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소설 정비석의 자유부인에 등장하는영성문(덕수궁 선원전(璿源殿) 영역에 진입하는 관문이었던 문)길은 연인들의 사랑을 속삭이던 사랑의 언덕길로 표현했다.
영성문 언덕길은 유서깊은 덕수궁(경운궁) 돌담이 드높이 쌓여있고 미 대사관 관저 돌담이 높기만 하다.
좌.우편 담 안에는 나무들이 담장 밖까지 울창한 가지를 내 뻗어서 6.25 전쟁 후 영성문 언덕길은 마치 자연의 터널 같았다.
그래서 남의 이목을 꺼리는 젊은 남여들이 사랑을 속삭이고 영성문 언덕길을 찿았던 것이다.
양성문은 지금은 없지만 행정.상업의 중심이었던 육조거리. 운종가(현.종로)로 가는 경운궁의 중요한 북쪽 출입문이었다.
영성문은 출입문으로서의 기능 외에 상례(喪禮)의식이 치러지기도 했는데 1911년 순헌귀비 엄씨의 상여가 영성문을 통해 나갔으며 고종과 순종, 영친왕이 배송했다.(불교의식의 일반적인 진행절차는 신앙의 대상을 의식도량에 봉정-奉請 오시도록 청함-하고 그들에게 권공-勸供 음식물을 들 것을 권함-한 뒤 소원을 아뢰고 신앙의 대상을 다시 돌려보내는 의식을 행하게 되는데 다시 보내는 의식을 배송拜送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