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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을 잊고 가는, 망우리(忘憂里)
근심을 잊고 가는, 망우리(忘憂里)
서울시 중랑구와 경기도 구리시의 경계에 있는 망우(忘憂) 고개의 지명은 조선 시대 태조 이성계와 무학 대사의 일화에서 유래되었다. 이성계(李成桂)가 조선 개국 후 묘자리를 정하기 위해 고심하다가 동구릉의 건원릉(健元陵) 터를 유택지로 정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이 고개 위에 이르러 잠시 쉬면서 주위의 산천기세를 둘러보고 오랜 동안의 근심을 잊게 되었다하여 망우리라 했다고 전헤진다. 망우리하면 공동묘지 고개라 알고 있지만 현재는 신흥주택가와 교육지구로 탈바꿈해 망우리공원으로 '역사문화코스', 인문학길 '사잇길', '서울 둘레길 2코스'가 쉼과 문화가 있는 명소이다. 서울 둘레길2코스는 용마산과 아차산까지 이어지는 걷기코스로 각광받고 있는 살기 좋은 동네이다. 공동묘지터가 된 것은 1933년 미아리의 공동묘지가 포화상태가 될 것을 예상하고 경기도양주군 망우리 고개를(228만3000㎡, 약 70만평) 신규로 공동묘지를 조성하면서부터이다. 이후 1973년까지 서울시의 공동묘지로 사용되었다. 망우리는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되며 숲과 산책로를 따라 애국지사의 묘역을 만나는 역사문화공원으로 탈바꿈해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명소가 되었다. 만해 한용운, 소파 방정환, 이중섭(화가), 박인환(시인), 도산 안창호, 조봉암 등 유명 인사듫이 잠든 문화 탐방코스로 운영되고 있다. 조선 태조가 개국한 뒤 사후에 묻힐 곳을 찾기 위해 개국공신 남재(南在)를 비롯한 다른 신하들과 명당을 찾던 중, 현재의 건원릉(健元陵) 부근에서 세 혈을 얻었다. 이곳은 이미 남재가 묏자리로 잡아놓은 지라 태조가 남재에게 다른 곳과 바꿀 것을 제의했다. 남재는 “왕릉으로 정한 곳에 어찌 제가 묻힐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불경일 뿐 아니라 후손에게도 중죄가 되는 것이니 불가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태조는 “내가 잊지 아니한다는 내용의 글을 써 줄 터이니 이것으로 증빙을 삼으라.” 하고 친히 불망기(不忘記)를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 그 밖의 변이형은 특별히 발견되지 않는다. 단지 망우라는 이름이 들어간 지역은 전국에 있다. 이 밖에도 경기도 파주시 금촌동과 양주군 매곡리의 망우리 마을 그리고 망우리포, 망우릿골, 망우정, 망우제 같은 명칭이 다양하게 있다. 망우라는 낱말이 들어간 지명은 묘나 정자와 관련이 있어 걱정을 잊고 쉬는 곳, 마음을 편안히 해 주는 곳이란 의미를 가지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공동묘지가 있는 중랑구 망우동은 태조의 근심덜기와 함께 사후의 평안을 기리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지명이 분명하다.
