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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 아래 도시빈민과 노동자들의 정주공간, 창신동(昌信洞)
낙산 아래 도시빈민과 노동자들의 정주공간, 창신동(昌信洞)
영조 27년(1751)에 ‘도성 삼군문 분계총록’에 보면 숭신방(성외) 밑에 숭신방계와 인창방(성외) 밑에 인창방계에 걸쳐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정조 13년(1789)에 간행된 ‘호구총수’를 보면 숭신방계가 숭신동계로, 인창방계가 인창동계로 바뀌어 있다. 갑오개혁(1894) 때 한성부 동서(東署) 숭신방(성외) 밑에 동문외계의 홍수동ㆍ복거교ㆍ남교ㆍ대정동ㆍ정자동ㆍ신리와 인창방(성외) 밑에 동문외계의 부정동ㆍ복거교 등으로 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1년에는 경기도령 제 3호에 의해 이 지역은 숭신면과 인창면이 되었다가 1914년 조선총독부령 제 111호 '부ㆍ군의 명칭ㆍ위치 및 관할구역의 개정'으로 경성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다시 경성부 동부에 편입되었으며 이어 경기도고시 제 7호에 의해 이 지역은 숭신면 자지동ㆍ정자동ㆍ성저동ㆍ신촌ㆍ당현동ㆍ인수동ㆍ복거교ㆍ홍수동ㆍ대정동ㆍ남교와 인창면 부어정동ㆍ복거교 등을 합하여 창신동이라 하였다. 1936년 경기도고시 제 32호에 의해 일제식 명칭으로 변경함에 따라 창신정이 되었다. 1943년 조선총독부령 제 163호에 의해 구제가 실시됨에 따라 동대문구가 설치되어 이에 속하였고 광복 후 1946년 일제식 동명을 모두 없앨 때 창신동으로 되었다. 1975년 대통령령 제 7816호에 의해 동대문구로부터 이관, 종로구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서울시 종로구 지명 유래)
새로운 기원 전(BC, Before Corona)과 기원 후
새로운 기원 전(BC, Before Corona)과 기원 후
한때 유머 게시판에 올라왔던 글이 하나 있다. 미국 초등학교 시험에 B.C와 A.D의 약자를 물어보는 문제가 출제됐는데 한 학생이 B.C는 Before Christ라고 쉽게 답을 적었지만 A.D는 도저히 정답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을 거듭하던 그 아이가 적은 최종 답변은 'After Death'(그리스도의 죽음 이후)였다고 한다. (정답은 라틴어 Anno Domini, 영어 번역은 In the year of the Lord로 그리스도의 해(年) 정도가 되겠다) 구세주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사건을 기준으로 그 전과 후가 나뉘어 시대가 구분되었듯이 이제 코로나바이러스가 인류를 위협하며 새로운 시대의 기원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미 많은 사람이 질병에 걸려 사망하거나 병상에 누워 사투를 벌이고 있고 우리는 자신도 혹시 확진되지 않을까 두려움에 사로잡혀 지내고 있다. 어제 정부가 발표한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도 '2.5 수위'로 격상되면서 홍수가 넘실거리며 언제 범람할지 모르는 제방의 처지 마냥 우리는 불안감과 무력감마저 느끼고 있기도 하다. 그야말로 곳곳에 죽음의 기운이 만연하며 <신체적-정신적-사회적 사망 사태>와 그 이후(After Death)의 변화된 세상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돼버린 것이다. 격변기를 지나면서 '과연 어떤 세상이 도래할 것인가'에 대한 전망도 중요하지만 '과연 어떤 시대(Era)가 저물어 가는가'에 대한 질문 역시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기는 서양사의 분류법에 따르면 '근·현대'라고 명명할 수 있고 그 이전에는 '중세'가 지속하고 있었다는 정설을 모두 알고 있다. 각 시대에는 세상을 지배하는 정신, 혹은 가치가 공기처럼 퍼져 있으며 후대에 이를 정리해서 개념화하고 역사의 교훈을 얻으려고 한다. 중세를 지배하던 정신적 가치는(물론 서양의 역사이지만) <절대 신의 뜻(섭리)> 라고 말할 수 있으며 천 년이란 시간 동안 켜켜이 쌓인 부작용들에 대한 반동으로 <인간의 자유(의지)>가 아니었을까? 정신적으로 종교 혁명이 코로나바이러스처럼 유럽을 뒤덮었고 활자의 발명을 필두로 한 과학 기술의 산업 혁명을 통해 인간이 이성 理性을 대면하게 되면서 신은 점점 인간에게서 언택트(Untact)한 존재가 되었다. 신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인간은 이제 부모에게서 독립한 자식처럼 세상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자유를 만끽하며 잠재적인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기계를 발명하고 공장을 세우고 도시를 이루며 시장 market에서 자신이 보유한 가치와 타인의 그것을 교환하며 경제 활동을 이어나가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진 인간은 여세를 몰아 이성의 힘을 빌려 의료와 교육 체계를 발전시키며 더 오래 살고 더 보람있게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이성이 인간을 미개한 동굴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등불이 될 수는 있어도 야만적인 욕망의 늪에서 구출해 주는 밧줄이 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말이다. 자유시장 경제주의는 엄격한 아버지와 같은 절대 신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애로운 어머니와 같은 자연이 지니고 있는 자원을 마음껏 끌어다가 상상을 초월한 물질적 풍요로움을 창출했다. 