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시조 온조의 숨결이 숨어있는 위례신도시

기사입력 2021.11.02 10:54 조회수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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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례(慰禮)는 2008년 국토해양부에서 ‘위례신도시’ 개발계획을 발표하면서 이름이 회자됐다. 그러나 관할 법정동은 난해하다. 위례를 검색하면 서울 송파구 장지동(일부), 거여동(일부),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창곡동, 복정동(일부), 경기도 하남시 학암동, 감이동(일부)로 다양하게 나온다.


신도시 계획수립 당시 행정구역 통합을 추진했지만 지방자치단체간 이해관계 충돌로 행정구역 경계선을 조정하는 미봉책이 오늘에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현실을 만들었고 관할 관공서와 학군도 분리되어 있다.

위례의 역사적 사실을 따져보면 이런 복잡한 현실은 이미 예견(?)된 듯 하다. 위례라는 이름은 백제 시조인 온조가 처음으로 도읍을 세운 위례성에서 따왔다. 2,000여 년 전, 운명의 여인 소서노는 전 남편과 낳은 비류와 온조를 데리고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과 재혼했다. 그러나 주몽의 전처 자식인 유리가 찾아오자 두 아들을 데리고 고구려를 떠나 지금의 서울 근처에 정착하게 된다.위례3.png
큰 아들인 비류는 미추홀에서, 작은 아들은 아리수의 남쪽 위례성에 나라를 열어 백제의 시조가 됐다. 그러나 미추홀과 위례성의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지 않는다.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은 미추홀을 인천으로, 위례를 경기도 직산 일대로 추정했다.

온조 13년에 하북 위례성에서 한수를 건너 지금의 몽촌토성 부근 평지에 궁궐을 짓고 백성들을 옮겨 살게 했는데 목책을 세워 도성의 모습을 갖추고서 하남위례성이라 했다. 그 후 하남시 춘궁동 이성산 밑에 하남위례성으로 천도 하였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백제의 첫 도읍지인 위례성의 위치는 현재의 충남 청원군 직산 부근으로 보는 견해가 조선시대 중기까지만 하여도 거의 정설이 되다시피 하였다. 문헌상 위례성이 직산설을 가장 먼저 주장하고 있는 것은 삼국유사이다.

삼국유사 1권 왕력에 기록된 백제 온조왕 즉위년조에는 ‘위례성에 도읍함이라고 되어 있음. 혹은 사천이라고도 함, 지금의 직산이라 하였으며 다시 동왕 변진년조에 도읍을 한산으로 옮겼는데 지금의 광주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위례성의 직산설이 아무런 근거없이 나왔다기보다는 실제로 직산지역이 백제시대 위례성으로 불리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것은 백제가 고구려에게 한강 유역을 빼앗기고 남천한 이후의 일로서 온조왕 14년의 천도지 즉 하남 위례성이 지금의 광주지역에는 그 뒤로 아무런 이론이 없지만 초도지인 위례성이 직산에 있었다는 삼국유사 이래의 주장의 실학자 정약용에 의하여 비로소 부정되고 서울, 광주 일대가 백제의 초도지였다는 주장이 정착하게 되어 오늘날은 대부분이 이에 의심을 품지 않는다.(광주시 역사)

위례라는 명칭은 한자로 ‘慰禮’라는 설과 순수 우리말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위(慰)는 편안하다는 의미이고 예(禮)는 예절을 의미하니 제삿상(示)에 음식을 풍성(豊)하게 담아 제사 지낸다는 풍요를 상징하는 글자이다. 또 순수한 우리말로 경계를 뜻하는 ‘우리’(울타리)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크고(大), 많다(多)는 뜻의 한 울타리 안에서 ‘여러’이 모여 큰 고을을 이루는 대읍(大邑)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보면 하남위례성에 대해 '삼국사기'에서는 “북쪽으로는 한수(한강)가 흐르고, 동쪽으로는 높은 산(검단산)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비옥한 땅(강남,탄천 일원)이 바라 보이며, 서쪽은 대해(서해)가 가로 막혀 있다” 는 지형지세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조선시대 병자호란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인조실록 등 관련문헌를 보면 인조대왕이 온조왕 사당이 있는 남한산성에서 4개 월여간 청나라 태종의 20만 대군를 상대로 결사항전하다가 결국 삼전도(지금의 송파구 삼전동)에서 굴욕적인 항복의례가 있었다는 기록있다.

위례성이라는 명칭이 어디에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다. 한강을 뜻하는 옛 이름 아리수(阿利水)•욱리하(郁利河)의‘아리’•‘욱리’에서 왔다고도 하고 백제에서 왕을 가리키는 호칭이었던 어라하(於羅瑕)에서 왔다는 의견과 울타리를 말하는 순우리말 '우리'에서 유래했다는 의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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