일본에 있는 가족을 그리며 외롭게 사망한 비운의 천재화가 이중섭
일본에 있는 가족을 그리며 외롭게 사망한 비운의 천재화가 이중섭
가장 한국적인, 현대적 비운의 천재화가 이중섭(李仲燮, 1916.9.16~1956.9.6) (사진:제주특별자치도) 호는 대향(大鄕). 1916 년 9 월 16일 평안남도 평원군 생. 외가가 있는 평양의 종로보통학교에서 수학. 오산고등보통학교에서 예일대학교 출신의 미술교사 임용련(任用璉)의 지도로 일본 도쿄문화학원(분카학원, 文化學院) 미술과 입학, 재학 중인 1937년 일본의 자유 미협전에 출품하여 각광을 받으며 1940년에는 미술창작가협회전에서 협회상을 수상하고 1943년에도 역시 같은 협회전에서는 태양상(太陽賞)을 수상했다. 분카학원을 졸업하던 무렵 일본인 여성 야마모토[山本方子]와 1945년 원산에서 결혼하여 이 사이에 2남을 두었다. 1946년 원산사범학교에 미술 교사 부임. 북한 땅이 공산 치하가 되자 자유로운 창작 활동에 많은 제한을 받았다. 친구인 시인 구상(具常)의 시집 ‘응향(凝香)’의 표지화를 그려 두 사람이 같이 공산주의 당국으로부터 탄압을 받기도 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유엔군이 북진하면서 그는 자유를 찾아 원산을 탈출, 부산을 거쳐 제주도에 도착하였다. 생활고로 인해 다시 제주도에서 부산으로 돌아왔다. 이 무렵 부인과 두 아들은 일본 동경으로 건너갔으며 이중섭은 홀로 남아 부산•통영 등지로 전전하였다. 1953년 일본에 가서 가족들을 만났으나 며칠 만에 다시 귀국하였다. 이후 줄곧 가족과의 재회를 염원하다 1956년 정신이상과 영양실조로 그의 나이 40세에 적십자병원 외롭게 사망했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이중섭은 가장 한국적인 작가인 동시에 가장 현대적인 작가로 평가 받는 화가이다.그의 작풍은 야수파적인 강렬한 색감과 선묘 위주의 독특한 조형 등 서구적인 표현이지만 향토적인 숨소리와 꿈을 표현하여 한국적이면서도 웅장하고 무한한 세계를 내포하고 있다. 그의 작품의 소재는 주로 소, 닭, 어린이, 가족 등 일상성을 띠고 있으면서 시정이 넘치는 것들이다. '소', '흰 소', '투계', '집 떠나는 가족', 그리고 담뱃갑 속의 은지에 눌러 그린 수많은 은지화들이 대표작들로 남아 있다. 흰소(부분),1955,종이에 유채,29× 41cm,홍익대학교박물관 소장 그의 예술세계를 이루는 기반은 철저하게 자신의 삶으로부터 연유하고 있다. 생활고 속에서 처자마저 일본에 보내고 전국을 떠돌며 외롭게 제작한 고통의 산물들이었던 그의 작품은 1970년대에 이르러서 새롭게 조명과 재평가를 받게 된다. 생전의 많은 인간적인 에피소드와 강한 개성이 담긴 작품들로 인해, 그의 삶과 예술은 이제 대중적으로 거의 신화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생전 인간적인 에피소드와 개성 강한 작품으로 1970년대에 이르러 갖가지 회고전과 재평가 작업이 활발하게 일어나 1972년 현대화랑에서의 유작전과 화집 발간, 평전(評傳)의 간행, 일대기를 다룬 영화•연극 등이 상연되었으며 많은 작가론이 발표되었다. 또한 2016년에는 이중섭 탄생 100주년을 맞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중섭 백년의 신화’라는 전시를 통해 그의 작품세계가 재조명 되었다. 현재 제주도 서귀포 명동로•이중섭 거리는 서귀포를 소개로 많은 작품을 남긴 비운의 천재 이중섭 화백의 기념 미술관이 있다. 