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 랜드마크 홍주성, 홍성의 역사가 녹아있는 천년 여행길

홍성역 → 김좌진장군오거리 → 홍성전통시장→ 조양문 → 북문지 → 홍주성벽 → 홍주아문 →
기사입력 2020.08.06 22:15 조회수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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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서해안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처가가 있는 보령(대천)을 가려면 꼭 홍성시내를 거쳐 지나가야 했다. 30여년이 지난 최근에 들렀음에도 불구하고 홍성은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언제부턴가 지방자치단체들은 앞다투어 관광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홍주성 천년여행길도 그렇게 개발이 되었으리라. 이 길을 가지 않았다면 홍성이 천 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고장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또한 김좌진, 한용운, 고려 말의 명장 최영 장군, 사육신 성삼문 등 뛰어난 역사적 인물들이 이 고장 출신이었다는 것도 모를 뻔 했다. 여행은 이런 무지를 깨우쳐 주기에 늘 걷고 또 걷는다.

 

고려시대에 운주로 불리기 시작한 이후 홍주로, 그리고 일제강점기때 홍주군과 결성군이 합쳐져 오늘의 홍성이 되었다고 한다. 홍성을 말할 때 홍성의 중심지에 위치한 홍주성을 빼놓을 수 없는 랜드마크이다. 이 홍주성을 키포인트로 하는 홍주성 천년여행길은 홍성의 천년 역사가 그대로 스며있는 수학의 길이다.

 

외지인들은 보통 홍성역이나 홍성버스터미널로 도착하기에 여기를 출발점으로 잡으면 된다. 필자는 홍성역에 도착해 온전한 코스는 다시 걷기로 하고 오늘은 두어 시간 정도 지도를 보고 중요 거점만 맛보기로 한다. 역에서 나오니 저 앞에 작은 봉우리와 성벽 같은 모습이 어슴프레 보이는 걸 보니 그 방향으로 걸어 내려간다. 홍성역 앞 광장에는 최영, 성삼문, 한용운, 김좌진 등 이 지역 출신 역사적 인물들의 조형물이 있어 홍성이 유서 깊은 고장임을 느끼게 한다.

 

홍성역에서 내려가는 길에는 홍성의 역사를 알려주는 안내판들이 있어 읽으면서 살살 내려간다. 역앞 도로가 끝나는 사거리 우측에 홍성관광안내소가 있어 홍주성 천년여행길 안내 자료와 지도를 받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한다.

 
버스터미널을 지나 처음 마주하게 되는 것이 독립운동가 백야 김좌진장군 동상이다. 한 손으로는 칼을 쥐고 다른 한 손은 곧게 들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모습은 그 날의 기상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동상 옆에는 김좌진장군의 검이 있는 작은 조각물도 전시되어 있다. 백야 장군은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에 가장 큰 승리를 안겨주었던 청산리 전투를 지휘했던 만주벌 호랑이 장군으로 불리었다. 홍성군 결성면에는 백야 장군의 생가와 백야기념관, 그리고 사당인 백야사와 백야 공원이 있어 나중에 한 번 다시 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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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 장군상을 뒤로 하고 길을 건너면 바로 홍성전통시장 초입이다. 1943년에 문을 연 홍성전통시장은 약 7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데 이 시장에는 홍성장터보물 10가지가 숨어있다. 대교리 석불, 홍성대장간의 모루와 나무통, 부의함, 보신알(곤계란), 재봉틀, 뿅뿅다리, 홍성시장벽화, 꽃상여, 되(됫박), 돈궤 등이 그것으로 게스트 하우스이자 장터 사랑방인 '문전성시'라는 이름의 카페 앞 지도를 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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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홍성관광 홈페이지)

 

