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가는 하늘 도우미, 대통령 염장이로 유명

기사입력 2020.01.01 10:18 조회수 1,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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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연화회 제공)

 

명장을 찾아서(1) 염장이 유재철

 

스스로를하늘 가는 도우미라고 부르는 염장이 유재철.지금은 장례 명장의 반열에 올랐지만 가업을 이어받은 것도 아니고 하고 싶어 이 길을 온 것도 아니었다. 그저 먹고살기 위해 친구따라 하다가 나이 서른다섯에 장의사를 차리며 본격적인 염장이의 소명을 따르기 시작한 것이다.

 

2006 10 22일 최규하 대통령이 서거 때 모신 것이 계기가 되어 노무현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을 연이어 모시면서 대통령 염장이로 불리기 시작해 법정스님 등 큰 스님들의 다비를 모시며 다비식 전문가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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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연화회 제공)

 

유재철명장은 늦깍이 염장이이다. 사회생활 이것 저것 실패를 맞보고 패배의식에서 나이가 들어서 비로소 제 손에 맞는 일을 찾은 것이다. 그러니 절실했고 최선을 다하는 일이 될 수 있었다.

 

명장에게 염장이란 무엇일까? 망자를 마지막으로 고이 단장해 저승으로 보내 드리는 숭고한 예식을 집전하는 사람이 유명장이다. 즉 염습(殮襲)을 해주는 이다. 염은 소렴과 대렴으로 나뉘는데 소렴은 시신을 옷과 홑이불로 싸서 묶는 것이고 대렴은 시신을 묶어서 관에 넣는 것이다. ()은 시신을 목욕시켜 모든 의복을 입히는 것을 말한다. 

 

명장이 대통령 염장이로 불리게 된 계기는 2006년 최규하 대통령 국민장을 모신 이후로 2009년 노무현 대통령 국민장, 2009년 김대중 대통령 국장, 2015년 김영삼 대통령 국가장을 진행하는 등 네 분의 대통령을 모셨기 때문이다. 

 

또한 1996년 일붕 서경보 스님을 시작으로 광덕 스님. 정대 스님, 법정 스님, 대행 선사 등과 최근에는 송광사에서 활안대종사와 봉암사에서 적명스님의 다비식를 봉행해 불교 다비식의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하룻밤을 꼬박 걸리던 다비를 4시간 정도에 해결한 이도 유명장이다. (‘연화 다비’, 기존 다비보다 비용도 저렴하며 석유를 사용하지 않고24시간에서4시간으로 단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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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dPhoto_2019_11_16_12_20_00.jpg                                                                                                                                                                                       중요무형문화재 111호 사직대제 이수자이기도 한 유명장은 염장이라는 업을 최초로 학문으로 쳬계화한 장본이기도 하다. 과거 어느 동네에 있었던 장의사 시절에는 염장이에 대한 거부감도 컸고 개인 교습처럼 도제화 되었었다. 그러던 장례를 유명장이 동국대에 석사 과정인 장례문화학과 개설을 요청해 수학했고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에서 ‘한국의 국가장’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기도 한다. 또한 미국에서‘시신약품처리보존기법(Embalming)’도 배워와 전수하고 있다.

 

유명장은 죽음을 아름다운 이생과의 이별이 되어야 한다며 생전에 자신의 장례에 대해 기록을 남길 것을 권한다. 배우자와 자녀에게 하고픈 말, 유언 및 유언 공증, 보유 자산, 채권 및 채무, 소장품 등도 기록으로 남겨 망자에 대한 추억 모으기를 하라고 한다. 추억이 많을수록 회고의 의미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또 이야기가 있는 장례를 권한다. 유명장의 장모님이 세상을 떠났을 때 가족 중 한 사람인 시인이 시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를 낭송했다고 한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기독교 신자인 큰처남은천국에 잘 도착했으니 울지 말고 잘 놀다 가시라는 어머니의 전화를 방금 받았다고 가족을 대표해 인사했다고 한다.

 

그의 꿈은 우리나라 장례문화를 바꾸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장례문화는 개선돼야 할 부분이 너무 많다고 한다. 상주가 왼팔에 검은 완장을 차는 것은 일제강점기의 잔재며 장례식에서 의장대 운구병이 흰색 마스크를 쓰는 것도 본래 예법에는 없던 것들이다. 영정에 검은 띠를 두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가장 시급히 개선되어야 하는 문제는 장례 의식의 주인공이 고인이 아니라는 점이라고 한다. 장례식장에 가서 절하고 방명록에 이름 적고 돌아오는 추모의 의미는 하루빨리 사라졌으면 했다.

 

죽음을 제대로 준비하고 이해하면 삶을 더 열심히 살 수 있다는 유명장은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살면 세상은 좀 더 아름다워질 거라며 이 세상 마지막 길이 의미있고 기억되는 하늘 도우미로 기억되고 싶은 염쟁이로서의 철학을 조곤조곤 이야기 해주었다.    

 

약 두 시간에 걸쳐 유명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을 들어본다.

 

송귀(松龜) 유재철(兪載喆 

() 대한민국장례문화원 대표 

국가무형문화재 제111호 사직대제 이수자 (2013~)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장례지도사교육원 교육원장

 

동국대학교 대학원 장례문화학과 석사 

동방대학원대학교 문화정보학과 (장례전공) 박사          

 

논문  

‘한국 단체장(團體葬)에 관한 연구’  

‘한국 국가장(國家葬)에 관한 연구' 

 

1994  장례토탈서비스회사 설립   

 

2003  이경해 열사 세계 농민장 (올림픽공원 3만명)  

2003  동국대학교이사장 학교장 /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엠바밍  

2005  () 대한민국 장례문화원 설립 

2006  동국대학교대학원 장례문화학과, F.B.A.과정 강의 

2006  최규하 대통령 국민장 

2008  김형배 한진 부사장 회사장 / 2009 김건배 한진 고문 회사장  

2009  노무현 대통령 국민장  

2009  김대중 대통령 국장 

2010  법정스님 다비진행 

2013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장례지도사 강의. 전임교수 

2015  이맹희 CJ 명예회장 그룹장 / 2016, 2017  1, 2주기 추모식  

2015  김영삼 대통령 국가장 

2017  대한민국 전통장례 명장 1호  

2020~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장례지도사 과정 교육원장

         현재 맞춤장례, 단체장 및 산소작업 등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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