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개', ‘애고개'의 한자 표기 ‘아현동(阿峴)’

기사입력 2020.04.14 12:23 조회수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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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정로에서 마포로 넘어가는 곳의 본래 지명은 ‘애오개’이다. 지금은 지하철 5호선의 역 이름로만 불리고 있는데 ‘고개가 아이처럼 작다’는 뜻으로 아이고개, 애고개라고 했다. 이 ‘아이고개’ ‘애고개’를 한자로 옮겨 쓴 것이 오늘날 아이현(阿耳峴), 아현(阿峴)동이다.

 

애오개.jpg

 

애오개2.jpg

(사진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지명의 유래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데 첫 번째가 인근 지형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이다. 교통이 발달하기 전 도성 중심에서 마포나루, 인천 강화를 오가기 위해서는 남쪽의 만리재나 서북쪽의 애오개를 걸어 넘어야 했다. 


남쪽의 만리재는 높고 길어서 고개를 넘는 데 반나절 이상 걸리지만 서북쪽의 고개는 훨씬 작아 넘기 수월했다. 서북쪽에 있는 고개는 아이처럼 작다는 의미에서 아이고개, 애고개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두 번째는 풍수와 관련된 이야기로 한성의 주산(主山)인 북한산의 봉우리는 아이가 업혀 있는 형태라 하여 부아악(負兒岳)이라 하는데 그 아이가 달아나는 형세라 이를 막기 위해 서쪽에 있는 산을 모악(母岳), 남쪽 산을 벌아령(伐兒嶺)이라 했다. 그리고 서남쪽의 산은 떡으로 아이를 달랜다는 의미로 병시현(餠市峴), 떡전고개라 불렀다. 달아나려는 아이를 떡으로 달래는 고개인 병시현이 아현(兒峴)이 되었고 그 한글 이름인 애오개로 불리게 된 것이라는 설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사대문 안팎 생활 문화를 보여 주는 이야기로 옛날 한성부에서는 서소문을 통하여 시체를 나가게 하였는데 아이 시체는 이 고개를 넘어 묻게 했다. 아이들의 시체를 매장한 고개라는 이름으로 애오개라고 부르게 되었는 설로 과거 애오개 인근(아현동 산7번지 인근) 곳곳에 아이 무덤이 실제로 있었다고 전해진다.
 

애오개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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