기 급강하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바위꾼이 한꺼번에 하강을 하다 보니 일대 혼란이 일어 났고 급기야 자일이 강풍에 서로 엉키면서 참사가 예고되고 있었다.

  

인수봉아래 유일한 쉼터 백운산장지기였던 이영구씨는 인수봉 조난소식을 접하자 즉시 달려가 구조를 시작한다. 50여명에 이르는 조난객들은 강풍과 추위로부터 지키기 위해 불을 피고 뜨거운 물을 주고 구조 활동을 시작한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휴대폰이나 전화가 없어 조난 시 구조와 신고는 오로지 발로 해야 했기에 시간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산장지기의 구조가 이루지는 시간 하산객이 파출소에 도착해 조난신고를 하면서 방송에 조난 사실이 알려지고 오후 9시경이 되어서야 구조대가 구조를 했건만 하강도중 자일이 엉켜 동사한 5명은 끝내 구조하지 못했다. 이처럼 산장지기는 늘 조난에 가장 최전선에 있을 수 밖에 없었다. 1984년 산악구조대가 결성되기 전까지 그는 언제나 백운대 인수종 조난의 든든한 파수꾼이었다.  

 

1965 4 25일 백운산장에서 결혼식을 올린 이영구씨는 2018 9 3887새로 백운산장의 지키는 영원한 혼령이 되었고 민간인 백운산장의 현판은 201 12 2일 그렇게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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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백운산장 보존대책위원회, 고 이영구씨, 부인 김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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