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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화장실 문화 정립시킨 WTA 초대회장 ‘Mr. Toilet’ 심재덕 11주년 추모식
세계 화장실 문화 정립시킨 WTA 초대회장 ‘Mr. Toilet’ 심재덕 11주년 추모식
눈 감고 코 막고 외면하던 곳, 님의 손길 닿으니 향기나는 세상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미스터 토일렛’ ‘심재덕’ 선생님! (장사익 씀) 화장실을 문화로 승화시킨 ‘Mr. Toilet’ 심재덕. 2020년 1월 14일 그의 11주기 추모식이 수원시 이목동 해우제 문화센터에서 열렸다. 평소 그의 인간성을 알 수 있듯이 이목동 배나무골 주민, 수원지역 국회의원, 시의원, 시 관계자, 예술인, 지인 등이 11년이 지난 지금도 예전처럼 모여 그를 추모하고 있는 것이다. 고인과는 남다른 인연이 있어 그의 장례식에서 ‘하늘가는 길’을 불러주었던 노래꾼 장사익씨의 글에서 알 수 있듯이 더럽다고 외면하던 변소를 향기나는 화장실 문화로 바꾸기 위해 자신의 몸까지 바쳐가면서 평생 화장실을 생각했다. 그래서 스스로를 미스터 화장실이라 불렀다. 화장실 문화운동에 매진하기 위해 자신의 몸도 돌보지 않아 아이러니 하게도 전립선 암으로 돌아갔다. 자신의 몸을 불태워 세계화장실 협회를 살려 낸 것이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이 날도 참석해 무반주로 천상병시인의 '귀천'을 불러 주었다) 사실 그는 화장실문화 전도사가 아니다. 국회의원, 수원시장이 그의 본문이었다. 그럼에도 그런 이름보다는 미스터 토일렛으로 불려질 바랐고 사후에도 그렇게 기억되길 원했다. 생전에 그를 만났을 때 비위생적인 화장실로 인해 세계 각국의 후진국들이 각종 전염병 발병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하며 화장실 개선만으로도 인간들의 위생이 획기적을 개선될 수 있디면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수만의 아이들을 살릴 수 있다고 역설하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 실제로 그는 자기 집을 세계 최초, 최대 변기 모양으로 만들어 살 정도로 화장실 문화에 대한 집념이 대단했다. ‘근심을 덜어내는 집’이라는 이름의 ‘해우재(解憂齋)’(지하 1층, 지상 2층)는 원래 심 전 시장이 30여 년간 살아왔던 집을 2007년 변기모양으로 지었는데 2009년 세상을 떠나면서 수원시에 기증했다. 수원시는 해우재를 화장실문화 전시관으로 만들고 일대를 화장실문화 공원으로 만드는 등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며 수원시 화장실 문화 전시관으로 운영 중이다. (사진: 해우재문화센터) 뒷간, 변소로 불리며 냄새나고 지저분한 공간이던 공중화장실을 민선 초대 수원시장, 심재덕 미스터 토일렛의 노력으로 오늘날에 이르렀다. 2002 한·일 월드컵 경기 유치를 위해 시·군간의 경쟁이 치열하던 1996년 당시 심재덕 수원시장은 화장실 TF팀을 만들었다. 또한 1999년에는 한국화장실협회를 만들어 국내 화장실 문화 개혁을 이끌었다. 오늘날 고속도로와 주요 관광지의 모습이 그의 노력이 시발점이 되었다. 이후 2007년 11월에는 화장실 전문 국제기구인 세계화장실협회(WTA)를 창립해 초대 회장으로 취임하고 세계로 화장실 문화 확산을 해 나가 결실을 맺었다. 현재는 염태영 수원시장이 고인의 유지를 따라 2014년 세계화장실협회 회장을 맡아 심 전 시장이 수원시에 뿌린 화장실 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 WTA는 위생이 열악한 개도국에 ‘희망의 화장실 프로젝트’를 통해 16개국에 33개 공중화장실 설치를 지원했다. 또한 세계화장실 기술표준 제정과 UN, KOICA 등 국내외 국제기구·민간기구와 협력사업 등으로 세계 화장실 문화 확산에 우리나라가 자랑스런 리더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노력의 결실로 고인이 그토록 원했던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의 ‘특별 협의 지위(Special consultative status)’를 획득하며 글로벌 비정부기구로서의 위상을 갖췄다. '영원한 수원시장'으로 수원시민에게 아직도 기억되고 있는 심재덕 전 시장을 기리기 위해 심재덕기념사업회(회장 선정선)는 수원 곳곳에 남아 있는 ‘심재덕의 발자취를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으로 심 전 시장이 복원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킨 화성행궁을 시작으로 화홍문, 방화수류정, 연무대, 광교산 반딧불이 화장실, 수원 월드컵 경기장, 해우재를 둘러보는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특히 반딧불이 화장실은 수원시가 세계화장실문화의 메카라는 호칭을 얻은 상징적인 건물이다. 매년 1월 14일이면 수원시 이목동 배나무골에서는 Mr. Toilet을 기리는 추모제가 계속 열릴 것이다. 그는 ‘영원한 수원시장 심재덕’이다. (사진: 심재덕기념사업회)