천수만의 해산물과 내포평야의 농산물이 넘쳐나 홍주성 안에 여느 읍성과 다르게 장터가 형성되었는데 그게 바로 홍성전통시장의 시작이다. 160여년의 전통이 이어지고 사통팔달의 홍성시장은 상설장과 1일과 6일에 서는 오일장이 있다. 홍성 오일장은 인근의 천수만에서 잡은 신선한 해산물, 내포평야의 농산물이 어우러지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풍요의 장을 살살 걷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여기저기 둘러보는 재미가 있고 또 주전부리 할 것도 많아 눈과 입이 즐거운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장이다. 넉넉한 인심과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장이 서는 날에는 귀까지 즐거워 지는 행복한 풍경을 주는 맑은 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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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홍성관광 홈페이지)

 

10개 보물은 정해진 시간이 있어 다 찾아보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시장 안에 있는 보물은 다 둘러볼 요량이다. 먼저 철물점 골목으로 들어서면 홍성대장간(충남도 무형문화재 제160호)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3대에 걸쳐 100년의 세월을 이어오고 있다는 대장간에는 달궈진 쇳덩이를 올려 두드리는 받침대인 모루와 그 옆에 다듬어진 쇳덩이 푹 담가 식히는 나무물통이 명물이다. 일제 때부터 낡은 목조의 장옥 건물에서 60여년을 넘게 이어오는 대승철물점에는 그 당시부터 사용하던 돈괘와 주판이 명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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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홍성관광 홈페이지)

 

시장을 장남 코끼리 다리 만지듯 대강 돌아보고 나오면 눈앞에 작은 개천이 흐르는데 홍성천이다. 홍성천에는 복개한 도로와 버스 등이 다니는 철골 다리도 있지만 또 다른 보물인 뿅뿅다리가 옛 정을 느끼게 한다. 옛날 공사장에서 이동할 때 설치해 놓았던 구멍 송송 뚫린 철판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뿅뿅다리인가 혼자 생각해 본다. 정겨운 다리를 건너 다시 홍주성 천년길을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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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홍성관광 홈페이지)

 

전통시장과는 다른 도시적 분위기의 홍성의 명동을 걸어 가다 처음 마주치는 역사물이 조양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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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문(朝陽門)은 홍주읍성 4대문 중 하나로 홍주성의 동문으로 서문인 경의문, 남문은 문루가 없는 홍예문, 북문인 망화문의 문액은 흥선대원군이 친필로 하사하였으나 망실되었다. 조양문은 1906년에 을사늑약에 반대한 홍주의병과 일본군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인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북문은 역대 목사들이 문루에서 사형수의 처형을 감시하기도 하였는데 동학운동(1894) 때는 수백 명의 동학군이 여기에서 처형되었다.
 
고종 광무 10년(1906) 항일의병이 일어나 일본군과 홍주성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그 때의 흔적이 조양문 곳곳에 남아있다. 일본인들에 의하여 서문과 북문은 파괴되어 없어지고 조양문 또한 파괴되었으나 부분적인 보수로 퇴락되었던 것을 1975년 문루를 해체 복원하여 옛 모습을 찾게 되었다.
 
조양문을 지나 홍주성 입구에 서면 옛 홍주성 전투 안내판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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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성전투는 1906년 5월 홍주성에서 의병과 일본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이다. 1905년 일제에 의해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정산에 은둔하고 있던 전 참판 민종식은 5월 11일 홍산에서 의병의 기치를 들었다. 이곳을 중심으로 서천•남포•보령•청양 등지의 의병을 규합한 민종식 부대는 서부지방의 중심지인 홍주를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 이때 부대 병력은 1,000여명으로 그 중 신식 소총과 화승총 등 화기류로 무장한 병력이 500여명, 창검과 활 등을 소지한 병력이 200여명, 나머지는 비무장이었다.

 

5월 19일 오후 홍주에 도착하여 홍주성 서남쪽 남산에 진을 치고 공격을 시작하였다. 당시 홍주성에는 일본군 헌병부대와 거류민 등이 남문 성벽에 의거하여 항전하였다. 이에 의병부대는 맹렬한 사격을 가하면서 남문을 집중 공격했고 남문을 지키던 일본군 헌병과 거류민들은 마침내 의병의 공격 기세를 당해 낼 수 없게 되자 북문을 열고 덕산으로 패주하고 말았다.

