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통과의례 - 상례

기사입력 2020.02.14 23:42 조회수 2,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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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례는 한 개인으로서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통과의례이며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는 산 자와 죽은 자가 영원히 이별하는 분리의례가 된다.

상례는 상중에 행하는 모든 의례를 말하는 것이다. 상례를 중시하는 태도는 죽음을 단절로 보지 않고 또 다른 연장이라고 보는 우리 민족의 인생관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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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조들은 죽음이 아주 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본래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고 인식하여 사람이 죽었을 때 '돌아가셨다는 표현을 쓴다. 돌아가신 어른은 아주 떠나간 것이 아니라 항상 주변에 머물면서 후손의 일을 돌보고 간섭하며 이끌어 준다고 믿는다. 그래서 살아 있을 때나 죽었을 때나 한가지로 공경하고 섬기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했다.
 
상례절차 
죽음이 확인되면 임종을 지켜보던 가족들은 곡을 시작하고 지붕에 올라가서 죽은 이의 옷을 들고 죽은 이의 이름을 세 번 부르며 '()'을 외치는 고복의례를 행한다이는 떠난 혼을 다시 돌아오라고 부르는 의례로 곡과 고복은 마을 사람들에게 죽음을 알리는 구실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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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복의식이 끝나면 미련을 끊고 죽은 이를 반듯하게 해서 목욕시키고 죽은 이와의 관계에 따라 상복을 입게 되는데 이를 '성복'이라고 한다.

 

상복을 갖추어 입으면 정식으로 문상객을 받고 제사상을 차려 놓고 혼을 모시는 제사를 지내며 다음날 묘에 운반할 상여를 준비한다. 상여를 메는 상두꾼들은 상여의 상태를 확인하고 상주들의 슬픔을 달래며 죽음을 또 다른 태어남으로 인식해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상여놀이를 벌인다.

 

다음날 날이 밝으면 관을 상여에 안치하고 상여 앞에서 마지막 제사인 '발인제'를 지낸다. 제사가 끝나면 상여가 미리 잡아놓은 묘역에 도착하고 입관한 후 봉분을 다지고 돌아온다.

 

상여놀이 

상여가 나가기 전날에는 상두꾼들이 모여 상여 점검을 하고 상가에서 마련한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그리고 빈 상여를 메고 놀이판을 벌이는 상여놀이를 하는데 전남 지역에서는 최근까지도 다시래기라는 상여놀이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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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두꾼들은 빈 상여를 메고 실제 상여가 나가듯 운구 시늉을 그대로 하는데 이때 죽은 이의 사위를 상여에 태우고 논다. 이때부터 앞 소리꾼이 상엿소리를 메기고 상두꾼들이 뒷소리를 받고 마을 사람들은 상여 주위에 모여들어 춤을 추고 상엿소리를 함께 따라 부르며 흥겨운 놀이판을 벌인다.

 

상두꾼들은 판소리를 비롯하여 북춤과 바보춤을 추면서 개인 장기를 선보이고 거짓 상주놀이나 굿을 하면서 마을사람들의 신명을 돋군다.

 

이러한 상여놀이는 사별의 슬픔을 웃음과 신명으로 바꾸어 놓아 산 사람들이 현실의 삶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지혜이며 이승에서의 죽음을 저승에서의 새로운 태어남으로 보고 죽은 이의 저승길을 축복해 주는 우리 민족의 내세관이 반영된 관습이다.

 

묘 다지기 

묘터의 산역꾼과 상두꾼들은 흙을 무덤 위에 쌓고서 흙이 단단하게 다져지기까지 여러 차례 땅을 다지는데 이를 덜구찧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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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구꾼들이 흙을 다지는 동작은 마치 춤을 추는 듯하다. 흙을 다질 때는 "에에에 달공" 하면서 요령잽이 선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르면서 일제히 오른발을 앞으로 내며 두 손도 역시 앞으로 뻗어 손뼉을 치는데 짝을 맞추어 무용을 하듯이 동작을 취한다. 이러한 덜구동작은 아주 숙달된 사람들에 의해서만 가능한 정교한 동작이다.

 

이는 힘든 노동을 쉽게 돕는 노동요의 기능을 하며 산중에 홀로 남겨진 외로운 시신을 위한 축제이며 슬픔을 극복하려는 사람들의 슬기이기도 하다. 덜구질이 끝나면 잔디를 입히고 봉분 앞에 비석과 망두석을 설치한다.

 

방상씨 탈(方相氏 假面) 

방상씨 탈은 눈이 네 개 달린 가면으로 악귀를 쫓는 상징적인 기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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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상씨는 영구 앞에서 묘지까지의 길을 인도하는 역할을 하며 묘지에 도착해서는 먼저 광내에 들어가 사방 모퉁이를 창으로 쳐 광내의 잡귀를 없앤다. 그리고 하관할 때가 되면 방상씨 탈을 썼던 사람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오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달아난다. 그러지 않으면 잡귀들의 훼방에 죽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방상씨 가면은 조선시대 초기부터 장례행렬에 사용되었으며 지금은 영구차의 도입으로 그 풍습은 사라졌다. 그러나 지금도 상여를 사용하는 전남 나주와 진도 지방에서는 바가지 또는 무서운 가면을 꽃상여 앞에 두고 이를 방장이라 부르고 있어 방상씨의 유습이 전해오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상여 

죽은이의 시신이 든 관을 장지로 운구하는 데에는 상여를 사용하였다. 상여 좌우에 두 줄씩 네 줄로 선 상여꾼들이 운반하는데 상여는 보통 24명이 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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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 자체가 각종 장식으로 화려한 데다 많은 꽃으로 상여를 두루 감싸므로 `꽃가마'라고도 한다. 또 상여에는 용과 호랑이가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상여가 잡귀가 범접하는 것을 막고 죽은 이를 저승으로 순조롭게 인도하려는 기대가 담긴 상징물이기 때문이다.

 

이토록 화려하고 세심한 장식을 한 것은 상여가 단순히 주검을 운반하는 물리적인 운반구가 아니라 이승인 집에서 저승의 집으로 바꾸어 들어가는 동안의 임시 거처로 음양세계의 중간 집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상여의 행렬은 죽은이의 이름을 쓴 명정(銘旌), 업적을 쓴 공포(만장), 상주와 일반 문상객이 줄을 서서 따라 가는 이들로 이어져 죽은이의 이승에서의 마지막 길을 애도한다.

(사진: 덕담 박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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