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옥으로 유명한 계동(桂洞)

기사입력 2022.05.23 08:29 조회수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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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동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동명. 동쪽으로는 원서동(苑西洞), 서쪽으로는 가회동(嘉會洞)·재동(齋洞), 북쪽으로는 삼청동(三淸洞), 남쪽으로는 운니동(雲泥洞)과 접해 있다.

 
계동 동명은 원래 이곳에 조선시대 의료기관이던 제생원(濟生院, 조선 초기 서민들의 질병치료를 관장하였던 의료기관. 원래는 널리 은혜를 베푼다는 뜻의 광혜원이었으나 문을 연 지 13일 만에 대중을 구제한다는 뜻으로 제중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이 있어서 제생원(濟生洞)이라 하던 것이 음이 변하여 계생동(桂生洞)이라 불리다가 1914년 동명 제정 때 계생동의 발음이 기생원(妓生洞)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생’자를 생략하여 계동으로 줄인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계동.jpg

계동은 조선 중기까지 한성부 북부 양덕방에 속하였고 영조 27년(1751)에 간행된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는 한성부 북부 양덕방계로 되어 있었다. 고종 4년(1867)에 간행된 '육전조례'에는 양덕방 계생동계로 바뀌었으며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로 한성부 북서(北署) 양덕방 계생동계에 계동이 신설되었다.
 
1910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7호에 의해 한성부 북서에서 경성부 북부로 바뀌었고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 3호에 의해 개편된 북부 양덕방의 계동 지역이 1914년 4월 1일 경기도고시 제 7호에 따라 새로 통합되면서 계동으로 칭하였다. 같은 해 9월 27일 경성부조례 제 8호로 북부출장소의 관할에 속하고 이듬해 6월 1일에는 북부출장소의 폐지로 경성부 직할이 되었다.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로 경성부 관할구역이 확장되고 경기도고시 제 32호로 동 명칭이 개정될 때 경성부 걔동정(桂洞町)이 되고 1943년 6월 10일 조선총독부령 제1 63호에 의한 구제도(區制度) 실시로 종로구가 신설되면서 경성부 종로구 계동정이 되었다. 광복 후 1946년 10월 1일 서울시헌장과 미군정법령 제 106호에 의해 일제식 동명을 우리 동명으로 바꿀 때 계동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계동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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