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양호(운요호, 雲揚號) 사건

기사입력 2020.04.08 15:33 조회수 132

위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하실 수 있습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URL 복사하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운양호.jpg

 

운양호3.jpg

 

지금은 공항고속도로나 인천대교를 통해서 갈 수 있고 월미도에서 배로 도하하면 영종도 구읍 뱃터 바로 위가 운양호(운요호, 雲揚號) 사건 격전지다. 옛 직장 공항을 가던 차에 다녀왔다.

 

1875년 9웧20일 일본 군함 운양호가 강화도 앞 바다에 불법으로 침투하여 교전을 벌였다.하지만 여의치 않자 다음 날 운양호은 이곳 영종진을 공격하였다.

 

일본군 육전대(해병대)가 상륙해 마을을 불태우고 약탈했으며 대포와 총기류를 빼앗아 운양호에 싣고 나가사키항으로 돌아갔고 병사 35명이 전사했고 16명이 포로가 되었다.

 

운양호1.jpg

 

운양호2.jpg

 
운양호 사건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기 위한 전초전으로 의도적으로 일으킨 것으로 1876년 강화도 조약의 빌미가 되었다.
 
한편 1876년(고종 13년) 일본은 전권대사를 조선에 파견하여 운요호 포격에 대한 힐문(詰問)과 개항 요구를 강요했다. 조선에서는 중신회담을 거듭한 끝에 국제 관계의 대세에 따라 수호조약 체결 교섭에 응하기로 하고 전권대신(판중추부사 신헌)을 강화도에 파견해 강화도 조약 조인을 하게 된 것이다.(1876년 2월 27일)
 

이성남프로필.jpg


 

위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하실 수 있습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URL 복사하기
<저작권자ⓒ코리아인사이트 & koreainsights.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댓글0
이름
비밀번호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보호위원회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top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