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선생과 윤봉길의사의 회중시계 인연

기사입력 2022.01.28 08:30 조회수 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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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 의거 전 김구 선생 2원 하는 회중시계와 6원 하는 윤봉길 의사 시계와 맞바꾼 일화로 유명하다.
1932년 4월, 상하이 홍커우공원에서 열리게 된 일왕의 생일축하 행사.윤의사의 도시락 폭탄 의거 준비.
거사 떠나기 전 윤봉길의사는 평소 존경했던 김구선생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자신의 시계와 교환해 찾다.김구선생은 광복 후에도 이 시계를 간직하며 윤의사를 기렸다고 한다.

회2.png

(사진:YTN 사이언스 캡쳐)
 
갑자기 회중시계 와 손목시계 유래가 궁금해졌다.
오늘날 우리가 입는 오른쪽 주머니 안에 작은 주머니가 당시 남자들이 작업복으로 입던 청바지 안에 회중시계를 넣고 다니다 후에 전용주머니를 만든 것이다.
 
손목시계 결정적 계기는 1899년 아프리카 전쟁 발발 당시 한 영국군 장교가 회중시계를 손목에 밴드로 묶고 다녔다.무장한 군복에서 그때 그때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하는 일이 귀찮았기 때문이다.
얼마 뒤 독일 해군이 장교들에게 후갑판을 성큼성큼 걸어 다니면서 주머니을 더듬지 말고 손목에 시계를 차라는 명령을 내림 으로써 손목에 시계를 차게 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스위스의 '오메가'사에서 1902년 손목시계를 제작 하기에 이르렀다.

회중시계가 19세기의 유행 시계라면 손목시계는 20세기의 상징적인 상품으로 등장한 것이다.

회4.png

 
(위키백과 회중시계 설명)
최초의 회중시계는 14세기에 만들어졌다. 이 시계는 오차가 매우 컸는데 16세기 직진식 탈진기가 채용되어 오차가 크게 줄어들었다.
회중 시계가 제 1 차 세계 대전부터 손목 시계로 대체되기 시작하였는데 전투 현장의 장교들은 손목에 착용 한 시계가 주머니에 든 시계보다 더 쉽게 사용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또한 최근에 휴대 전화 및 허리에 착용하는 다른 장치의 출현으로, 특히 주머니가 있어야 하는 장치는 일반적으로 시간을 유지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같은 위치에 회중 시계를 가지고 다니는 필요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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