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음도 똑 같은 인천 논현동(論峴洞)과 서울 논현동(論峴洞)

기사입력 2020.05.04 13:38 조회수 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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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현동1.jpg

(사진:개인블로그)

 

인천광역시 남동구 남쪽에 위치한 논현동(論峴洞)은 동쪽으로는 경기도 시흥시 월곶동, 서쪽으로는 연수구 동춘동과 연수동, 남쪽으로는 연수구 송도동, 북쪽으로는 남촌도림동에 접해 있다.
 
논현동의 옛 이름은 논고개 마을로 구한말까지 인천부 남촌면에 속해 있었다. 주변에 많은 자연부락이 있었지만 이중 논고개 마을과 모래 마을이 중심으로 1903년 인천부가 동네 이름을 확정할 때 논현리 사리동(沙里洞)이 됐다가 1906년 논현동으로 바뀌었다.
 
‘이 마을에 있는 논들이 고개[峴] 위에 있다’고 해서 ‘논고개’라고 불렸다는 것이다. ‘고개’는 한자 그대로의 뜻을 갖지만 ‘논(論)’은 한자의 소리만 빌린 음이다.
 
또 다른 설로는 옛날 이곳의 논현 포구에서 중국으로 배가 다녔는데 가족이 중국으로 떠날 때 배웅 나온 식구들과 ‘이것저것 의논(論)하며 넘은 고개’라는 뜻에서 논현이라고 불렸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해석으로 이 마을에 중요한 일이 생겼을 때 사람들이 마을 뒷산의 넓은 공터에 모여 의논했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라는 명도 있다.
 
반면 이와는 전혀 다르게 논고개가 우리말의 ‘늘어진 고개’, 곧 ‘는 고개’에서 발음이 바뀐 것으로 보는 해석이 있다. 이곳의 땅이 바다 쪽으로 길게 늘어져 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라는 것으로  ‘는골’ 또는 ‘는 고개’가 ‘능골(능고개)’을 거쳐 ‘논골(논고개)’이 됐다는 것이다.
 
논현동은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대단위 지구가 형성된 것은 아니었다. 정말 보잘 것 없는 동네였다. 인천과 경기도의 시계에 속한 곳으로서 교통의 오지였고 주변에 남동공단과 소래포구 그리고 야산 외에는 사람 살만한 동네가 아니었다. 지금은 인천의 다른 대형 동네 부럽지 않을 정도로 발전했다.
 

논현동.jpg

(사진:페이스북)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옛날에 논현동(論峴洞)동 인천 논현동과 같이 논고개(논현論峴)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논밭이 펼쳐져 있다 하여 이 지명이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현(峴)이 '고개 현'이고, 논(論)은 '의논한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말 논을 소리만 빌린 한자음이다.
 
논고개는 지금도 있는데 논현로에서 언주역과 학동역 사이에 있는 고개가 바로 논고개이다. 이 고개는 강남대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의 논현성당 근처이며 특히 강남우체국 위에서 반포아파트까지의 산골짜기 좌우 벌판이 논과 밭으로 연결되어 있어 논고개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원래 명칭은 논고개였지만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명칭이 논현이라는 한자명으로 바뀌었다는 설도 있다. 편입전 논현리와 학리였던 곳이며 1963년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면서 행정동 신사동 관할이 되었고 서울 편입 이후 압구정동의 일부가 논현동으로 이관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논현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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