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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걷기 좋은 길, 화순곶자왈 생태숲
겨울 걷기 좋은 길, 화순곶자왈 생태숲
겨울이라 하기엔 애매한 곶자왈이다. 제주도의 허파인 곶자왈은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다는 게 장점. 화순곶자왈의 겨울을 느끼러 가보기로 하고 내가 정한 메인인 대표 2구간을 먼저 걷는다. 흔히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정문이 아닌 후문으로 어찌 이게 겨울이란 말이냐며 우린 천천히 걷고 멈추고를 반복한다. 초록에 자꾸만 눈길이 가고 살며시 만져보게 되던. 곶자왈에 생존해 있는 나무들은 이렇듯 돌멩이에 단단히 뿌리내려 잘도 버티며 살아간다 공룡발처럼~ 잠시 하늘을 올려다 보고. 오잉? 오늘도 내 눈에 똭~띈 목이버섯. 인증샷 몇 컷 찍은 후 채취했단. 우리가 흔히 잡채나 탕수육에만 들어가는 건 줄 알았는데 장아찌를 해서 먹으니 새로운 맛이더라는~ ㅋㅋ 이젠 정문 쪽으로도 가보기로 하며 설명을 덧붙였다. 남녀노소 누구든 걷기에 좋은 화순곶자왈은 사계절 모두 좋다는 것도. 콩난 콩짜개덩쿨이라고도 하는데 너무도 예쁘다. 아주 오래 전 예뻐서 깊은 곶자왈에서 돌멩이에 붙어있는 콩난을 집으로 데려가 키운 적이 있었는데 결국은 죽었다~ 그 뒤론 한 톨의 식물도 돌멩이도 집에 데려오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 누군가가 집어들면 '얘는 여기 있을 때만 생명이 있다'고 이야기하며 말리곤 한다. 송이석(스코리아)길과 자연 그대로인 곶자왈 길을 만나면? 당근.. 둘 다 걷는다. 자연스러움은 얼마나 좋은가? 걷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바람과 햇빛 그리고 새소리가 곶자왈의 주인공이다. 짧게 스며든 빛이 키워낸 이파리. 엉키고 또 엉키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곶자왈의 돌과 나무 그리고 아무렇게나 뻗어 나가는 덩쿨식물들 잠시 전망대에 올라 한라산과 반대편 바다 쪽 산방산 형제섬... 멀리 마라도를 본다. 전망대 아랜 평화롭게 한우들이 해바라기를 하고. 이곳은 화순리 마을공동목장이다. 해서 우리가 곶자왈을 걸을 땐 아니온 듯 조용히 다녀가야만 한다는 거... 때론 소떼와 마주하게 되는데 그걸 불만사항으로 여기면 곤란하다 곶자왈의 주인은 당연히 소들이기 때문에. 2구간을 나와 3구간 쪽으로 들어갔다. 붉은 송이가 참 기분좋게 한다. 화순곶자왈은 1,2,3구간이 있는데 1구간은 아주 짧은 구간이며 고사리철엔 고사리를 꺾을 수 있고 탱자꽃 필무렵엔 그 향기가 환상이며 귀하신 할미꽃과도 만나는 곶자왈의 엑기스같은 곳이다. 허나 사람들은 모르기도 하지만 거의 찾지 않는다. 그리고 이곳 3구간은 산방산을 바라보며 걷는 구간이라 할 수 있는데 조각공원을 볼 수도 있고. 또한 산방산 용머리해안 지질트레일 B코스다. A, B코스 다 걸어봤는데 아주 좋다. 3구간은 좀 건조한 느낌의 곶자왈이며 2구간에 비해 해가 많이 들어 환한 느낌 이렇게 드넓은 공간도 있으며...ㅎ 여기선 순비기 열매를 한 움큼 따왔다. 으아리꽃 열매와 남오미자열매도 볼 수 있었고. 콩난과 양치식물인 고사리류는 초록초록했단. 산방산, 용머리해안 지질트레일 B코스 안내 리본은 펄럭이는데...걷는 이는 없다 참 좋은데... 어쩌면 지금이 딱 걷기 좋은데 말이지. 그렇담 다시 한번 지질트레일 구간을 전체적으로 한번 걸어봐?? 화순곶자왈생태탐방숲길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2045
전남 곡성군, 영화는 '곡성(哭聲)' 실제 지명은 곡성(谷城)
전남 곡성군, 영화는 '곡성(哭聲)' 실제 지명은 곡성(谷城)
(출처: 영화 곡성 포스터, 곡성군 이미지를 고려해 한자를 표기했다. 곡성군 주민들은 영화 '곡성(哭聲)'때문에 한 때 지역 이미지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했다고 한다. 실제로 영화도 전남 곡성군에서 촬영해 마을이름 진짜 곡성(哭聲)인가하는 오해를 살만했다. '울음(곡) 소리'라는 뜻의 영화 '곡성(哭聲)'을 '깊은 골자기와 높은 산의 고개'라는 한자 뜻의 '곡성(谷城)' 지역에서 촬영한 것은 당시 감독의 의도적인 중의적 전략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영화로 주목을 받아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사진: 곡성군 보도자료, 곡성 증기 미니열차) 곡성군(谷城郡)은 전라남도 동북부에 있는 군이다. 