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중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록 음악의 대부 '신중현'

기사입력 2020.06.02 07:10 조회수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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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없음.jpg(사진:KBS2, 유튜브 캡쳐)

 

‘시대를 앞서간 음악인, 한국에 록 음악(Rock music)을 도입한 선구자적 음악인’. '신중현' 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다.
 
1937년생으로 '모건 프리먼' '잭 니컬슨' '더스틴 호프만' '안소니 홉킨스' 그리고 배우 '신성일'과 동갑내기인데, 38년생 '패티킴'은 음악천재 신중현을 부를 때 깍듯이 오빠라고 한다.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 만주에서 살다가 해방과 함께 귀국하지만 부모님 모두 한국 전쟁에서 사망한다. 어려서 춥고 가난하고 배고픈 힘겨운 삶을 살지만 15세부터 독학으로 기타를 배우는데, 가난했던 시절 전깃줄로 기타줄을 만들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이어 1957년부터 미8군에서 밴드활동을 한다.

 

미군들의 기호에 맞는 재즈, 스탠다드 팝, 록음악 등 다양한 음악 활동을 했고 ‘재키' 라는 별명도 그때 얻었다고 한다. 그러다가1962년 한국 최초의 록밴드 ADD4를 결성하는데 ’애드4‘란 뜻은 3화음으로 이뤄진 안정적인 기타코드 화음에 비화성음인 네 번째 음을 첨가해서 새롭고 긴장감 주는 음악으로 도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때 발표한 노래가 바로 '김건모'도 불렀던 '빗속의 여인' 이다. “잊지 못할 빗속의 여인 지금은 함께 못하네~ 노오란 레인코트에 검은 눈동자 잊지 못하네~ 다정하게 미소지며 검은 우산을 받쳐주네~ 내리는 빗방울 바라보며 말없이 말없이 걸었네~” 이후 밴드를 계속 만드는데 비틀즈를 흠모했었고 비틀즈를 부러워했기에 팀이름도 약간은 비슷하게 '조커스' '덩커스' '퀘션스'.

 

그러나 밴드로는 한계를 느끼고 작곡작사가로 변신한다. 1968년 '펄시스터즈'에게 '커피 한잔'을 1969년 '김추자'에게 ‘월남 에서 돌아온 김상사'를 선물했고 이어서 '봄비' '님아' '떠나야할 그 사람' '꽃잎' '나는 너를' '거짓말이야' 등 히트곡 메이커로 우뚝 선다.

 

드디어 '아름다운 강산' 발표, 이 음악은 많은 사연을 가졌는데 곡이 만들어 지고도 약 2년간 금지곡이었다. 70년대 초반 정부는 조국찬가를 '신중현'에게 의뢰했는데 신중현이 작곡을 거부했고 그때 '아름다운 강산'이 발표되는데 곧바로 미운털이 박히게 되었고 그래서 방송금지곡이 된다.

 

신중현.jpg

 

그리고 대한민국 최고의 록음악으로 평가받는 '미인' 발표. "한 번보고 두 번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 아름다운 그여인을 자꾸만 보고 싶네"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데 당시에는 노래가 뜨면 그 노래를 주제로 한 영화가 제작되었던 시절. '미인'이란 영화의 주인공으로 '신중현과 엽전'들이 출연하기로 하지만 너무 통속적 이라는 이유로 출연을 거부하고 음악 연주부분만 참여하기로 한다.  그때 반짝 스타가 탄생하는데 바로 '울고 싶어라' 의 '이남이'다.

 

호사다마라고 할까? 75년 대마초사건으로 5년간 칩거, 그해 문화공보부는 공연 활동 정화대책을 발표하고 심의를 강화하는데 '미인'은 퇴폐와 가사 저속으로 금지곡이 되고 '이장희' '윤형주' '양희은' 등도 활동이 제한된다. 어느 평론가의 얘기가 그의 음악인생을 잘 설명한다. '유교문화의 엄숙주의와 청년 문화의 부재라는 시대적 상황에서도 문화적 정체성을 찾아내고 록음악의 싹을 키운 장본인'


노장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어서 '김완선'의 '리듬속의 그 춤을' 작곡 연주, 물론 세월이 변해 시퀀스 미디로 찍어서 만든 음악에 기타를 덧입혀서 녹음을 완성한다. 당시 김완선 인터뷰 "신중현선생님이 실제로 녹음할 때 컴퓨터를 낑낑대고 들고 오시더니 완선아 나도 처음이라 잘 모르지만 그래도 춤은 출 수 있을거다." 그의 음악은 얼마전 '김혜수' 주연의 TVN의 드라마 '시그널'에서 '꽃잎'과 '나는 너를'이 다시 리메이크 되어 등장하기도 한다.

 

2006년 공식은퇴 공연. 그에게는 3명의 아들이 있는데 장남 신대철(시나위)
차남 신윤철(원더버드) 삼남 신석철(세션활동). 우리나라에서 10 만장이 넘는 음반발매 기록의 첫 번째는 이미자 '동백아가씨', 두 번째는 '신중현과 엽전들'의 '미인'으로 기록에 남아 있다.

 

해방이후 대한민국에서 가장 실제적으로 영향력있는 대중문화인은 누구였냐는 질문에 많은 음악평론가들은 그의 이름을 맨 위에 올려 놓는다. 바로 '신중현'.
그의 음악은 세대와 세대를 건너 오랜동안 기억될 것이다. 대중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그 노력만큼이나...


이홍주프로필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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