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문시장(1) 강화 화문석시장

기사입력 2020.03.31 09:56 조회수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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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화문석2.jpg

 

'장(場)' 또는 '저자'라고도 불리는 시장은 우리 생활에 필요한 온갖 물품과 이와 관련된 정보들이 함께 교류되는 곳이다. 또한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친척•이웃주민들과 정을 나누는 만남의 장소이자 혼담이 오가고 여론이 형성되는 대중집회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

 

더구나 지금처럼 7일을 일주일로 여기지 않았던 전통사회에서는 장날이 사람들의 휴일이고 씨름판•놀이판까지 어우러진 자연스런 축제날이기도 했다..

 
한국의 전문시장은 일정한 품목만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시장이다. 5일장같이 정기적으로 열리는 각 지방의 향시(鄕市)와 함께 장이 열리거나 상설적으로 어물•해산물•공산품•곡물•과일•약재 등 특정한 물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규모나 명성에 있어 전국적으로 알려진 독특한 우리네 전문시장들을 시리즈로 연재한다.
 

강화화문석1.jpg

(사진:덕담 박승우)

 

화문석은 강화의 유명한 특산물로 강화 화문석시장은 끝자리가 2•7일인 날 남문 밖 토산품센터를 중심으로 시장이 선다.

 

화문석은 말 그대로 꽃무늬가 있는 자리로 한국 화문석의 우수함은 이미 12세기 북송(北宋)의 서긍(徐兢)이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에, “…정교한 것은 침상과 평상에 깔고 거친 것은 땅에 까는데 매우 부드러워서 접거나 굽혀도 상하지 않는다. …더구나 침상에 까는 자리는 매우 우수하여 놀랍기만 하다…”라고 나타나 있다. 특히 강화의 화문석은 서유구(徐有구)가 쓴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를 통해 볼 때 19세기 전후에 널리 알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중엽부터 만들기 시작했다는 일명 발석이라 불리는 화문석은 인천광역시 강화군의 명산물로 다른 지방에서는 거의 생산되지 않는 순백색의 왕골(완초)을 재료로 해서 한올 한올 고드레돌을 이용 부녀자들의 손가락 하나 하나로 엮어낸 우리 조상의 멋과 우아함이 가득 서려 있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강화군의 토산품이며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민예품이다.
 
땀 흡수에 좋고 통풍이 잘돼 여름철이면 강화도는 화문석을 사려는 이들의 방문이 이어진다. 화문석은 직접 손으로 짜는데 큰 돗자리 말고도 꽃삼합, 화방석 등 앙증맞은 제품들은 외국관광객들에게 특히 인기를 끈다.
 
특성과 용도
화문석의 유래는 문헌에 기록된 것이 없어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으나 고려 중엽부터 가내 수공업으로 발전되어 90여 년전 이조 왕실로부터 화문석의 도안을 특색 있게 제작하라는 하명을 받고 백색자리 생산지인 강화군 송해면 양오리 한충교가 연구결과 도안에 의한 화문석 제작에 성공해 다양한 도안과 제작기술 개발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화문석은 화려하고 소박한 무늬와 더불어 우아하고 정교하며 섬세해 실내장식 등 활용가치가 높고 실용성 또한 뛰어나며 왕골자체가 시원해 땀을 잘 흡수하고 겨울에 냉기를 방지하는 습성이 있어 오래 사용해도 윤기가 강하고 부스러짐이 없이 질긴 것이 특징이다.
 
화방석은 여느 방석과 달리 여름철에 완초가 지닌 성분으로 습기를 흡수하여 주므로 오래 앉아도 피로감을 느끼지 않으며 완자, 봉황, 태극 등 고전적 무늬를 수놓아 장식용으로 품위가 뛰어나다.
화방석은 주로 의자에 많이 이용되며, 고전적 무늬를 수놓은 장식용품으로 활용가치가 매우 높다.
 
꽃삼합은 세 개의 단합을 크기별로 차등을 둬 한 세트로 제작되고 있으며 완자, 꽃, 태극, 봉황 등의 무늬를 수 놓은 제품으로 실내장식이나 귀금속 보관용으로 가치가 높다.

전에는 여인들의 바느질 광주리로 사용되거나 한식, 과자 등의 음식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되어 왔으나, 현재는 여인들의 귀금속 보관이나 장식용으로 효용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
 

강화화문석3.jpg

 

 

화문석의 품질은 솜씨, 크기, 문양, 마디의 촘촘한 정도 등에 따라 다른데 홍학무늬에 마디가 촘촘하며 약간 누런 색을 띤 자연 그대로의 왕골로 만들어진 것의 가격이 비싸다.
 
화문석 하나를 매는 데에는 60만 번 이상의 손길이 갈 정도로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든다. 그래서 요즘에는 점차 화문석을 매는 농가가 줄어들고 있어 이를 우려한 강화군에서는 6명을 기능보유자로 정해 옛 솜씨를 이어가게 하고 있다. 강화 화문석시장은 성수기인 6∼7월에는 새벽 4시경에, 겨울철에는 아침 6∼7시경에 장이 선다.
 

강화화문석.jpg


강화읍장 개설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조선시대 이후로 예측하고 있다. 강화읍내의 동락천을 중심으로 하여 열리며 판매 물품에 따라 3개의 시장으로 나눴다. 곡식과 옷감을 판매하는 남쪽에 열리는 시장은 ‘웃거리장’이라 불렸고 채소와 의류 등을 판매하는 북쪽에 열리는 시장은 ‘아랫거리장’이라 불렀다. 그리고 화문석을 주로 판매하던 ‘화문석장’은 서쪽에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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