동쪽으로 구례군, 서쪽으로 담양군, 북쪽으로 전라북도 남원시, 순창군과 접하며 남쪽으로는 전라남도 순천시, 화순군과 경계를 이룬다. 곡성읍은 섬진강 곡성분지의 중앙부에 위치해 있으며 군청 소재지이다. 곡성은 농업 위주의 1차 산업구조로 취약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었고 인구도 이농 현상과 노령화가 가속화되는 대표적 농촌 지역이다. 볼거리·놀거리·특산품이 없고 바다와도 멀리 떨어진 산간지역으로 정부의 광역개발권역 또는 여타 개발 축에도 포함되지 않은 배후지로 곡성이라는 지명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이후 폐철길 구간 중 섬진강을 따라가는 13.2km를 관광자원으로 재활용하고 철로 자전거가 인기를 끌었고 영화 곡성의 촬영지로서 구 곡성역 등이 입소문 나면서 많은 관광객이 곡성을 찾기 시작했다. 전남 곡성군은 삼국시대 백제 문주왕 때(서기 475)에 군명을 욕내(欲乃, 浴川)라 칭했다고 한다. 이후 통일신라시대 때인 고려초 승평군(昇平郡, 현 순천시)에 속하였다가 현종 9년(서기 1018)에 나주목의 속군으로 이속 되었다. 조선시대 태종 13년(서기 1413)에 현으로 개칭하였으나 정유재란(서기 1597) 시 남원 도호부에 합속되었다가 광해군 원년(서기 1609)에 다시 분리 독립해 현재 명칭인 곡성현으로 복설되었다. 근대에는 광무 3년 (서기 1899)에 행정구역 명칭을 곡성군으로 개칭하여 군수를 두었고 갑인년(서기 1914)에 담양, 구례, 순천, 남원 일부를 편입하여 11개면 126리로 개편되었다.
세계 화장실 문화 정립시킨 WTA 초대회장 ‘Mr. Toilet’ 심재덕 11주년 추모식
세계 화장실 문화 정립시킨 WTA 초대회장 ‘Mr. Toilet’ 심재덕 11주년 추모식
눈 감고 코 막고 외면하던 곳, 님의 손길 닿으니 향기나는 세상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미스터 토일렛’ ‘심재덕’ 선생님! (장사익 씀) 화장실을 문화로 승화시킨 ‘Mr. Toilet’ 심재덕. 2020년 1월 14일 그의 11주기 추모식이 수원시 이목동 해우제 문화센터에서 열렸다. 평소 그의 인간성을 알 수 있듯이 이목동 배나무골 주민, 수원지역 국회의원, 시의원, 시 관계자, 예술인, 지인 등이 11년이 지난 지금도 예전처럼 모여 그를 추모하고 있는 것이다. 고인과는 남다른 인연이 있어 그의 장례식에서 ‘하늘가는 길’을 불러주었던 노래꾼 장사익씨의 글에서 알 수 있듯이 더럽다고 외면하던 변소를 향기나는 화장실 문화로 바꾸기 위해 자신의 몸까지 바쳐가면서 평생 화장실을 생각했다. 그래서 스스로를 미스터 화장실이라 불렀다. 화장실 문화운동에 매진하기 위해 자신의 몸도 돌보지 않아 아이러니 하게도 전립선 암으로 돌아갔다. 자신의 몸을 불태워 세계화장실 협회를 살려 낸 것이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이 날도 참석해 무반주로 천상병시인의 '귀천'을 불러 주었다) 사실 그는 화장실문화 전도사가 아니다. 국회의원, 수원시장이 그의 본문이었다. 그럼에도 그런 이름보다는 미스터 토일렛으로 불려질 바랐고 사후에도 그렇게 기억되길 원했다. 생전에 그를 만났을 때 비위생적인 화장실로 인해 세계 각국의 후진국들이 각종 전염병 발병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하며 화장실 개선만으로도 인간들의 위생이 획기적을 개선될 수 있디면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수만의 아이들을 살릴 수 있다고 역설하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 실제로 그는 자기 집을 세계 최초, 최대 변기 모양으로 만들어 살 정도로 화장실 문화에 대한 집념이 대단했다. ‘근심을 덜어내는 집’이라는 이름의 ‘해우재(解憂齋)’(지하 1층, 지상 2층)는 원래 심 전 시장이 30여 년간 살아왔던 집을 2007년 변기모양으로 지었는데 2009년 세상을 떠나면서 수원시에 기증했다. 수원시는 해우재를 화장실문화 전시관으로 만들고 일대를 화장실문화 공원으로 만드는 등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며 수원시 화장실 문화 전시관으로 운영 중이다. (사진: 해우재문화센터) 뒷간, 변소로 불리며 냄새나고 지저분한 공간이던 공중화장실을 민선 초대 수원시장, 심재덕 미스터 토일렛의 노력으로 오늘날에 이르렀다. 2002 한·일 월드컵 경기 유치를 위해 시·군간의 경쟁이 치열하던 1996년 당시 심재덕 수원시장은 화장실 TF팀을 만들었다. 또한 1999년에는 한국화장실협회를 만들어 국내 화장실 문화 개혁을 이끌었다. 오늘날 고속도로와 주요 관광지의 모습이 그의 노력이 시발점이 되었다. 