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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문학산 삼호현(三呼峴), ‘사모지 고개’
인천 문학산 삼호현(三呼峴), ‘사모지 고개’
인천의 진산인 문학산을 걷다 보면 서쪽 거의 끝 부분에 위치한 연경산(일명 노적봉)이 이어지는 곳에 삼호현(三呼峴) 또는 ‘사모지 고개’ ‘사모재 고개’ 등으로 불리는 나지막한 고개가 있다. 옛날 사람들이 인천 읍내에서 문학산 기슭을 넘어 지금의 송도 방면 바다로 갈 때 이용하던 고개인데 지금의 행정구역으로 보면 문학동에서 청학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이미 백제시대부터 뱃길로 중국을 오가던 사신들이 지금의 송도 능허대(凌虛臺) 주변 한나루[大津]에서 배를 타기 위해 넘어 다니던 고개가 바로 삼호현이라 하며 그 이름도 이 같은 사연에서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중국을 오가던 사신들은 수도(首都)를 떠난 뒤 지금 남동구 만수동의 ‘별리현(別離峴)’을 거쳐, 다시 삼호현을 넘고 한나루에 도착했다. 이때 그들을 배웅하려 따라온 가족들은 별리현에서 헤어져야만 했는데 삼호현에 오른 사신들이 여전히 별리현에 서있는 가족들을 보며 ‘이름을 세 번[三] 불렀다[呼]’거나 ‘잘 다녀오겠다고 세 번을 말했다’ 해서 이 이름이 붙었다는 전설이다. 여기서 삼(三)이란 꼭 그 숫자가 아니라 ‘삼 동서가 모이면 황소도 잡는다’는 속담에서 보듯 여럿 또는 여러 번을 뜻하는 말이다. 사모지 또는 사모재 고개에 대해서는 사신들이 헤어진 가족을 사모해서 붙은 이름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이보다는 ‘삼호’의 발음이 바뀌어 ‘사모’가 되고, 여기에 ‘지’나 ‘재’가 덧붙은 형태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이때 ‘(삼호)지’는 물론 ‘재’의 발음이 바뀐 것이다. (출처: 인천광역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