하지만 내면에 숨길 수 없이 자리 잡고 있는 탐욕으로 인해 빈익빈 부익부의 정의롭지 못한 결과를 초래했고 자원을 제공하는 자연마저 훼손하며 점점 파멸을 향한 기차에 올라타는 위험을 자초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서사의 어쩌면 마지막 종착역이 될 수도 있는 결말이 바로 코로나 사태가 아닐까? 중세의 시작을 생각해 보면 거기에 자애로움과 희생과 헌신이라는 귀하고 값진 가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천 년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물이 고여 썩듯이 그 가치가 점점 인간을 위협하고 착취하는 괴물로 변질하였으며 인간은 그에 저항하여 새로운 가치를 세워 역사를 이끌어 왔다. 이제 신성불가침의 인간의 당당한 자유 의지와 정의로운 평등 의식,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교환 가치 등이 예전의 괴물의 자식처럼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는가. 앞으로 우리는 무한 리필처럼 제공되던 자유가 상당 부분 제한되기도 하고 공익을 위해 어느 정도 불평등한 조치가 취해지는 현상들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왕래하며(물론 돈이 있다면) 물자와 서비스를 교환하며 부를 축적하는 행위들도 고장이 난 기계처럼 원활하지 못한 채 버벅거리는 일들도 겪게 될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는 무척이나 강하고 질겨서 현재로서는 아직 확실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앞으로 또 얼마나 그에 못지않은 아니 더욱 강력한 무엇인가가 인간이 만든 질서를 무너뜨리기 위해 창궐할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는 예전에 중세를 넘어 근현대의 시대를 열었고 가까이 보면 두 번의 세계 대전을 지나며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며 한 단계 높은 가치를 생산해 낸 사실이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인간이 지닌 이성의 힘을 믿지만 같은 인간이 지닌 탐욕의 위력을 거부한다.아울러 엄청난 혼돈이 주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또한 그걸 딛고 다시 새로운 길을 만들어 냈던 역사를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은 나에게 기원전이 끝나고 기원후(After Desire)가 열리는 세상이 아닐까 한다.
뮤지컬 ‘에비타’, 70년전의 아르헨티나와 오늘의 대한민국
뮤지컬 ‘에비타’, 70년전의 아르헨티나와 오늘의 대한민국
에비타. 오늘은 한때 아르헨티나의 국모(國母)로 추앙받던 '에바 페론'의 별칭인 'EVITA'의 뮤지컬 이야기로서 주요 출연자는 '대통령:후안 페론' '영부인:에바 페론' '이야기꾼:체 게바라'이다. 참고로 Evita는 ‘Little Eva’의 아르헨티나식 줄임말이다. 1952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담배연기 가득찬 어느 영화관. 갑자기 영화상영이 중단되고 '에바 페론'의 서거가 발표되는데 수많은 국민들은 슬퍼하고 그 모습은 어린시절 에바 페론의 부친장례식과 오버랩 되고 다시 그녀의 장례식 모습으로 이어진다. 근현대사에서 가장 극적인 신분상승의 신데렐라 스토리. 15세때 연예인의 꿈을 꾸며 고향을 떠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상경하지만 겨우 클럽댄서로 일하게 되는 그녀. 성공을 위해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남자들을 그 수단으로 활용하고 결국 모델과 성우 그리고 배우를 거쳐 방송계로 진출한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쿠테타로 연이은 정국불안이 계속되었고 이때 '후안 페론'이 국민적 지지를 받게 되지만 그 상승세는 예측하지 못했던 전국적인 큰 지진으로 묻혀진다. 바로 그때 '후안페론'은 기금모금 이벤트에 유명 인사를 초청하는데 거기서 두 사람의 만남이 우연히 이루어지고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애도, Make your choice!
애도, Make your choice!
서울 시장이 죽었다. 자연사가 아닌 급작스러운 자살 뉴스에 시민들은 혼란과 당혹감에 빠지고 말았다. 수년 동안 지속해서 성추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고소한 피해자가 있었기에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망자를 두둔하려는 측과 비난하려는 측이 서로 팽팽하게 대립하며 설전을 벌이고 있다. 개인의 죽음 앞에서 그의 정치적 과업에 대한 평가와 애도를 표하는 방식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는 지금, 나는 과연 어떤 식으로 입장표명을 해야 할지 난감하다. 여권의 대선주자라고 하는데 나는 그를 후보로서 선호하거나 지지하는 편은 아니다. 서울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2년 전인 지난 지방 선거에서 그에게 비록 한 표를 행사했지만, 그건 내가 지지하는 정당의 대표로 그가 출마했기 때문이었다. 조금 길게 보자면 지난 2016년 겨울, 적폐 청산을 위한 대통령 탄핵 집회에서 길거리 연설을 하는 그를 직접 지켜본 적이 있었다. 당시 대중 연설에는 능하지 못해 보이는 그의 모습 때문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조금 안쓰러운 느낌마저 받았다. 그가 서울 시장의 자리에서 단호하게 시민의 편에 서서 광장을 열어주고 화장실 등 편의 시설을 개방해 준 덕분에 기본적인 호감과 감사를 지니고 있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