95년 역사, 국내 첫 민간 백운산장 3대에서 막 내리다
95년 역사, 국내 첫 민간 백운산장 3대에서 막 내리다
(사진:백운산장 보존대책위원회) 1924년 지어진 국내 첫 민간 산장, 백운산장이 우여곡절 끝에 2019년 12월로 95년 역사를 마감했다. 산악인은 물론이고 주말이면 서울 북한산을 찾았던 일반인들도 백운대에 오르려면 누구나 한 번쯤 막걸리 한 잔과 국수로 힘든 산행을 쉬어가게 해 주던 보금자리였다. 그러던 백운산장이 국립공단과의 오랜 소송 끝에 패소하고 현판을 내린 것이다. 공단 측은 향후 새 단장을 하고 백운대피소로 산악 안내와 특수산악구조대의 근무 공간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백운대와 인수봉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는 백운산장은 1924년 이해문씨가 작은 움막으로 시작한 것이 그 출발이었다. 그 후 이영구씨가 1946년 산장에 들어왔으며 2018년 3일 이영구씨가 87세를 일기로 별세하면서 이인덕씨가 이어 받았다. (사진:이승용) 백운산장이 공단과 소송이 시작된 것은 1992년 등산객 실화로 화재가 발생했고 1998년 기부채납(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무상으로 재산을 증여하는 것)을 조건으로 국립공원관리공단으로부터 신축 허가를 받은 것에서부터 기인한다. 그 후 무상사용기간으로 정한 20년 경과 후 2017년이 되자 공단은 기부채납 이행을 요구했고 산장 측은 민간이 계속 운영하도록 산악인들의 유지 서명으로 맞서자 공단 측이 2017년 7월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법원이 2019년 5월 공단 승소 판결을 내리면서 2019년 12월 2일 민간인 산장의 역사는 막을 내린 것이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2014년 제 12회 소중한 문화유산상으로 북한산 백운산장을 선정한 바 있다. 그리고 백운산장을 사랑하는 산악인들은 서명을 통해 문화재로 남기자고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사진:백운산장 보존대책위원회) 백운산장에는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백제시대 백운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는데 이 암자터에 이해문씨와 산악인들이 의기투합해 1933년 경성영림소의 묵인하에 지은 것이 역사의 시작이다. 그후 산악인들이 의기투합으로 4년간의 공사 끝에 1960년에 번듯한 백운산장(白雲山莊)으로 완공한다. 이렇게 30년을 지켜왔는데 불행하게도 화재사고를 당한다. 1992년 6월 등산객의 부주의로 화재가 발생해 산장지붕이 전소되었다. 이로 인해 한동안 지중에 천막을 치고 운영을 하게 된다. 그러다 지붕보수를 위해 공단 측과 합의를 통해 국립공단 국유지에 건축을 허기하는 조건을 20년 기부채납 약속을 하게 된다. 사실 백운산장은 국내 국립공원 내 유일한 민간산장이고 최초의 민간산장이어서 산악인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유지에 마음을 모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지난 1971년 11월 뉴스에도 보도된 인수봉 조난사고는 아직도 산악인들의 기억 속에 있다. 71년 11월 28일 일요일 많은 암벽등반인들이 올해의 마지막 암벽등반에 나섰다. 변덕스런 산 날씨는 오후 2시부터 갑자기 급강하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바위꾼이 한꺼번에 하강을 하다 보니 일대 혼란이 일어 났고 급기야 자일이 강풍에 서로 엉키면서 참사가 예고되고 있었다. 