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제주에서는> 제주에 가면 꼭 봐야 하는 몰입형 미디어아트, 빈센트 반 고흐전 '별이 빛나는 밤'

– 성산 ‘빛의 벙커’에서 2021년 2월 말까지 연장 공연
기사입력 2021.01.05 21:53 조회수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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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주 성산에서는 빈센트 반 고흐전 '별의 빛나는 밤'이 열리고 있는데 이름도 생소한 ‘프랑스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라고 한다. 지난 제주 여행 중 도민 친구가 꼭 보라는 권유로 별 생각없이 갔다가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도 미리 내용을 알고 보았으면 좀 더 몰입했을거란 아쉬움에 감상할 분들에게는 사전 지식을, 본 분들은 리뷰를 통해 그 날의 감동을 나누었으면 하는 생각 때문이다. 원래 전시 일정은 올해 작년 10월 25일까지였으나 반응이 뜨거워 오는 2021년 2월 28일(일)까지 연장 전시한다.
전시가 열리는 ‘빛의 벙커’라는 공간도 흥미로웠다. 빛의 벙커는 제주 서귀포 성산에 옛 국가기간 통신시설(한•일 해저 광케이블 통신망을 운영하기 위해 설치된 시설)이었는데 오랜 기간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 공간이었다. 축구장 절반 정도 크기의 대형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을 오름 안에 건설해 흙과 나무로 덮어 산자락처럼 보이도록 위장했고 군인들이 보초로 서서 출입을 통제하던 구역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예전 제주 올레 2코스를 걸을 때 옛날 봉수대가 있던 큰물뫼오름(대수산봉)이 2코스가 통과하는 곳이었다.(빛의 벙커와 올레길이 교차하는 곳으로 올레길을 걷다가 관람해도 좋을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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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목적으로 설계된 벙커의 특성은 프랑스 몰입형 미디어아트를 구현하는 전시공간으로는 최적의 공간이다. 외부의 빛과 소리가 완전히 차단된 내부 공간은 방음효과가 완벽하고 미로와 같은 진입은 관람객들에게 최고의 몰입감을 느낄 수 있다. 지난 2018년 개관 기념으로 클림트전을 열어 5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을 기록했고 이번이 그 두 번째 전시인데 이 역시 50만 관객를 넘을 것 같다.
 
이번 전시는 우리 국민들이 가장 사랑한다는 태양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37년 생애, 800점 이상의 회화와 1,000여 점의 드로잉 작품 그리고 고흐가 존경했던 2개월간의 동거인이자 운명의 애증관계로 강력한 영향을 주고받았던 고갱의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명작들로 구성되었다.
 
반 고흐의 강렬한 삶의 여정 '별의 빛나는 밤’을 32분간, 폴 고갱의 명작들 '섬의 부름’이 10분간 미디어아트로 상영된다. 빛의 벙커에 들어서면 90여 대의 빔 프로젝터에서 쏟아내는 고흐 특유의 풍부한 색채와 붓질까지 동영상의 압도적 시각적 몰입은 몰론 고성능 스피커가 서라운드로 뿜어내는 귀에 익숙한 명곡들이 청각까지 사로잡아 오감을 흠뻑 적시기에 충분하다. 몰입형 미디어아트가 무엇인지 진수를 체험하는 순간이다.
 
어두운 벙커 벽면과 바닥 전체에 흩뿌려지는 명작 황홀경에 온 몸을 감싸는 명곡에 온통 젖어 전시장 곳곳을 여유롭게 돌아 다니며 작품을 터치할 수도 있고 때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살아 움직이는 듯한 명작들을 즐길 수도 있다. ‘빛의 벙커’, ‘고흐와 고갱의 명작들’ 그리고 ‘내’가 삼위 몰아일체가 되는 듯한 감동에 50여분 간 넋을 잃고 즐기게 된다.
 
프랑스 Culturespaces사의 새로운 장르의 전시회, ‘CULTURESPACES DIGITAL®’ 시스템을 통해 재 탄생된 반 고흐의 위대한 걸작들, 고갱의 명작들이 빛의 벙커 벽과 바닥 입체적으로 정신없이 휘몰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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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디어아트의 주인공은 분명 빈센트 반 고흐이다. 하지만 그가 존경했고 애증의 동료였던 폴 고갱도 반 고흐전을 빛나게 하는 훌륭한 조연 역할을 한다. 고흐(1853년 3월 30일~1890년 7월 29일)에게 있어 고갱(1848년 6월 7일~1903년 5월 8일)은 서른일곱 고흐의 짧은 생애 있어 매우 굵고 중요한 한 획을 그리고 떠나간다.
 
나이가 다섯 살이나 더 많은 고갱을 고흐는 좋아하는 정도를 넘어 존경하고 흠모하기까지도 했다. 그런 고갱을 고흐와 한 집에서 함께하게 만들어 준 사람은 바로 고흐의 동생 테호였다. 아를의 노란 집에서 화가들의 공동체를 꿈꾸었던 고흐에게 테호는 그 당시 예술가들은 누구나 그러했듯이 늘 돈 때문에 시달리던 고갱에게 생활비를 대주며 함께하게 했다. 고갱 입장에서도 테호의 제안이 나쁠 게 없었기에 받아들였다.
 