비운의 천재화가 이중섭의 사랑하는 가족들과 짧은 봄날 같은 행복했던 추억이 있는 서귀포 시절을 그린다. 1996년 이중섭거리 지정, 2002년 이중섭 미술관 개관, 2009년 주민자치특성화사업으로 도심 공간 야외갤러리 조성, 2009년 이중섭 미술관 창작스튜디오가 개관되어 상설 전시공간이 있다. 이중섭 예술제, 거리 공연 개최, 서귀포문화예술시장 개최 등 정기 비정기적 문화예술행사가 많은 곳으로 문화예술이 살아 숨쉬는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제주의 핫 스팟이다. 생애 일정(국립현대미술관 자료) 식민지, 전쟁, 분단 등으로 얼룩진 한국의 근대사를 관통하면서도 이중섭은 끈질기게 ‘예술가’로서의 삶을 고집했다. 일제 강점기에도 민족의 상징인 ‘소’를 서슴없이 그렸고 한없이 암울한 현실을 자조하는 그림을 남기기도 했다. 가난한 피란시절에도 가족과 행복한 시절을 보내며 순진무구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가 하면 전쟁 후에는 강렬한 의지와 자신감으로 힘찬 황소 작품들을 쏟아내었다. 그는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표현에 충실한 ‘정직한 화공’이 되고자 했고 한국의 전통미감이 발현된 ‘민족의 화가’가 되기를 소원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진 후 사기로 인한 빚에 시달렸고 경제적 생활고 속에서 ‘거식증’을 동반한 정신적 질환으로 불행한 말년을 보내야 했다. 결국 쓸쓸하고 애잔한 작품들을 뒤로 한 채 홀로 세상을 떠났다. 1916 – 1950 평원, 평양, 정주, 도쿄, 원산1936년 일본 도쿄의 제국미술학교를 거쳐 1937년– 1941년 ‘문화학원’에서 유학했는데 문화학원은 당시 일본에서도 가장 자유로운 분위기의 사립학교였다. 문화학원의 선배들도 적극 참여했던 ‘자유미술가협회’에서 작품 발표를 시작해서 일본의 주요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으며 협회의 회원 자격을 얻기도 했다. 1943년 태평양전쟁이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 가족들이 있던 원산으로 귀국, 1945년 5월 해방 직전 문화학원의 후배였던 야마모토 마사코와 원산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1950 – 1953 서귀포, 부산1950년 12월 원산 폭격을 피해 어머니는 남겨둔 채 아내 및 두 아들과 함께 부산으로 피란 내려온다. 이 때 그 이전까지 제작한 작품을 모두 어머니 품에 남겨놓고 오는 바람에 이중섭의 1950 년 이전 작품은 극히 드물다. 피란지 부산이 너무 비좁았던 관계로 1951 년 제주도로 거처를 옮기는데 여기서 약 1년간 가족들과 가난하지만 행복한 피란생활을 한다. 1951년 12월 부산으로 돌아와 피란촌을 전전하며 가난한 생활을 이어간다. 1952년 7월 아내와 두 아들이 일본으로 돌아가서 홀로 남은 가운데 작품 활동과 전시회 참가, 잡지 삽화나 도서 표지화 그리기 등을 계속한다. 그러나 부산에서 제작된 수많은 작품이 대 화재로 불타서 대부분 없어진 것으로 전한다. 이중섭의 은지화은지화는 이중섭이 창안한 새로운 기법의 작품이다. 양담배를 싸는 종이에 입혀진 은박을 새기거나 긁고 그 위에 물감을 바른 후 닦아내면 긁힌 부분에만 물감자국이 남게 된다. 