 

일본군은 패한 소규모 부대에 의한 산발적인 공격을 했으나 탈환에 실패하고 출혈이 계속되자 대규모 병력을 파견해 홍주성을 공격하게 된다. 이에 조선주차군 사령관은 서울에 주둔중인 보병 제60연대의 제1대대장 다나카 소좌를 지대장으로 하는 2개 중대의 지대를 편성하여 27일 홍주로 급파하였다.

 

5월 29일 홍주성 동쪽 천변리에 도착한 일본군은 홍주성 서쪽 홍주-결성간의 도로를 봉쇄하여 퇴로를 차단하고 북문과 동문으로 성을 공격하여 성 안의 의병을 포위, 섬멸하는 계획을 세웠다. 일본군은 이러한 계획 아래 성의 남문과 서문에 기관총 사격을 수 차례 실시하여 의병의 주력을 성의 남서쪽으로 집중시킨 다음, 5월 31일 새벽 성에 대한 총공격을 시작했다. 우세한 화력을 앞세워 동문과 북문으로 일본군이 밀려들자 의병들은 대로를 차단하고 시가전을 전개하였으나 사상자가 급증하였으므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날이 새기 전에 성을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

 

성 안으로 돌입한 다나카 지대는 헌병과 경찰이 성문을 감시하는 가운데 성 안을 수색하여 의병을 색출했다. 이 전투로 일본군은 10여명이 사살된 반면 의병은 82명의 전사자를 내고 145명이 포로가 되는 손실을 입었다. 신돌석, 정용기 부대의 의병활동과 더불어 3대 전투의병의 하나로 꼽힌다. (문화콘텐츠닷컴 발췌 편집)

 

홍주읍성의 역사는 파란만장하다. 나말여초에 처음 성을 쌓은 홍주읍성은 왕건과 견휜이 후삼국 쟁패의 운명을 건 운주성 전투가 있었던 곳이며 광해군과 임진왜란, 이몽학의 난, 천주교 박해, 홍주의병, 동학농민운동 등 격동 세월의 부침을 그대로 껴안고 있는 역사의 땅이다.

 

현재의 홍주읍성은 1870년의 홍주목사 한응필이 대대적으로 수축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지봉 이수광, 우암 송시열, 대원군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러나 동학농민운동과 홍주성 전투 등을 거치며 일제에 의해 홍주관아 건물이 철거되고 일본식 건물이 지어지면서 관아 건물과 성벽 등이 크게 훼손되어 지금은 조양문, 홍주아문, 안회당(동헌), 여하정만이 남아 있다. 2011년 홍주성역사관을 개관해 홍주읍성의 복원모형과 홍성의 위인에 대해 전시되어 있다.
 
안내문을 읽고 성에 대한 대강의 이해를 하고 성안으로 들어서니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홍주옥이다. 이 옥사는 공주와 더불어 천주교 2대 순교성지로 불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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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홍주 옥은 순교자들이 순교를 준비하던 의미 있는 장소이다. 내포지역의 개방성으로 인해 천주교신자가 가장 많았던 지역으로 홍주는 충청도 전영장이 배치되었던 천주교도의 처형장이 되어 순교자가 많았으며 1792년(정조16) 홍주 옥에서 얼어 죽은 원시장을 비롯하여 신유박해 때 6명, 을해박해 때 1명, 기해․병오박해 때 6명, 병인박해 때 117명 등이 이곳에서 순교했다.

 

