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촌마을 금경연화백 기념관

기사입력 2020.07.02 08:31 조회수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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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군 수비면 발리리 금촌마을 금경연화백 기념관.

 
1916~1948 서양화가 금경연은 금희성 5대손으로 수비면 발리리에서 태어나 한국 미술사 초창기 혜성처럼 나타나 그의 특출한 재질로 예술의 세계에 그 뜻을 활짝 펼치지도 못한 채 33세 아까운 나이로 요절했다.
 
1939년 대 선전에 수차례 입선과 특선으로 입선해 화가로써 자리를 굳혔으나 폐결핵으로 그 꽃을 피워 보지 못했다.
우리나라 서양화 도입 초기  우리나라 화단에서 돋보였던 그의 예술가적  위치를 보여 주고 있다.
 
금경연(琴經淵)

  • 정    의:교육자, 화가
  • 본    관:본관은 봉화(奉化)
  • 생    애:1916-1948
  • 활동사항:조선 미술전에서 6회 입선 및 특선되었으며, 초등학교 교사와 중학교 교사를 거쳐 1946년 수비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중 향년 32세로 병사.

서양화가 금경연은 금희성(琴凞星)의 5대손으로 수비면 발리리에서 태어났으며, 한국미술사의 초창기에 혜성처럼 나타나 그의 특출한 재질로 예술의 세계에 그 뜻을 활짝 펴지도 못한 채 33세의 아까운 나이로 요절했다. 그는 1930년대 선전에 수 차례 입선과 특선으로 입상해서 화가로서의 자리를 굳혔으나 지병인 폐결핵으로 안타깝게도 그 꽃을 찬란히 피워 보지 못했다.

그러나 비록 몇 점 되지는 않지만 그가 남긴 유작들은 그의 작품세계와 우리나라 서양화 도입 초기 우리 화단에서 돋보였던 그의 예술가적 위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짧은 생애였지만 오직 한 길만을 위해 온 몸을 불살랐던 천재적인 면모를 단편적이나마 떠올려 주고 있다.(영양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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