그렇게 해서 깊이 패인 선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드로잉이 완성되는데, 평면이면서도 층위가 생길 뿐 아니라 반짝이는 표면효과도 특징적이어서 매우 매력적인 작품이 된다.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이러한 기법은 고려청자의 상감기법이나 철제은입사 기법을 연상시킨다.이중섭은 상당히 오랜 기간 약 300 점의 은지화를 제작했다는 증언이 있는데 그 중 일부가 전시장에 진열되었다. 제주도 서귀포 시절 행복했던 가족들의 모습을 추억하는 것에서부터 비극적인 사회 상황과 자신의 처참한 현실을 암시하는 내용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장면들이 예리한 칼로 새겨져 있다. 이중섭은 이 은지화들이 후에 ‘벽화’를 그리는 밑그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거대한 벽화를 그려서 예술이 공공장소에서 많은 이에게 향유되는 꿈에 부풀곤 했다. 1953 – 54 통영전쟁이 끝날 무렵부터 전쟁 직후 1954년 6월경까지 월남한 공예가 유강렬(1920~76)의 주선으로 통영 나전칠기전습소에서 강사로 재직하면서 비교적 안정적인 환경에서 의욕적인 작품활동을 계속했다. 아름다운 통영의 풍경을 그린 유화작품이나 유명한 ‘소’ 연작들이 이 때 제작되었다.이중섭의 개인전이 최초로 열리기도 했고 ‘4인전’에 참여하는 등 본격적으로 화가의 경력을 쌓아갔다 1955 대구1955년 1월 있었던 서울 전시에 이어 5월 대구의 미국공보원 화랑에서도 개인전을 개최한다. 절친했던 시인 구상(1919 – 2004)의 도움으로 마련된 이 전시회는 서울에서보다 더 비참한 결과를 가져왔다. 이후 가장의 역할을 해내지 못한 채 예술을 한답시고 공밥을 얻어먹고 무슨 대단한 예술가가 될 것처럼 세상을 속였다고 자책하며 거식증을 동반한 정신적인 질환에 시달렸다. 대구 외곽 왜관에 있던 구상의 집에서 머무르며 요양생활과 작품제작을 계속했다. 가족들과는 떨어진 가운데 홀로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다. 누상동, 상수동 등 지인의 집에서 기숙하며 1955년 1월에 미도파화랑에서 열리는 개인전을 준비하는데 몰두했다. 일본의 아내가 일본에서 책을 사다 한국에 판매하여 그 차익으로 수익을 내는 사업을 했으나 중간 업자가 돈을 떼먹는 바람에 극심한 빚에 시달리게 된다. 이 빚을 갚고 일본에 있는 가족들과 만나기 위해 개인전으로 통해 작품을 팔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이 전시에서 작품은 약 20 점이나 팔렸으나 수금이 되지 않아 곤경에 빠지기 시작한다. 1956 서울(정릉)병원을 전전하던 이중섭은 1955년 12월경부터 서울의 정릉에서 화가 한묵(1914 – ), 소설가박연희(1918 – 2008), 시인 조영암(1920 – ?) 등과 함께 생활했다. 이 때 문예지의 삽화를 그리기도 하고 ‘돌아오지 않는 강’ 연작을 포함한 마지막 작품들을 남겼다. 그러나 거식증으로 인한 영양실조, 간장염 등으로 인해 다시 병원생활을 하다가 1956년 9월 6일 적십자병원에서 무연고자로 생을 마감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서울 망우리공원에 묘소와 묘비를 마련했다.
가을엔 추자도에 가자!(1-상추자도)
가을엔 추자도에 가자!(1-상추자도)
