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진다고 바람을 탓하랴, 조지훈의 주실마을

기사입력 2022.01.06 08:44 조회수 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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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향(文鄕)의 고장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에는 유명한 주실마을이 있다. 북쪽으로 일월산이 있고 서쪽에는 청기면, 동쪽은 수비면, 남쪽은 영양읍과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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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때 조광조의 기묘사화 환란을 피해 한양 조씨, 호은공(壺隱公) 조전(趙佺) 선생이 인조 7년(1629)년 주실마을에 처음 들어와 정착한 집성촌이다. 마을 전경이 배 모양을 닮았고 산골등짝이 서로 맞닿아 이루어진 마을이라 하여 주실(注室) 또는 주곡(注谷)이라 부른다. 일제 강점기때는 서슬 퍼런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던 지조가 있는 마을이다.
 
청록파 시인이자 승무(僧舞)의 시인으로 유명한 조지훈(1920∼1968)이 태어난 주실마을은 전통마을이다. 조지훈 시인은 본명이 동탁(東卓)으로 박목월, 박두진과 공동으로 간행한 청록집의 시편들에서 주로 민족사의 맥락과 고전미 세계에 대한 찬양과 선(禪)세계를 노래하였는데 유교 도덕주의의 격조높은 자연 인식을 보인다는 점에서 시문학사적 의의가 있다고 평가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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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자들과의 교류와 개화 개혁으로 이어진 진취적인 문화를 간직한 매우 유서 깊은 마을, 주실 마을에는 조지훈 시인의 생가인 호은종택과 호은공의 증손자인 옥천 조덕린 선생의 옥천종택, 조선 영조 49년(1773)에 후진 양성을 위하여 건립한 월록서당 등 문화자원들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지훈문학관과 지훈시공원, 시인의 숲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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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양군청)

 

호은종택은 몸체와 관리사로 나뉘어 있으며 몸체는 앞면 7칸•옆면 7칸 규모에 ㅁ자형 평면을 갖추고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으로 꾸몄고 전형적인 영남 북부지방 양반가의 풍모를 지니고 있다. 대문과 중문에는 태극기를 조각하여 채색한 것을 끼워두었고 집 주위는 고풍스러운 담을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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