지난 2009년 홍주성 복원에 따른 계획에 의해 이전 건물이 철거되고 공터로 남아있는 자리에 옛 홍주성의 관아 등을 하나 둘 복원했다. 홍주 옥은 천주교 박해가 계속되는 동안(1791∼1870년대) 홍주관아로 끌려온 천주교 신자들이 갖은 문초와 형벌을 받으면서 굳게 신앙을 증거한 곳이다. 이곳 홍주 옥에 수감되어 꿋꿋하게 순교의 길로 나아갔던 것이다. 현재 천주교 순례길이 조성되면서 많은 천주교신자들의 순례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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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성 옥에서 나와 왼편으로 보면 우물이 있다. 이 우물은 2005년 홍주성 복원계획에 따라 대전지검 홍성지청과 대전법원 홍성지청이 월산리로 이전하면서 폐공되었다가 지난 2012년 역사공원 조성에 따라 복원했다. 과거에는 ‘재판소 물’로 불리던 이 우물은 옛부터 물맛이 좋고 병을 치유한다는 소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애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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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샘물에 대한 기록은 세종실록, 동국여지승람에도 나온다. ‘세종실록지리지’ 149권에는 “홍주읍성 안에 샘이 하나 있는데 겨울이나 여름에도 마르지 아니한다”고 기록돼 있다. 또 1481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홍주읍성 안에 3개 우물이 있으며 그 중 하나는 1872년 제작된 ‘홍주지도’에도 같은 모습이 확인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물을 지나 왼편 언덕 위로 보이는 홍화문 방향으로 오르다 보면 오른쪽으로 탑 같은 게 눈길을 끈다. 바로 병오항일의병기념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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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오항일의병기념비는 ‘애도지비’자리였는데 항일의병 당시 죽은 관군과 일본군을 애도하기 위해 1907년 김윤식이 시를 짓고 이완용이 글을 쓴 비석이었으나 해방 후 이 비석을 없애고 의병기념비를 세웠다. 1905년 을사늑약에 저항해 1906년 항일의병이 일어나 당시 관군과 일본군을 물리치고 홍주성을 탈환했지만 결국 함락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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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으로는 홍주성 사찰부재가 자리잡고 있다. 조선초기에 억불승유정책을 시행하면서 많은 사찰 소유의 토지와 노비가 몰수되었다는데 홍주성 주변의 사찰부재들도 홍주성 관아와 성벽을 쌓을 때 사용되었다고 한다. 현재 홍주성 성벽을 살펴보면 미륵사탑의 일부로 보이는 유물을 발견되는데 당시 중앙이나 지방의 관청을 신축 하거나 중건할 때 폐사지의 기와를 이용한 사례들 흔적이라고 한다.

 
사찰부재 옆으로 보면 현대식 건물이 보이는데 2011년 5월에 개관한 홍주성역사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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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홍성군)
 
홍주성역사관은 지상1층, 지하 2층의 건물로 전시홀로 내려가면 1871년도 규장각 지도를 참고해 만든 홍주성복원모형도가 있어 당시 홍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홍성은 많은 역사적 인물을 배출한 고장답게 최영, 성삼문, 김복한, 이설, 한용운, 김좌진 등에 대해 소개 전시도 있다. 홍주성하면 빼놓을 수 없는 홍주의병과 홍성의 독립운동 등을 전시공간을 차지해 조선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홍성인들의 나라사랑의 정신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역사관을 나와 오른쪽 홍화문 방향으로 오른다. 홍주성에는 동서남북의 4대문이 있었지만 서문과 북문은 소실되어 터만 남아 있고 동문인 조양문만 온전히 남아 있으며 남문인 홍화문은 지난 2013년 12월 복원해 현재 모습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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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화문을 나서면 눈앞에 홍성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왼편 성곽을 따라 걷는데 이제서야 홍주성이라는 느낌을 갖게 하는 웅장한 모습을 보여 준다.
 
서해의 관문이자 홍주목의 치소(治所, 어떤 지역의 행정 사무를 맡아보는 기관이 있는 곳)를 둘러쌓은 홍주성은 1772m에 달했으나 현재는 810여m의 성벽만 남아있다. 홍주목의 36동에 이르렀던 관아 건물이 일제에 의해 훼손되어 현재는 조양문, 홍주아문, 안회당, 여하정만 남아 있다.
 