해마다 ‘10월의 마지막 밤을 추자도에서’라는 테마를 가지고 진행했었다.올해는 사정 상 추자도를 가는 게 1주일 연기되어 11월8일(일)~9일(월)에 들어가기로 했다.하루는 상추자도, 하루는 하추자도 이틀 일정을 잡아야 한다. 그런데 해상의 날씨가 심상치 않다. 날씨는 맑음으로 끝내주는데 강풍 예보가… ☹☹ 마음 조리던 것과는 다르게 당일 날 아침 출항이 결정 되었고 우린 운좋게도 해남 우수영까지 가는 퀸스타2호를 타고 상추자에 도착했다. 오후에 주의보가 내려 퀸스타는 다시 제주항으로 회귀.역시 추자도~♡ 주차장에서 여객선 터미널로 들어가기 전에 추자도를 눈으로 먼저 숙지하고~ㅎㅎ 핑크핑크한 승선권을 거머쥐니 가슴이 콩닥콩닥매년 들어가는데 이번처럼 걱정을 해본 건 처음이었지 소요시간 1시간인데 55분쯤 만에 도착해 놀랐다.생각보다 파도는 위협적이지 않았지만 어느 구간에선 상당히 흔들흔들...굳이 멀미약을 먹지 않는 게 좋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도착해 걷는 동안 약에 취해서 힘들어 하는 경우를 가끔 봤기에. 짐들을 민박집에 놓고 가볍게 배낭을 메고 제주올레 18-1코스 안내소 앞에서 인증 샷을 찍고이제부터 올레길+번외코스를 골라 걷는다. ‘다무래미’(썰물 때는 추자 본 섬과 연결되는 추자도판 모세의 기적 섬)언제쯤 저 섬으로 건너가 볼까낭?매번 노려 보는데 말이지 언제와도 좋아 좋앙!철썩철썩 파도는 노래하고 몽돌들의 세레머니는 기분을 한층 좋게 했고 바람은 미친 듯 춤추던 시간.우리가 간다...간다 샷으로 깔깔깔 웃고 또 웃고~ㅎㅎㅎ 아쉽지만... 어여 서두르자~ㅎ 푸르다 못해 검푸르던 바다~♡ 번외코스를 걸어 다시 용둠벙전망대로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인생도 그러하듯 숨이 턱까지 차오를 즈음 만날 절경을 기대하며... 탄성을 지른다. 언제 와봐도 감탄이 반복되는 나바론 절벽영화 ‘나바론 요새’에 나오는 절벽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다시 용둠벙을 건너 이제부턴 하늘 아래 가장 짜릿한 트레킹 구간인 나바론 하늘길을 걸을거당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조금 힘들다는 하늘길~ㅎㅎ 절경속으로 자꾸만 들어가는건?? 바람이 불어줘야 제주도 특히 섬다워~ㅎㅎ 떠나기 아쉽단말야 아무래도ㅋㅋ다음엔 더 느릿느릿 걷고 멈춰보리라. 걸어온 하늘길을 내려다보면 캬! 소리가 저절로 ㅋ 간세바위다~ 섬마을 풍경은 언제나 평화롭다. 가을가을 추자도~♡그리고 행복한 우리들~♡ 거대한 용 한 마리가 바다로 향하는 거 같은 절경.구절초와 갯쑥부쟁이 꽃이 아직 피어있어 반겨주던. 바람에 모자가 날아갈까 봐 목에 두른 스카프로 꽁꽁 묶었단.우린 마냥 뒷 쳐지게 되는 느림보들ㅋㅋㅋ 부처손이 유난히 많던 나바론 하늘길 상추자를 벗어나 하추자 초입에 굴비상에서~ㅎㅎ굴비 입 속으로 들어가 찍음. 해를번쩍들어버린대단한 사람들~ㅎㅎㅎ 아이고 허리 다리야...그래그래 멋진 사진은 거져 얻어지는 게 아니랑께 이제 또 어여 서두르자욤 속도를 내기로 했다~ㅎㅎ햇님이 바다 수평선에 가까워질 시간이니.픽업 나와줄 민박집에 전화를 하려면 산길을 걸어 접근하기 좋은 큰길까지 나가야 했음으로결국 돈대산에서 노을을 볼까 했는데 급 기온이 차가워져 묵리마을로 내려왔지 중간 스탬프도 찍을 겸 오랜만에 스탬프도 찍어봤넹~ ㅎㅎ 숙소로 돌아와 새벽 1시 넘어서까지 눈물의 추자도의 멋진 밤을 보냈다.너무너무 많이 웃어서 달달한 눈물들을 훔쳤단...
