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절-설날

기사입력 2022.01.31 12:30 조회수 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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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은 한국의 대표적인 명절로 음력 1월 1일이다. 새해의 첫날로 원단(元旦) 혹은 세수(歲首)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양력 1월 1일인 새해 첫날 보다는 설날에 차례를 지내며 일가 친척이 모이는 전통 명절로 하고 있다.

 

섣달 그믐 저녁부터 복을 기원하고 잡귀를 막는 의미로 복조리, 갈퀴, 체 등을 벽에 걸고 새해맞이 준비를 한다. 설날 아침에는 '설빔'이라 하여 새 옷을 마련해 입고 정성껏 준비한 음식으로 조상에게 차례를 지낸다. 차례를 지낸 후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는데 절을 받은 어른들은 덕담(德談)을 하거나 아이들에게 세뱃돈을 준다.

 

차례는 떡국으로 지내는데 떡국을 먹었다는 것은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는 의미가 된다. 또한 세주(歲酒)라 하여 데우지 않은 찬 술을 마시는데 이 술을 마시면 질병을 앓지 않는다고 하며 봄을 맞이하는 뜻이 들어 있다. 또한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윷놀이, 널뛰기, 그네타기. 연날리기, 자치기, 제기차기 등의 놀이를 즐긴다.
 
설날은 삼국유사에 기록이 나오는데 서기 488년 신라 비처왕 시절부터 고려와 조선까지 이어지다가 일제 강점기 을미개혁으로 양력이 도입되면서 1896년부터 공식적인 새해 첫날의 기능은 양력 1월 1일(양력설)이 되었다.
 
광복 이후에도 이후 40여 년간 설날보다는 양력 1월 1일부터 1월 3일까지를 공식 공휴일로 지정했다. 이승만, 박정희 정부는 이중과세(二重過歲)라는 이유로 사기업체의 휴무에 불이익을 주면서까지 음력설을 없애려 했고 1월 1일에 차례를 지낼 것을 권장해 서울 등 대도시의 일부 가정에서는 양력설을 쇠는 풍토가 생겨났다.
 
그러다 노태우 정부부터 민족 고유의 설날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여론을 받아들여 1989년에 음력1월 1일을 설날로 하고 섣달그믐(음력 12월 말일)부터 음력 1월 2일까지 3일 간을 공휴일로 지정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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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국가기록원)
 
설날 세시풍속
①세배(큰절)
집안에 따라 종교나 가풍에 따라 다른 경우도 있지만 보통 설날 아침에는 전통적으로 차례를 지내고, 떡국을 먹는다. 설날에 떡국을 먹는 것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의미가 있다.
 
차례를 지내고 난 후에는 친척이나 이웃 웃어른들에 세배를 한다. 세배는 웃어른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세배를 받은 웃어른들은 아랫사람에게 답례로 세뱃돈이나 덕담을 해준다.
 
②설빔(새 옷)
설날에 남자•여자•늙은이•젊은이•어린이 할 것 없이 모두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갈아입은 새 옷을 설빔이라고 하며 '세장'이라고도 한다. 설빔은 섣달 그믐 이전에 색깔이 있는 화려한 옷으로 마련하여 대체로 대보름까지 입는다.
 
③설음식
설날 차리는 음식은 '세찬(歲饌)', 술은 '세주(歲酒)'라고 한다. 설날이 되면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먹고, 세배하러 온 손님에게도 대접하는데 이때 반드시 떡국을 차린다. 흰쌀을 빻아 만든 떡국은 설날 아침 제사지낼 때 제물(祭物)로 차리거나 손님에게 차려 내는데, 새해 때마다 떡국을 먹으므로 아이들이 나이를 물을 때 "떡국 몇 그릇 먹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설날 흰떡을 사용하여 떡국을 만드는 것은 새해 첫날이 밝아오므로 밝음의 뜻으로 흰떡을 사용하고 떡국의 떡을 둥글게 하는 것은 둥근 태양을 상징하는 등 태양숭배 사상에서 유래된 듯하다. 설날에는 떡국 외에도 쇠고기 산적, 떡갈비, 식혜, 수정과 등을 먹는다.
 
④신년운세(토정비결)
정초에 개인의 사주(四柱) 중 태어난 연•월•일 세 가지로 육십갑자(六十甲子)를 이용해 일년 동안의 신수를 열두 달 별로 알아보는 운세. 토정비결을 보는 풍습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오행점(五行占)으로 한 해의 신수를 본다고 적혀 있어 정조 이후인 조선 말기부터 세시풍속으로 자리잡은 듯하다.
 
이전까지 오행점ㆍ농점ㆍ윷점 등으로 한 해의 농사나 가정의 화목을 점치던 것에 비해, 조선 말기 민생의 곤궁이 심해지자 보다 개인적이고 세분된 예언을 희구하던 시대적 요청에 따라 등장하게 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이전에는 주로 동네에서 한학을 공부한 어른들을 찾아 토정비결을 보았으나 1970년대 이후부터는 거리에 토정비결을 봐주는 점복사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고 근래에는 컴퓨터를 이용한 인터넷 토정비결도 성행하고 있다. 정초의 세시풍속에 유난히 점복적인 요소가 강하듯이 새해를 맞아 한 해에 대한 기대심리와 놀이적 요소가 복합된 풍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⑤복조리
설날 이른 아침 또는 섣달 그믐날 밤 자정이 지나서,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어 엮어서 만든 조리를 사서 벽에 걸어 두는 풍습이 있는데 이것을 복조리라고 한다. 전국에서 조리 장사가 이것을 팔기 위하여 초하루 전날 밤부터 밤새도록 인가 골목을 돌아다닌다.
 
이러한 풍속은 조리가 쌀을 이는 기구이므로 그 해의 행운을 조리로 일어 취한다는 뜻에서 비롯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설날에 1년 동안 사용할 조리를 그 수량대로 사서 방 한쪽 구석이나 대청 한 귀퉁이에 걸어 두고 하나씩 사용하면 1년 동안 복이 많이 들어온다는 민간 신앙도 있다.
 
⑥야광귀
설날 밤에 야광이란 귀신이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내려와 아이들의 신을 신어 보고 발에 맞으면 신고 간다는 속설이 있다. 신을 잃어버린 아이는 그 해 운수가 불길하다고 하여 모두들 신을 감추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체를 마루 벽이나 대문 위에 걸어 두면 야광귀가 와서 체의 구멍을 세느라고 아이들의 신을 신어 볼 생각을 못하고 있다가 날이 밝으면 도망쳐 버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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