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설봉산•설화산으로 불리는 겨울 설악 눈꽃 산행

내설악 용대리에서 백담사를 거쳐 설악산 탐방지원센터까지
기사입력 2021.02.12 00:12 조회수 3,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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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청.JPG

신성하고 숭고한 산이라는 뜻에서 예로부터 설산(雪山)•설봉산(雪峰山)•설화산(雪華山)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고 금강산(1,638m)을 서리뫼[霜嶽]라고 한 것과 관련해 우리말로 설뫼[雪嶽]라고도 했다는 산, 남한에서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설악산(1,708m)을 일컫는 말이다.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있으며 북쪽으로는 향로봉(1,293m)•금강산, 남쪽으로는 점봉산(1,424m)•오대산(1,563m)과 마주한다. 최고봉은 대청봉이다. 대청봉 남쪽에 한계령, 북쪽에 마등령•미시령 등의 고개가 있다.

위치상 산맥의 서쪽 인제군에 속하는 지역을 내설악, 동쪽을 외설악으로 나누는데 남설악의 오색지구도 있다. 내설악에는 미시령, 대청봉, 한계령을 수원지로 하여 소양강•북한강으로 이어지는 계곡도 있다.

내설악의 명승지로는 647년(신라 진덕여왕 1)에 창건된 고찰 백담사(百潭寺)를 비롯해 대승(大勝)•와룡(臥龍)•유달•쌍폭(雙瀑) 등의 폭포, 수렴동(水簾洞)•가야동(伽倻洞)•구곡담(九曲潭) 등의 계곡과 옥녀탕(玉女湯) 등 이름난 곳이 많다.

외설악은 대청봉에서 동쪽으로 뻗은 능선을 경계로 북외설악과 남외설악으로 나뉜다. 관모산(冠帽山:874m)•천불동계곡•울산바위•권금성(權金城)•금강굴 외에 비룡폭포•토왕성폭포•귀면암(鬼面巖)•와선대(臥仙臺)•비선대(飛仙臺) 등 기암괴석과 계곡이 절경을 이룬다.

설악은 사시사철 절경을 즐길 수 있지만 산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겨울 눈꽃산행을 으뜸으로 친다. 그 중 내설악 용대리에서 백담사로 올라 외설악 설악동 탐방지원센터까지 종주 코스는 가장 사랑을 받고 있다. 총 길이가 45km를 넘는 장거리 코스로 1박 2일을 예정하고 걸어야 한다.백담사13.JPG
지도에서 보듯이 당일 코스로는 이른 새벽(4:00)에 출발해 설악동 탐방지원센터까지 갈 수 있는 오색약수기점(1)과 한계령기점(2)이 있다. 두 코스 모두 대청봉으로 올라 설악동으로 내려가거나 원점회기를 하기도 한다. 우리는 산행 당시 1박 2일을 예상하고 용대리를 들머리로 백담사를 거쳐 중청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희운각 대피소로 내려가 거기서 공룡능선을 거쳐 마등령, 설악동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잡았지만 폭설로 공룡능선을 통제해 천불동계곡, 양폭산장, 비선대를 거쳐 설악동으로 하산할 수 밖에 없었다.

설악 눈꽃 산행을 제대로 즐기려면 1박 2일 코스가 좋은데 심설이 쌓인 산행은 힘이 들지만 설악산국립국립공원 통제를 따른다면 러셀이 잘 되어 있어 안전산행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용대리를 들머리로 해 첫 날 소청대피소까지 약 19km를 오르기로 했다.

눈이 쌓이지 않은 계절에는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 셔틀버스가 운행되지만 겨울에는 눈이 많이 쌓여 길이 위험해 버스가 운행되지 않는다. 따라서 용대리 입구부터 백담사까지 약 7.5km를 걸어 올라 처음부터 힘이 들었다.백담사.jpg
많은 불교신도와 탐방객들이 찾는 백담사는 신라 진덕여왕 원년(647년)에 자장율사에 의해 한계령 부근에 처음 세워져 한계사라 불리었으나 이후 십여 차례의 화재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결국 1457년, 대청봉에서 백 번째의 작은 못(百潭)이 이어진 이곳에 재건되어 백담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6.25 전쟁 때 다시 소실되었다가 1957년에 재건되어 현재는 내설악의 대표적인 절로 자리 잡고 있다.백담사1.jpg
백담사를 지나 수렴동계곡을 향해 산길을 오르다 보면 영시암이 나온다. 이 영시암(永矢庵)은 '영원히 쏜 화살'이라는 뜻으로 숙종 15년(1689년) 장희빈 사건 때 남인이 서인을 몰아내고 정권을 재집권하는 등 매우 혼란한 시기에 영원히 세상과 단절하고자 함을 맹세하는 뜻으로 김창흡이 창건한 암자이다.

영시암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이 수렴동 대피소로 가는 길이고 왼쪽은 오세암으로 가는 길로 마등령, 금강굴을 지나 설악동으로 내려갈 수 있다. 하지만 심설에는 위험해 통제를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수렴동 대피소, 봉정암 방향으로 오르는 것이 좋다.