Traditional Korean Music - Chongmyo Ritual Music
Traditional Korean Music - Chongmyo Ritual Music
Since ancient times Koreans have been known for their passion for music. A third-century Chinese history tells of Koreans playing music while working, in festivals, in ancestral memorial rituals and funerals, and shamanic rites. Music enhanced efficiency and the ritual atmosphere. The first Korean records of traditional music refer to autumn harvest festivals in the fifth century, The Koguryo Kingdom (37 B.C.-A.D. 668), the ceremony which honored Chumong, the kingdom's founder, and offered thanks for the autumn harvest; the spirit-invoking drums honoring the heavens in the Puyo Kingdom (4th century B.C.-A.D. 4th century); and the Ye Kingdom dance honoring the heavens. During these festivities, music was simple, using percussion instruments such as drums and bells. Later, many more elaborate musical instruments were introduced from China or developed in Korea. Ritual MusicRitual music was played at various rites, Confucian, Buddhist, and shamanic. Each special event and ceremony had its own music, but, with the fall of the Choson Dynasty in 1910, most rituals were abandoned except for those held at Chongmyo, the royal ancestral shrine of the Choson Dynasty and Munmyo, the ancestral shrine honoring outstanding Confucians. The term ka-ak refers to artistic songs of the chong-ak, or proper music tradition, cultivated by the literati of the Choson Dynasty. The oldest of these songs are long lyric songs based on three-stanza lyric poems. Kasa was long verses sung to a definite rhythm. They developed toward the end of the Koryo Dynasty. The shorter poems took their final form toward the end of the Choson Dynasty. Chongmyo Ritual Music The music performed during the royal ancestral rites is thought to derive from court music imported from China and to have been used during the Koryo period, which preceded Choson. New music was composed in 1447 by King Sejong and designated for use at royal banquets and parties. It was shortened for use in ancestral rituals in 1462. The work memorialized the civil merits of past monarchs, and another type praised military prowess. The music was accompanied by highly ritualized dancing and lyrics. Many rare musical instruments have survived thanks to the royal ancestral memorial rites.
영양 송이버섯만찬!
영양 송이버섯만찬!
노을도 예쁜 날 저번 주 우리동네 동생이 주고 간 송이 세 송이를 손님이 온다고 두었다가 오시질 않아서 썩어 버리면 뭐하노 묵자하고 소불고기랑 차렸다. 청정 영양송이 자랑 좀 하련다. 반딧불이가 살고 있는 경북 영양의 산골에서 채취한 영양송이는, 특히 일월산 자락에서 자라는 소나무의 일등 춘향목(금강송) 주변에서 자라 그 향과 맛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의 경계를 이루는 일월산은 영양송이가 자라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일월산은 20~80년된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적당한 수분을 머금고 있는 양질의 산성토양(마사토)에서 우수한 송이가 자란다. 일교차가 10℃정도로 커 육질이 단단하고 향이 좋을 뿐만 아니라 색깔이 선명하고 탄력성있는 영양송이가 많이 자라는 지역이다. 청정자연을 영양삼아 자라 육질이 단단하고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동의보감에서 우리나라 버섯 중 으뜸이라고 평가한 송이버섯은 소나무뿌리와 공생하면서 발생시키는 특이한 버섯으로 천연의 맛과 향기가 뛰어나다. 송이는 소나무뿌리와 더불어 살아가는데 소나무로부터 탄수화물을 공급받으며 땅속으로 뻗어서 무기양분을 흡수하여 일부를 소나무에 공급한다. 송이는 지표면을 뚫고 나오는 버섯으로서 독특한 향기로 인하여 버섯의 왕, 숲 속의 보물이다. 송이는 여러가지 한방적 효능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송이는 살아 있는 소나무와 함께 살아가면서 자실체(버섯)를 만드는 활물공생균으로서 균근이라 불린다. 인공재배가 안돼 오직 자연산만 체취되고 있다.