고갱이 온다는 소식에 함께할 기쁨으로 그를 기다리며 그린 작품이 ‘해바라기’와 ‘아를의 침실’이다. 1888년 10월 23일 고갱이 반 고흐를 처음 만나러 아를에 왔을 때 그가 그린 해바라기를 보고 그의 천재성에 감탄했다고 한다. 이토록 고갱을 원했것만 고흐와 고갱의 동거생활은 불과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으로 파탄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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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와 고갱은 미술적 취향도, 기질도, 그 밖에도 추구하는 바도 다 달랐다. 어찌 보면 처음부터 같이 하지 말아야 할 존재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음울하고 이성적이지 못했던 고흐, 자기중심적이고 이성적이었던 고갱은 그럼에도 60일간 동안 서로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정을 나누었다. 하지만 서로에게 초상화를 그려주기로 하고 고갱이 고흐를 술에 취한 것 같은 모습으로 그린 자화상은 모독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그들의 갈등은 더욱 심해졌고 불화는 극에 달한다. 예술적 우정은 증오로 바뀌고 날로 논쟁은 심해져 급기야 고흐가 왼쪽 귀를 자른 광기어린 행동을 한 후에는 둘은 한 번도 다시 만나지 못했다.
 
둘이 함께한 시간은 어쩜 운명적 만남이었고 그들 삶에 있어서 상극인 걸 말면서도 서로의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훗날 고갱의 작품에서 고흐의 영향을 받은 듯한 노란색도 작품에 들어있었으며 둘이 함께할 때 명작이 많이 탄생했다고 한다.
 
고흐의 자살소식을 동생 테오에게 전해 들은 고갱은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그는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예술가였고 그의 그림 속에서 그의 눈과 마음을 볼 것"이라며 고갱을 무시하는 듯 했지만 속 마음은 그렇지 않았음을 보여준다.(냉철한 고갱의 솔직환 표현이다)
 
미디어아트 전의 총괄 디렉터, 지안프랑코 이안누치(Gianfranco Iannuzzi)는 “반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The Potato Eaters, 1885), 별이 빛나는 밤(Starry Night, 1889), 해바라기(Sunflowers, 1888)에서부터 아를의 반 고흐의 방(The Bedroom at Arles, 1889)에 이르기까지 격변을 거친 반 고흐의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대담한 색의 사용으로 그림에 독창성을 더한 반 고흐의 표현력과 강렬한 붓 터치를 벙커 벽면과 바닥을 통해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빛의 벙커의 이번 몰입형 전시에서는 반 고흐의 감성적이고 혼란에 가득 찬 시적인 내면세계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빛과 그림자의 끊임없는 소용돌이를 감상할 수 있다”고 가이드 한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컬러리스트, 태양의 화가, 37년의 짧은 생애, 의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 편의 대 서사시인 이 미디어아트는 고흐의 ①뉘넨(Neunen, 1885년 이전), ②아를(Arles, 1886~1888), ③파리(Paris, 1888년 2월~1889년 5월), ④생레미 드 프로방스(Saint Rémy de Provence, 1889년 5월~1890년 5월), ⑤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 1890년 5월~7월)시절 등으로 주제별 여정을 따라간다. 고흐의 초기 작품에서부터 전성기에 완성된 작품까지, 그리고 풍경화와 야경에서부터 자화상과 정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반 고흐의 모든 것을 접할 수 있다.
 
제니스 죠플린의 코즈믹 블루스 밴드 음악이 흐르면서 초기시절들 작품이 보여진다. 평소 고흐가 따르고 싶었던 밀레의 작품들이 오마주 된 듯한 ‘씨뿌리는 사람’, ‘땀 흘리는 농부’, ‘일출 아래 수확하는 농부’ 등이 보여지는데 이런 작품들은 평소 고흐의 순례자의 삶의 단면들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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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램프 아래 회색조의 '감자먹는 사람들'이 그리그의 페르귄트 조곡 중 솔베이지의 노래가 무겁게 깔리면서 나타난다. 고흐는 스스로가 이 작품이 첫 번째 작품이라고 할 정도로 애정을 가졌다. 목사이던 아버지가 뉘넨에 정착해 힘들게 살던 시절 농부들에서 느낀 동질감의 표현이라고 한다. 그 힘든 시절을 그린 그림들로는 ‘베를 짜는 직조공’, ‘난로 옆의 농부’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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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메타나 교향시 나의 조국 중 몰다우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그 유명한, 걍렬한 노란색채의 ‘해바라기’가 화면에 나타난다. 앞서 설명했듯 이 작품은 애증의 동료 고갱을 맞이하기 위한 그림이었다. 고흐가 태양의 화가로 불리게 하는 해바라기는 고흐의 상징색된 강한 크롬 옐로를 썼는데 이후에도 적어도 시리즈로 열한 점 이상의 해바라기를 그린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시베리아의 금광에서 발견된 진홍색 수정 홍연석에서 추출되는 크롬 옐로는 시간이 흐를수록 갈색으로 변하는 단점이 있어 오늘날의 작품은 당시의 강렬한 본래의 색이 아니다. 그러나 미디어아트에서는 고흐의 노란색채를 해석해 재현해 표현헀다고 한다.
 