인수봉아래 유일한 쉼터 백운산장지기였던 이영구씨는 인수봉 조난소식을 접하자 즉시 달려가 구조를 시작한다. 50여명에 이르는 조난객들은 강풍과 추위로부터 지키기 위해 불을 피고 뜨거운 물을 주고 구조 활동을 시작한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휴대폰이나 전화가 없어 조난 시 구조와 신고는 오로지 발로 해야 했기에 시간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산장지기의 구조가 이루지는 시간 하산객이 파출소에 도착해 조난신고를 하면서 방송에 조난 사실이 알려지고 오후 9시경이 되어서야 구조대가 구조를 했건만 하강도중 자일이 엉켜 동사한 5명은 끝내 구조하지 못했다. 이처럼 산장지기는 늘 조난에 가장 최전선에 있을 수 밖에 없었다. 1984년 산악구조대가 결성되기 전까지 그는 언제나 백운대 인수종 조난의 든든한 파수꾼이었다. 1965년 4월 25일 백운산장에서 결혼식을 올린 이영구씨는 2018년 9월 3일 887새로 백운산장의 지키는 영원한 혼령이 되었고 민간인 백운산장의 현판은 201년 12월 2일 그렇게 내려졌다. (사진:백운산장 보존대책위원회, 고 이영구씨, 부인 김금자)
옛 그림 원형을 살려내다
옛 그림 원형을 살려내다
지금 국립고궁박물관 1층 전시실에서는 ‘우리 손에서 되살아난 옛 그림’이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10월 13일까지 열고 있다. ‘우리 손에서 되살아났다’는 의미는 해외 기관이 소장한 우리 유물들을 국내로 들여와 보존처리하고 복원하여 원형을 되살리는 작업을 마쳤다는 뜻이다. 오랜 세월 여러 소장자를 거치며 전해진 그림들은 때를 타거나 찢기는가 하면 보수하는 과정에서 처음 그린 때의 원형을 잃기도 한다. 따라서 이런 옛 유물들을 어떻게 보존처리를 하는지? 그 과정들을 도표와 영상을 통해 친절하게 보여준다.. 되살리다, 어루만지다, 드러내다의 3단계로 나누어 그림으로 설명해 준다. [출처]국립고궁박물관 1.되살리다(Restoratio) 여러 소장자를 거치면서 본래의 형태를 잃게 된 유물은 과학적 분석과 역사적 맥락을 철저히 조사하여 제작 당시의 모습에 가깝게 복원하였다. <산시청람도> 처리 전후> Before and After the Treatment of Dwelling by a Mountain Stream 전 Before/ 후 After 2.어루만지다(Preservation) 손상이 있지만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유물은 기존의 형태를 최대한 유지하되 훼손된 부분을 보수하여 안정적인 상태로 보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백동자도 병풍> 처리 전후> Before and After the Preservation Treatment of One Hundred Children 3.드러내다(Examination) 보존처리 과정에서 새로운 정보가 밝혀지기도 한다. 스웨덴 동아시아박물관의 <난초도>는 사전 분석 과정에서 구리 성분의 안료를 사용했음이 밝혀졌다. 영국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 소장 <자수 화초길상문 병풍>은 배접지를 교체하면서 퇴색되기 전 직물의 본래 색상과 정교한 자수기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난초도> 성분 분석 Scientific Analysis of Orchids <자수 화초길상문 병풍>의 앞, 뒷면 영상물을 통해서는 ①작품을 분리하고, 건식, 습식 클리닝 단계를 거쳐 먼지를 털어내고 오염된 곳을 지우는 과정과 ②X선 형광분석기(XRF)를 통한 안료조사, ③구배접지 제거, ④여과수룰 사용한 습식클리닝, ⑤결손부 메움, ⑥건조 후 아교 더하기, ⑦꺾임 방지띠 부착, ⑧배접(褙接, 탱화를 그릴 때, 밑초가 그려진 종이를 천 위에 포개어 붙이는 일), ⑨ 장황(裝潢, 책을 꾸미고 단장하는 기술행위) 등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된 작품들은 독일의 로텐바움박물관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선교박물관 등 4개국 6개 기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의 회화와 자수 병풍 총 12점으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국내로 들여와 2017년부터 보존·복원한 작품들이다. 한편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2013년부터 현재까지 모두 8개국 21개 기관 36건의 국외문화재 보존ㆍ복원 및 활용 사업을 지원해 오고 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지원으로 보존처리를 완료한 유물을 2015년과 2016년, 2017년에도 전시를 통해 공개한 바 있다.