(지금 독도는) 울릉도에서 87.4㎞, 육안으로도 보이는 ‘독도에 가보셨나요’
(지금 독도는) 울릉도에서 87.4㎞, 육안으로도 보이는 ‘독도에 가보셨나요’
독도의 속살을 우리는 얼마나 보았을까? 어떻게 생겼는지, 그곳에는 무엇이 있는지. ‘독도는 우리 땅’ ‘홀로 아리랑’ 노래 속의 독도가 아니라, 동도 서도가 달랑 서있는 독도가 아니라, 잠깐 내려 30분만 볼 수 있는 독도가 아니라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 1-96번지 천연기념물 제336호(명칭: 독도천연보호구역) 독도에 진정 가보고 싶다.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이 독도인 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168.5m의 우뚝한 봉우리 대한봉이 서있고 사철나무, 해국, 나리꽃이 흐드러지게 피고지고 물골(천장샘)이 있는 큰(?)섬이 독도인 줄은 모른다. 독도를 갔지만 가본 게 아니다. 우리 땅임에도 2005년 3월 24일 이전까지는 출입이 제한되었으니 불과 15년 정도의 개방을 통해 알려진 게 전부일거다. 그것도 동도에 한해서 일반인 출입이 가능하도록 입도허가제(승인)를 신고제로 전환한 것이다. (장대하게 서있는 독도 제1봉 168.5m의 대한봉) 정박하고 30여분 동안 머물며 본 독도지만, 그 짧은 시간임에도 방문한 사람 모두가 애국자가 변해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부르는 풍경은 생경하기만 하다. 언제나 편하게 가고 싶을 때 가고 동도와 서도사이에 다리가 놓여 온전한 모두를 속속들이 보고, 알고 싶다는 것이 이번 콘서트 ‘독도를 가보셨나요?’가 주는 묵직한 메시지다. 독도 사랑 연구가 안동립씨는 말한다. 비바람치고 파도가 조그만 거세도 배가 정박을 못해 못 가는 독도가 아니라 언제나 갈 수 있는 독도가 진정 우리 땅 독도라고… 구글 지도에 독도라는 이름 하나만 표기되는 독도가 아니라 ‘대한봉’ ‘우산봉’ ‘천장굴’이 표기되는 당당한 독도에 가 보는 날이 빨리 오길 기원한다. 이런 꿈을 꾸며 독도 메시지를 오랜 전부터 전하려 작은 행사를 꾸준히 여는 이들이 있다. 10월 25일이 무슨 날인가요? ‘10 26’은 아는데 모르겠는데요… 10월 25일은 ‘독도의 날’이다. 이런 무심을 달래기 위한 독도평화민주콘서트가 올해도 열렸다. 지난 10월 서울특별시 생활속민주주의학습지원센터가 주최하고 문화예술기획 시선이 기획과 주관한 ‘독도에 가보셨나요’가 KT&G 상상마당 라이브홀에서 열렸다. 이 콘서트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인문학적 관점으로 바라 보고 독도를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한 행사로 독도의 지정학적 의미, 생태적 의미 등을 일깨우는 계기되었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이등병의 편지’ 등의 인기곡과 시인 윤동주의 ‘별을 스치는 바람’, 화가 이중섭의 ‘그 사내 이중섭’을 음반과 음악극으로 발표한 바 있는 가수 겸 작곡가 음유시인, 김현성씨는 독도를 주제로 한 노래를 만들어 매년 독도의 날 공연을 통해 독도 바로 알리기에 헌신하고 있다. 이 날 공연에서도 ‘독도찬가’와 고 김성도옹을 대상의 한 ‘독도는 할아버지의 집’ 등의 노래를 들려 주었다. <독도찬가> 동해바다에 불끈 솟아오르는 독도는 늠름 하구나 동도와 서도 마주 바라보면서 함께 사는 형제 섬이다 울릉도에서 네 얼굴이 보이고 오랜 우애가 바다처럼 깊구나…(중략) <독도는 할아버지의 집> 할아버지는 오늘도 통통배 타고 독도 앞바다로 나가신다 아침 해보다 더 일찍 일어나셔서 독도 앞바다로 나가신다 촛대바위로 뜨는 아침 해는 할아버지의 웃음처럼 맑고 손에서 잘 풀리는 낚시 줄에 싱싱한 방어가 걸리면 왔다 왔어 아주 큰 놈이야 크게 소리치며 아이처럼 즐겁다 독도는 할아버지의 집…(중략) (김현성씨의 곡 독도는 할아버지의 집) 독도 강연에서는 독도지도를 만든 지도 제작자 안동립씨가 오랜 세월동안 작업한 사진과 독도지도 제작후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독도에 수 차례 머물며 그곳에서 거주하는 고 김성도씨 부부와 생활하면서 촬영한 독도의 사계절의 다양한 모습, 독도의 자연경관을 보여주며 독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현재 대한봉 등 독도의 지역 명칭도 그가 만들었으며 김현성씨에게 독도 노래를 만들 때 ‘우리 땅’ ‘외로운 섬’ 등의 노랫말은 절대 사용하지 말라는 조언을 주기도 했다. (독도 연구가 안동립씨와 작곡가 김현성씨) 독도평화콘서트 외에도 올해 ‘독도의 날’ 행사들이 코로나19로 조용히 이어졌다. 