19세기 가장 번성했던 예술촌, 파리 북부의 몽마르뜨(Montmartre) 언덕에서의 고흐 작품들이 푸치니 토스카 중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선율로 보여진다. 피카소, 모딜리아니 등이 활동하던 몽마르뜨 클리치가의 아파트에서 살면서 그리기 시작한 몽마르뜨 풍경화 시리즈 속에는 몽마르뜨의 길, 언덕, 풍차, 채석장 등이 있다. 고흐는 처음에는 어두운 회색의 풍경화를 그렸고 1886년 가을부터 점차 밝아지기 시작하더니 1887년에는 더욱 밝아졌다.
 
아를에서의 고흐는 희로애락이 집대성되는 시기였다. 노란집에 고갱이 들어오면서 환희도 잠시, 고갱이 그려 준 약에 취한 사람처럼 그린 초상화로 충격을 받았으며 쇠락하고 기괴하게 변해 가는 고흐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림으로 자신을 모욕하는 고갱과의 불화는 깊어간다. 결국에는 귀까지 절단하며 둘은 파멸되고 애증의 관계로 종결된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라는 끈적한 째즈 선율을 배경으로 ‘밤의 카페 테라스’, ‘아를의 밤의 카페’, ‘고흐의 방’ 등이 보여진다. 이 14개월 동안 200여 점을 그린 고흐의 예술혼이 뿜어지는 전성기였다.
 
또 하나의 대표작 ‘별이 빛나는 밤’ (뉴욕 현대미술관 MOMA 소장)과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파리 오르세미술관 Musée d'Orsay 소장)이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이 울려 펴지는 가운데 화면을 채운다. 밤하늘은 별빛으로 요동치고 땅에서는 사이프러스나무가 마치 불꽃처럼 소용돌이치는 별이 빛나는 밤은 고흐가 1889년 정신병원에서 나와 기억을(고통을) 떠올려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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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은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리게 영감을 준 작품으로 미디어아트에서는 별빛에 반짝이는 강 물결을 영상으로 재현해 멋지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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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가 생레미병원에서 그린 여러 소나무 그림도 화면에 등장한다. 고흐의 분방함과 자기만의 색채로 소나무를 그렸으며 올리브나무 그림도 14점이나 그렸다. 고흐는 자연 속 나무를 보면 감정과 표정이 보인다고 말할 정도로 자연과 교감해 나무를 그린 그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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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시모의 Don't Let Me Be Misunderstood가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가운데 고흐가 입원했던 프랑스 남부 도시 생 레미 드 프로방스(Saint Remy de Provence) 생 폴 무솔 정신병원의 복도, 자화상 등이 나타난다. 이 때가 고흐에게는 가장 힘든 시기로 귀 절단 사건 등 정신적 충격과 우울증에 빠져 자발적 정신병원에 1년여 투병 기간을 갖는다. 정말 좋아했고 존경했던 고갱과의 불화가 큰 원인이었는데 그는 투병 생활 중에도 붓을 놓지 않았는데 고흐에게 그림은 치유였다.
 
이제 고흐전의 37세 마지막 대미를 장식할 오베르시의 작품 ‘오베르의 평원’이 브람스 피아노협주곡 2번과 함께 화면 가득 흐른다. 정신병원에서 나온 후 그는 오베르시 오하즈에 입성해 다시 열정적으로 작업을 한다. ‘오하즈의 교회’, ‘오베르의 계단’ 등 말년기의 작품들이 보여지며 까마귀떼가 밀밭 가득 날아드는 ‘까마귀가 나는 밀밭’ 그림으로 미디어아트 고흐전은 끝이 난다. 설에 의하면 고흐는 이 밀밭에서 슬픔과 고독을 모두 안고 권총으로 자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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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미디어아트 폴 고갱의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는 안개가 자욱한 깊은 밤, 낯설고 웅장한 열대 숲에서 여인네들의 얼굴이 드러나면서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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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의 고향인 브르타뉴(Brittany)로의 회상에서 시골풍경과 마을 사람들, 여성 농민들이 계절의 변화에 맞춰 등장하고 그들은 고갱의 그림 속을 거닐며 작가의 기억에 리듬을 타고 모였다가 흩어진다. 고갱의 걸작들은 고갱의 자화상으로 10여 분간의 영상은 끝이 난다.
 
이번 미디어아트는 음악과 미술을 모르는 관람객들에게도 독특한 예술적 경험을 느끼게 하고 몰입감을 가질 수 있다. 또한 어디선가 한 번은 본듯한 고흐, 고갱의 명작들과 유명 음악가들의 명곡이 어우러지는 시청각으로 50여 분간을 편안하게 감상할 수도 있다.
 
2월 28일까지 서귀포 성산 빛의 벙커에서 열리는 ‘고흐와 고갱 명작들의 대 서사시’ 향연을 놓치면 분명 후회할 것이다. 꼭 한 번 다녀오시라고 권하고 싶다.(글:단무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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