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보다 소설 같은 시대, 소설 쓰시네!

기사입력 2020.08.02 23:47 조회수 2,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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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하나 쓴다고 생각해 보자.

소설 속 주인공은 엄마와 중학생 아들이며 배경은 아들이 공부는 안 하고 나쁜 짓만 하고 다녀서 엄마의 속을 썩이고 있는 상황이다. 어느 날 아들 녀석이 술을 진탕 처먹고 새벽에 집으로 기어들어 오다가 거실에서 잠 못 자며 기다리던 엄마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 인사불성이 되어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아들내미의 꼴을 보다 못한 엄마가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이 망할 놈의 자식, 애미가 제 명에 못 살겠으니 나가서 죽어 버려!"
분을 참지 못한 엄마는 고함을 치고 나서 그만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고 놀란 아들이 구급대원을 불러 실신한 엄마를 병원으로 실어 날랐다. 병상에 누워 잠든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던 아들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참회의 감정이 북받쳐 오르더니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병실을 떠났다. 지금까지 자신이 저질렀던 불효막심한 언행들이 떠오르며 자책감에 괴로워하던 아들은 엄마가 자신에게 바랐던 염원대로 한강으로 가서 투신하여 그만 뒈져버리고 말았다.
이 황당무계한 결말의 소설은 비극인가, 아니면 희극인가?
나는 조심스럽게 '총체적 난극'이라고 칭하고 싶을 뿐이다.
앞서 '난국'이란 표현 대신에 '난극'이라고 의도적으로 표기한 이유는 일종의 수사법(레토릭)이라고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앞서 희'극'과 비'극'이란 단어가 나왔으니 재미와 의미를 포섭하기 위해 이미 있던 용어인 (총체적) ‘난국’을 ‘난극’ 비틀어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강조하려고 하는 글쟁이의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가와 같이 글 짓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이들은 목수가 나무를 가지고 작업을 하듯 요리사가 물과 불로 음식을 만들듯 언어를 가지고 논다.

'가지고 논다'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글을 짓는 데 있어서 흑백논리 같은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소명이 있다는 뜻이다. 소설에서 작가적 상상력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독자들이 그 상상력의 날개에 올라타서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고 경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이란 장르는 팩트를 공정하게 전달하는 기자들의 뉴스 기사와 다르고 내각의 책임자인 장관과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에서 질의와 응답을 하는 논쟁과도 다른 것이다.

지난주에 법무부 장관을 불러다 놓고 법사위원 중 한 명이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는데 듣다 못한 장관이 "소설 쓰시네"라며 일침을 놓았다. 장관으로선 있지도 않은 사실을 끌어다가 논증의 근거로 삼으려는 질의자의 태도가 심히 못마땅했을 터이고 국회의원의 처지에선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답변자의 태도에 발끈할 수도 있었다고 본다. 여기까지야 지금껏 늘상 봐왔던 국정감사장의 인신공격성 감정싸움의 흔한 풍경이었는데 느닷없이 소설가 협회에서 성명을 발표하면서 희극인지 비극인지 모를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협회는 "한 나라 법무부 장관이 소설을 '거짓말 나부랭이' 정도로 취급하는 현실 앞에서 ‘문학을 융성시키는 일은 참 험난하겠다는 생각을 했다’라며 자신들이 상처를 입었다"라고 주장했다. 많은 사람이 이 성명을 전해 듣고 씁쓸한 기분이 들며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왜냐하면 '소설(을) 쓰다'라는 수사적 표현은 이미 언중들에게 '지어내 말하거나 거짓말을 하다'라는 뜻으로 통용이 되어 굳어져서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도 관용구로 등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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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의 소치라고 한다면 부끄러운 일이고 피해 의식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어를 가지고 즐겁게 놀아야 할 사람들이 뭔가 모를 덫에 걸려 상상력이 거세되고 창작자로서 지녀야 할 마음의 여유마저 상실한 듯하여 보는 입장에서 짠하기도 하고 서글퍼지기도 했다. 그건 마치 이 글의 첫 부분에서 인용한 이야기에 나오는 '비장한 마음을 지닌 채 한강으로 투신해 버린 아들 녀석'을 바라보는 독자의 소감과도 같은 느낌이라고 말하고 싶다.
동시대의 희로애락을 다루며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며 존경과 사랑을 받던 소설이란 문학 장르가 점점 과거의 명성과 지위를 잃고 뒷방 늙은이처럼 쭈글쭈글해지는 현상을 목도하게 된다. TV와 영화가 등장하며 자리를 내주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디지털 미디어의 영상 콘텐츠 등에 영향력을 뺏기면서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취미란에 <독서>라고 기재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사흘을 3일이 아닌 4일이라고 착각하는 언중들은 A4 한 장도 안 되는 길이의 텍스트를 스마트폰 기기에서 읽어 내리는 일도 버겁고 거추장스럽게 여기게 되었다. 그뿐인가, 없는 일을 있는 것처럼 그럴듯하게 꾸며서 흥미를 자극하는 상상력으로 치자면 소위 말하는 '기레기'들께서 그 능력과 소양을 마음껏 유감없이 발휘하는 현상도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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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이 언어를 대신해서 최고의 권력으로 군림하는 시대에서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한국에서 가장 소득이 낮은 직업' 9위에 속한 소설가들은 이제 자부심도 함께 바닥으로 처박히게 된 것일까? 법무부 장관의 발언에 "놀라움을 넘어 자괴감을 느낀다"라느니,
"소설가들의 인격을 짓밟는 행위"라는 듣기 민망하고 옹색한 논평 대신에 "장관님께서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요즘은 기자들께서 소설가들보다 더 실감 나게 이야기를 잘 만드시고 계시니 다음부터는 차라리 '기사 쓰시네~'라는 표현으로 바꿔 보시는 게 좋겠다“라는 자신만만한 레토릭으로 받아칠 수는 없었을까? 천박하고 졸렬함이 넘실대며 우리들의 언어를 훼손하고 손상시키는 세태에 맞서 통렬한 한 방을 먹이는 여유 따위는 이제 문단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사치가 돼버린 것일까? 소설을 좋아하고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정신 못 차리고 방황하며 일탈하는 아들 녀석을 바라보는 엄마의 심정으로 한마디 하고 싶을 따름이다.
"괜히 무게 잡고 그 자리에 계시지 말고, 그냥 조용히 물러나 어디 가서 묫자리 알아보시라"라고. (그렇다고 진짜로 어디 가서 뒈지지는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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