독도가 속한 경상북도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동시에 독도 관련 행사를 진행했으며 24일 포스코 국제회의실에서 개최된 ‘독도관련 민간단체 워크숍’과 25일 울진군 죽변에서 아프리카 TV 주관으로 ‘독도 수호 특집 제38회 아프리카 TV 뮤지션을 소개합니다’ 등의 행사가 있었다. 또한 울릉군 독도박물관은 서울특별시교육청 마포평생학습관과 공동으로 10월 25일부터 12월 31일까지 독도박물관 중층 로비에서 독도를 주제로 한 캘리그라피 작품 전시 '독도, 이야기를 품다'를 개최하고 있다. 캘리그라피 작가 33명이 독도를 주제로 한 작품 15점은 원작으로, 18점은 디지털 액자로 전시되었다. '독도의 날'유래는 1900년 10월 25일 고종이 독도(석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정하는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로 공포해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대내외 공표한 날이다. 독도는 올해 개척(開拓) 183주년, 설군(設郡) 120주년이다. 개척은 이규원 검찰사가 울릉도와 독도를 조사 후 당시 고종에게 보고 후 재 개척령이 반포된 것을 기원으로 한다. 독도는 울릉도에서 불과 87.4㎞에 위치해 울릉도에서 육안으로 보이지만 영유권을 주장하는 다케시마(竹島)는 일본 땅 오키시마(隱岐島)에서 157.5㎞나 떨어져 있어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외로운 섬 하나라고 잘못 알려져 있는 독도(돌로 된 섬이란 뜻의 '돌섬'의 경상도 방언, 독섬을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쓰면서 독도가 되었다)는 151m 간격으로 있는 동도와 서도를 비롯해 무려 91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또한 1965년 3월부터 대한민국 국민 최종덕이 최초 거주한 이래로 김성도(2018년 작고) 부부와 독도경비대원, 등대 관리원, 울릉군청 독도관리 사무소 직원 등 약 40명이 상시 거주하고 있다. 또한 2005년부터 입도 허가제가 신고제로 바뀐 후 약 200만 명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다녀갔고 지금도 1일 평균 660명 이상이 방문하고 있다. 한편 우리가 대부분 사진으로 접한 화산섬, 돌섬이 독도가 아니라 사철나무가 서식하고 있는데 이는 독도에서 현존하는 수목 중 가장 오래된 나무로 독도에서 생육할 수 있는 대표적인 수종으로 천연기념물 제538호로 지정되었으며(2012. 10. 5) 국토의 동쪽 끝 독도를 100년 이상 지켜왔다는 영토적·상징적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문화재청, 2012) 독도에서 조사된 식물들은 대부분 초본이지만 사철나무, 왕호장근, 섬괴불나무, 동백나무,보리밥나무 등 5분류 군의 목본 식물도 서식하고 있다. 독도에서 자생하고 있는 식물종 중 원식생을 유지하는 식물종은 도깨비쇠고비, 땅채송화, 해국 등이 있다. 이들은 독도의 자연환경에 최적화된 분류군으로서 앞으로도 독도를 상징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식물종이라 할 수 있다(경상북도, 2010, 독도총서) 독도를 아십니까? 이제 우리는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한봉이 우뚝 서 있는 내 나라 땅 독도를 잘 안다고. 노래 가사로 아는 독도가 아니라 우리 국민들이 거주하고, 샘물이 있고, 돌섬이 아니라 사시사철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섬 독도를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다. 발리, 하와이처럼 신혼여행을 갈 수 있고, 갈라파고스처럼 야영도 하고, 동도 서도항에 정박해 스킨스쿠버도 할 수 있는 천혜의 관광지 독도에 가보는 날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