홍주성이 정확히 언제 축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초기 왜구로부터 방어하기 위해서 석성으로 쌓은 이후 몇 차례의 중축을 거쳤다. 1870년 홍주목사 한응필에 의해 대대적으로 개축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충청도 4목 가운데 하나인 홍주목의 동헌인 안회당과 1896년 홍주목사 이승우가 건립했다고 전해지는 홍주목사들이 정사를 구상하며 휴식을 취했던 곳으로 정각은 6각형의 수상정인 여하정이 있다. 홍성군청 안뜰에는 보우국사가 왕사가 된 것을 기념으로 심었다고 전해지는 수령 600여년의 느티나무와 홍주관아의 외삼문인 홍주아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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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성벽을 따라 안내판이 있는 입구로 내려와 다시 시내로 돌아가기 위해 가다가 올 때는 못 보았던 기와대문 건물에 이끌려 가보았다. 현판에 홍주아문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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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아문은 역대 홍주목사가 행정을 하던 안회당(安懷堂) 외문으로 1870년 당시 홍주목사 한응필이 홍주성을 대대적으로 보수하고 이 성의 동문인 조양문의 문루를 설치할 때 세운 것이라 한다. 홍주아문이란 철판을 대원군이 사액한 것으로 우리 나라 아문 중에서도 가장 크고 특이한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군청 정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적 제 231호로 지정되어있다.

 

홍주아문 안에는 열간 반의 규모인 내삼문과 남과 북으로 행랑을 이어서 지어 담장을 대신했던 큰 건물이 있었는데, 3•1 운동 당시 홍성의 만세사건을 진압시키기 위해 진주한 일본군이 홍성군청을 병영으로 삼고 군수를 추방하는 한편 내삼문을 헐어버렸다. 그 이후 행랑은 보수하지 못해 스스로 무너져 버렸고 오직 외삼문인 홍주아문만 보존된 것이다. 이 역시 홍성군수 조영호가 문화재 관리국의 지원을 얻어 현재와 같이 보수하고, 종전에 이 문을 군청 정문으로 활용하던 것을 막고, 그 옆으로 현재의 정문을 세워 활용케 하여 홍주아문을 오늘과 같이 보존하게 되었다. 현재 홍성군청사로 사용하고 있다.

 

홍성군청 주변에는 수령 600년이 넘는 느티나무와 주변으로 굵은 느티나무가 많은데 그 중 군청 앞 느티나무가 가장 크고 수형이 아름답다. 고려 공민왕 때 심었다는 이 느티나무는 홍주목사가 부임해오면 제를 올렸던 곳이라고 한다.

 

홍주아문을 끝으로 오늘의 여정을 마치고 다시 홍성역으로 돌아와 서해 금빛열차에 몸을 실었다. 홍주성 천년길의 역사를 두어 시간 안에 얼마나 느낄 수 있을까? 천분의 일이라도 느끼면 다행이겠다. 하지만 천년, 지나간 시간을 되짚어 보려 했던 건 과거의 역사 이야기는 스쳐 지나간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남아있어 우리 조상의 시간을, 문화를, 사람을 보는 깊은 거울이었을 것이다. 그 때의 하루하루를 지금 우리는 천 년이라고 부르듯 오늘 걸은 이 작은 시간도 훗날 천년 역사의 한 점이 되기에 아낌없는 시간이었다. 어쩌면 성벽 안 우리 선조들의 숭고한 생활상과 의병들의 저항정신을 이어 받을 수 있어 고마운 발걸음이었다.

 

홍주성 천년길 가는 정보
★자가용 이용 시: 서울(서해안고속도로 출발)-홍성IC(60분 소요)-홍주성(15분 소요)
★버스 이용 시: 서울남부터미널/강남터미널-홍성터미널(1시간 간격, 1시간 40분 소요)-홍주성
(도보 30분)
★열차 이용 시: 용산/영등포 출발-홍성역(1일 15회 운행, 2시간소요)-홍주성(도보 30분)

 

홍주성 천년 여행길 코스: 총 거리 8.0km, 소요시간 4시간
홍성역.버스터미널-김좌진 장군상-홍성전통시장 입구-장터사랑방(문전성시)-홍성대장간-대교리석불입상-홍주의사총-매봉재-홍주향교-홍주성북문지-홍주성남문-홍주성 역사관-홍성군청(여하정,안회당, 홍주아문)-적산가옥-조양문-명동거리-당간지주-홍성시장벽화-홍성전통시장-홍성역.버스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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