욱일기, 제 2차 세계대전 일본 군대의 상징
욱일기, 제 2차 세계대전 일본 군대의 상징
우리 해외 독립군은,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욱일기의 경기장 반입금지에 대한 한국 정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욱일기 사용을 승인한 일본 정부의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욱일기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 군대의 상징이며, 현재 일본 군대인 자위대의 군기이다.독일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와 같은 전범기인 것이다.일본 군국주의와 제국주의 사상을 담고 있고 FIFA에서도 허용되지 않는 욱일기 문양을 올림픽에서 허용하는 것은, 전쟁과 침략의 역사에 대해 반성 의지가 전혀 없는 현 아베 정부의 파렴치함과 전쟁에 대한 야욕이 여실히 드러난다고 하겠다.이는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에게 아직도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을 하지 않고 있는 현 일본 정부의 인권과 역사의식에 대한 문제점을 드러내는 결정이기도 하다.우리 해외독립군은,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욱일기의 사용을 아무 제재없이 허용한 일본 정부를 강력히 규탄하며, 전쟁범죄의 깃발이 올림픽에서 사용되지 못하도록 IOC에 항의하고 또한 전 세계적인 연대 활동과 노력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We deeply regret that the Japanese government has approved the use of the “rising sun” flag at the 2020 Tokyo Olympic Games, ignoring the fact that this flag was used as the symbol of the Imperial Japanese Army along with the Nazi flag before and during World War II (WWII), therefore banned at FIFA events.Despite the evidences proving that uncountable WWII war crimes and atrocities were committed by the Japanese Army under this flag as an ally of the Nazi, Japan continues to employ this flag as the symbol of its current national defence force.Japanese Government by allowing the display of this offensive symbol at one of the biggest international events such as Olympic Games clearly demonstrates its lack of willingness to resolve any outstanding human rights abuse committed under its Imperial Japanese rule during WWII and its denial of own history.We condemn this irresponsible act of the current Japanese Government. We will try our best to draw global solidarity to ban the display of this flag at the 2020 Tokyo Olympic Games including making a formal complaint to the 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 in order to prevent the Japanese Government from violating the Olympic spirit with its ongoing imperialistic ambitions. Citoyens globaux de coréens qui demeurent dans le monde, nous regrettons fort que le gouvernement japonais a approuvé l’emploi du drapeau « soleil levant » aux Jeux olympiques 2020 en ignorant le fait que ce drapeau susmentionné avait été adopté comme le symbole de l’armée japonaise impériale avant et lors de la Seconde Guerre mondiale, et par conséquent interdit aux événements de la 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 (FIFA).Malgré les évidences qui montrent innombrable crimes et atrocités de la guerre commis par l’Armée du Japon sous ce drapeau en étant l’allié du Nazi, Japon continue à s’en servir pour le symbole de ses forces de défense nationale.Le Gouvernement japonais en permettant l’affichage de ce symbole blessant à un des plus grands événements internationaux comme les Jeux Olympiques clairement démontre son manque de volonté à résoudre des abus des droits humains en suspens commis sous le régime impérial japonais au cours de la Seconde Guerre mondiale et son démenti de propre histoire.Nous condamnons cet acte irresponsable du présent Gouvernement japonais. Nous ferons notre possible de renforcer la solidarité globale pour interdire l’exhibition de ce drapeau durant les Jeux olympique Tokyo 2020 y compris procéder une plainte formelle au Comité olympique international afin d’empêcher le Gouvernement japonais de violer l’esprit olympique avec ses ambitions impérialistes.
마광수 교수의 2주기 추모 유작 기증 특별전
마광수 교수의 2주기 추모 유작 기증 특별전
고(故) 마광수 교수의 2주기를 추모하고 유작기증을 기념하는 마광수 유작 기증 특별전이 12월 31일까지 연세대학교 박물관 1층 미술전시실에서 열린다. 마광수 교수의 100여 점의 유작 중 대표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가자 장미여관으로’, ‘즐거운 사라’를 포함해 회화, 판화, 도자기 등 그림 30여 점이 육필원고와 함께 ‘마광수가 그리고 쓰다’라는 제목으로 전시된다. 각각의 주제로 네 곳으로 나뉘어 열리는 전시공간은 '마광수 약력과 영상, 작가의 인생을 들여다보다'에서는 마광수가 생전에 아낀 서재 공간과 유년시절부터 숨을 거두기 전까지의 모습, 원고, 그림, 시를 볼 수 있으며 '작가의 방, 상상력의 꽃을 피우다'에서는 원고와 저서 그리고 일러스트로 연출된 생전의 안방은 그가 어떤 공간에서 집필을 했는지를 한눈에 보여 준다. 또한 육필원고와 책이 연출되는 공간에서는 ‘그림으로 책을 품다’에서는 책과 연관된 그림을 볼 수 있고 ‘마광수의 문학과 미술’ 공간에서는 그의 철학과 문학세계를 엿볼 수 있다. 남다른 예술혼을 지니신 분으로서 워낙 시대를 앞서 갔기에 유난히 참기 어려운 고통의 시간이 그 모두를 내려 놓으셨나 보다. 민족시인 윤동주를 누구보다도 연구 하셨는데... 그가 그린 바람산 아래 장미여관으로 가 그를 따라 상상의 나래를 펼쳐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