백담사에서 수렴동 대피소를 지나 구곡담 계곡에 들어서면 맑은 계곡과 좌우 산세가 어우러지지만 겨울 산행에서는 아쉽게도 눈과 얼음으로 덮혀  쌍용폭포 등을 제대로 감상할 수가 없다. 이곳을 지나면 봉정암(鳳頂庵)에 이른다. 봉정암은 백담사 부속암자로 소청봉 아래 해발 1244 m 에 위치해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신 5대 적멸보궁 하나로 불교 성지이다. 삼국시대에 자장율사가 진신사리를 이곳에 모시면서 봉정암을 창건했으며 통일신라 때 원효대사가 고려 때 지눌이 중건하는 등 여러 차례 중건을 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백담사5.jpg


벡담사6.jpg

수렴동계곡과 봉정암 구간에는 험난하기로 유명한 용아장성이 있다. 사망사고로 악명높은 용아장성(龍牙長城)은 용의 이빨처럼 보인다하여 이름이 유래된 절벽암릉구간으로 매우 험난하고 위험한 지역으로 출입금지 구역이다. 2013년 명승 제102호로 지정된 내설악지구에 있는 능선으로 공룡능선과 함께 설악산의 대표적인 능선이다.

용아장성은 수렴동대피소에서 봉정암에 이르는 약 5㎞ 구간에 걸쳐 날카로운 암봉들로 형성되어 있다. 북쪽으로는 가야동계곡을 끼고 공룡능선과 마주보며 남쪽으로는 수렴동계곡과 구곡담계곡을 끼고 서북능선을 마주한다. 뾰족하게 솟은 20여 개의 크고 작은 암석 봉우리들이 용의 송곳니처럼 솟아 성곽처럼 길게 늘어져 있다.

봉정암을 지나 오르면 소청대피소가 있는데 그 당시에 소청대피소(사진)는 숙박이 되는 곳이 아니고 매점만 이용이 가능했다. 사진 속 구 대피소는 모두 철거가 돼 현재는 현대적 대피소로 탈바꿈했다. 대부분의 등반객들은 소청대피소에서 30여분을 더 오르면 있는 중청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다음 날 새벽 대청봉에서 일출을 감상한다. 하지만 일출은 정말 맑은 날에만 볼 수 있는 행운으로 여간해서는 보기 힘들다.백담사10.jpg
둘째 날 많이 올랐던 대청봉에는 오르지 않고 공룡능선을 타기 위해 희운각대피소 방향으로 하산을 한다. 이 방향은 겨울 설악 하산의 또 다른 매력을 경험할 수 있다. 희운각대피소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계단이 많아 힘들고 위험하다. 철계단을 내려서면 희운각대피소이다. 이곳에서도 숙박이 가능한데 공룡능선에 오르는 산객들이 주로 이용한다. 우리 일행은 여기서 좌측의 공룡능선으로 접어들려고 했으나 폭설로 통제를 해서 천불동쪽으로 하산을 해야 했다.백담사9.jpg
가을 단풍이 장관인 천불동계곡의 겨울은 겨울에도 그 장관을 그대로 볼 수 있어 좋다. 설악골 계곡이라고도 불리는 천불동계곡은 설악의 대표적 계곡 중 하나이다. 비선대에서 대청봉으로 오르는 7km 코스의 중간 계곡으로 설악의 산악미를 한곳에 집약하듯, 와선대를 비롯하여 비선대 문주담, 이호담 귀면암, 오련폭포, 양폭, 천당폭포 등 유수한 경관들이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천불동이라는 호칭은 천불폭포에서 딴 것이며 계곡 일대에 펼쳐지는 천봉만암과 청수옥담의 세계가 마치 ‘천불’의 기관을 구현한 것 같다고 일컬어지고 있다.백담사12.jpg


백담사11.jpg

천불동계곡을 지나면 양폭대피소가 나온다. 양폭대피소는 2012년 화재로 전소돼 다시 지었다.  여기서 마지막 숨을 고르고 비선대의 지리한 산행으로 마무리를 해야 한다.

비선대를 지나면 설악동 소공원 에서 이제 1박 2일의 산행이 마무리된다. 신흥사는 652년(진덕여왕 6년)에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원래는 향성사(香城寺)라 하였으며 당시 계조암(繼祖庵)과 능인암(能仁庵)도 함께 지었다. 그러나 701년(효소왕 10년)에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의상(義湘)대사가 자리를 능인암터로 옮겨 향성사를 중건하고 절 이름을 선정사(禪定寺)라명했다. 선정사는 1000년 동안 번창하였으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구층탑이 파괴되었고 1642년(인조 20)에는 또 화재로 완전히 타 버렸다.

1644년에 영서(靈瑞)•연옥(蓮玉)•혜원(惠元) 등이 중창을 발원하던 중 하루는 세 승려가 똑같이 소림암(小林庵)에서 나타난 신인(神人)이 이곳에 절을 지으면 수만 년이 가도 3재(災)가 범하지 못할 것이라고 일러주는 꿈을 꾸고 선정사 옛터 아래쪽 약 10리 지점에 다시 절을 짓고 이름을 지금의 신흥사라로 정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로 절 일원이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 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높이 14.6m의 세계 최대 청동불좌상이 일주문 앞에 봉안되어있다.(통일을 염원해 조성되었다 하여 통일대불로도 불린다.

신흥사를 지나 권금성으로 오르는 케이블카를 보니 이번 일정이 끝났음을 느꼈다. 어찌 보면 눈쌓인 설악이 걷기에 더 좋을지도 몰랐다는 생각이 들며 꿈 같은 1박 2일의 눈꽃산행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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