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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를 깨우는 경칩의 생태학
개구리를 깨우는 경칩의 생태학
경칩은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날로 24절기 중 세 번째 절기로 2022년 경칩은 3월 5일이다. 우수와 경칩이 지나면 대동강물이 풀린다고 하여 완연한 봄을 느끼게 된다. 초목의 싹이 돋아나고 동면하던 벌레들도 땅속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이날 농촌에서는 산이나 논의 물이 괸 곳을 찾아다니며 몸이 건강해지기를 바라면서 개구리(또는 도롱뇽)알을 건져다 먹는다. 그러나 야생 개구리를 잡아먹는다는 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고 요즘은 야생 개구리를 잡아먹으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벌금이 2,000만 원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히 보이는 참개구리 도롱뇽 알 또 경칩에 흙일하면 탈이 없다고 하여 벽을 바르거나 담을 쌓기도 한다. 특히 빈대가 없어진다고 하여 일부러 흙벽을 바르기도 한다. 빈대가 심한 집에서는 재를 탄 물그릇을 방 네 귀퉁이에 놓아두기도 한다. 경칩에는 보리 싹의 성장을 보아 그해 농사를 예측하기도 한다. 또한 고로쇠나무(단풍나무, 으름 넝쿨)를 베어 그 수액(水液)을 마시는데 위장병이나 속병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특히 전남 구례의 송광사나 선암사 일대에서 채취한 고로쇠 수액은 유명하다. 보통의 나무들은 절기상 2월의 중기인 춘분(春分)이 되어야 물이 오르지만 남부지방의 나무는 다소 일찍 물이 오르므로 첫 수액을 통해 한 해의 새 기운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고로쇠 수액은 구름이 끼거나 바람이 불어 일기(日氣)가 불순하면 좋은 수액이 나오지 않고 날이 맑아야만 수액이 약효가 있다. 경칩이 지나서는 수액이 잘 나오지 않으며 나오더라도 그 수액은 약효가 적다. 이처럼 경칩은 만물이 약동하는 시기로 움츠려 지냈던 겨울이 끝나고 새로운 생명력이 소생하는 절기이다. 경칩(驚蟄)은 놀랄 경(驚), 잠자는 벌레 칩(蟄)이란 한자를 쓰기 때문에, 경칩의 정확한 의미는 개구리가 깨어나는 날이 아니고 동면중인 모든 벌레가 깨어나는 날, 즉 모든 생물이 활동을 시작하는 날로 이해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한 의미가 될 듯싶다. 스스로 체온 조절을 하지 못하는 변온동물인 개구리는 기온이 영하로 덜어지는 겨울에 돌아다니다간 굶어 죽거나 얼어 죽기 십상이다. 개구리의 먹이가 되는 곤충들도 체온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겨울에는 활동할 수 없다. 활동과 먹이 사냥이 불가능한 겨울에는 참고 버티자는 전략으로 한겨울에도 0~4℃ 정도를 유지하는 깊은 물속에서 겨울을 난다. 두꺼비와 같이 땅을 파는 재주가 있는 종류는 땅을 파고 들어가 겨울을 이겨낸다. 물두꺼비 다람쥐나 햄스터의 경우는 체온 조절이 가능한 항온동물이다. 즉 변온동물과 항온동물의 장점을 함께 이용한다. 기온이 높은 시기에는 다른 포유류처럼 스스로 체온을 조절하며 생활하다가 기온이 내려가는 시기에는 체온을 3℃ 정도로 낮춰 겨울을 이겨낸다. 체온을 낮추면 맥박이 100분의 1로 줄어 대사율이 낮아지기 때문에 먹지 않아도 긴 겨울을 버틸 수 있다. 우리가 처한 환경이 도저히 살아남기 어려울 정도로 혹독하다면 개구리의 겨울잠 전략을 적용하여 소비를 줄이고 버디고 견디며 따뜻한 봄날을 기다리는 것이 경칩에 개구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인 것 같다. 가장 일찍 겨울잠에서 깨는 산개구리 경칩을 기다리며 잔인한 계절을 이겨내는 개구리 겨울잠은 아주 많은 시간을 들이고 혹독한 희생을 치르며 기후에 적응한 진화의 산물이다. 그러나 진화에 의한 생존이란 자연의 법칙이 깨어지는 사건이 최근 너무나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경칩 이후 꽃샘추위가 너무 강하여 겨잠에서 깨어나 땅위로 나왔던 개구리가 얼어 죽고 봄이 온줄 알고 낳았던 알조차 얼어 터져 버리는 현상이 매년 일어나고 있다. 적응된 자연의 배신이라는 현상에 대하여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요즘 화두가 되는 지구적 기후 위기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45억 년 지구 역사에서 가장 개체수가 많고 대형 잡식성 동물인 인간의 탄생이 매년 수만 마리의 개구리를 얼어 죽게 만들고 있다. 원인은 알고 있지만 이미 인간의 통제를 넘어선 상황이다. 기후 위기라는 환경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환경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인간들이 한 명 한 명 생길 때마다 지구 멸망의 확률이 아주 조금씩 줄어들 뿐이다. 생태학자 최한수평생을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싶은 자연인.글쓰기, 야생화 탐사, 조류 탐사, 생태 사진 찍기와 오지 탐험이 취미.생태문화콘텐츠연구회 회장. 환경부 전국자연환경조사 전문조사원, 청계천 조류탐사교실 강사, 경희대학교 이과대학 강사, 동덕여대 교양학부 강사, 한성대학교 교양학부 강사 등.저서로는 ‘학교 가는 길에 만난 나무 이야기’, ‘숲이 희망이다.’ ‘생생한 사진으로 만나는 식물 백과’, 생태시집 ‘노루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