이후 2007년 11월에는 화장실 전문 국제기구인 세계화장실협회(WTA)를 창립해 초대 회장으로 취임하고 세계로 화장실 문화 확산을 해 나가 결실을 맺었다. 현재는 염태영 수원시장이 고인의 유지를 따라 2014년 세계화장실협회 회장을 맡아 심 전 시장이 수원시에 뿌린 화장실 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 WTA는 위생이 열악한 개도국에 ‘희망의 화장실 프로젝트’를 통해 16개국에 33개 공중화장실 설치를 지원했다. 또한 세계화장실 기술표준 제정과 UN, KOICA 등 국내외 국제기구·민간기구와 협력사업 등으로 세계 화장실 문화 확산에 우리나라가 자랑스런 리더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노력의 결실로 고인이 그토록 원했던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의 ‘특별 협의 지위(Special consultative status)’를 획득하며 글로벌 비정부기구로서의 위상을 갖췄다. '영원한 수원시장'으로 수원시민에게 아직도 기억되고 있는 심재덕 전 시장을 기리기 위해 심재덕기념사업회(회장 선정선)는 수원 곳곳에 남아 있는 ‘심재덕의 발자취를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으로 심 전 시장이 복원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킨 화성행궁을 시작으로 화홍문, 방화수류정, 연무대, 광교산 반딧불이 화장실, 수원 월드컵 경기장, 해우재를 둘러보는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특히 반딧불이 화장실은 수원시가 세계화장실문화의 메카라는 호칭을 얻은 상징적인 건물이다. 매년 1월 14일이면 수원시 이목동 배나무골에서는 Mr. Toilet을 기리는 추모제가 계속 열릴 것이다. 그는 ‘영원한 수원시장 심재덕’이다. (사진: 심재덕기념사업회)
한국의 인간 문화재 - 승무/살풀이
한국의 인간 문화재 - 승무/살풀이
자신의 분야에서 높은 수준의 기예를 발휘하기 위해 생전에 기울인 노력과 그들이 이룬 예술적인 성취는 전 사회가 지닌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 된다. 이러한 다양한 무형의 문화유산 가운데 민족문화의 노른자위가 되는 소중한 것들을 선별·지정하여 그를 보존하기 위해 지정한 것이 무형문화재이다. 정부는 1997년 음악, 무용, 연극, 놀이와 의식, 무예, 공예, 음식 등 여러 분야에서 103종목의 중요무형문화재와 180명의 보유자를 지정해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분들이 해마다 세상을 떠나고 있어 안타깝게도 전승이 끊겨 그 살아 있는 기예를 다시는 볼 수 없어지게 되는 일도 많다. 여기서는 국가에 의해 지정된 인간문화재 중에서,명인에서는 음악· 무용· 연극· 놀이와 의식, 무예 등 공연예술 분야에서 전통을 이어가는 예인들을, 장인에서는 입사장· 염색장 등 우리의 물건을 만들어 온 공예의 달인들을 소개한다. 승무/살풀이 이매방 (사진: 덕담 박승우) 이매방(李梅芳, 1926년 5월 5일생)옹은 전남 목포의 전통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당시 할아버지 이대조씨는 목포 권번에서 승무와 고법을 가르치던 명무, 명고수였다. 그는 목포 권번에서 할아버지에게서 검무, 승무, 법무를 차례로 학습해 갔다. 판소리도 겸하려 했으나 상성이 터지질 않아 할아버지는 그에게 "평생 춤만 춰야 한다"고 했다 한다. 그 후 7 ~8년간 목포 권번에 있으면서 어린 동기들을 가르치고 광주 권번을 오가며 박여구 선생에게 승무와 북을, 이창조 선생에게선 검무를 각각 익혔다. 그렇게 익힌 그의 승무는 6대째 계보를 이룬다. 목포공고 졸업 후 임방울 단체서 승무를 추기도 하고 23세 때는 군산에 무용연구소를 개설하여 지금까지 이어 내려져 오고 있다. 1987년 인간문화재 제27호(승무)로, 그리고 1990년에는 제97호(살풀이춤)로 지정되었다. 이애주 (사진: 덕담 박승우) 이애주(李愛珠, 1947년 10월 17일생)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유치원 때부터 무용에 소질이 있었다고 하는 그는 초등학교 입학 후 곧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당시 국립국악원에서 무용을 담당하고 있던 김보남에게 맡겨졌다. 이때 춤동작의 기본인 승무는 물론 궁중정재와 춘앵무, 검무까지 익히게 된다. 이후 서울대 체육교육과, 대학원을 졸업한 뒤 문리대 국문과에 학사 편입하여 다시 공부하며 전통 민속춤에 대한 이론의 바탕을 쌓게 된다. 1969년 한영숙(1920~1989)을 만나 승무 예능보유자인 그녀에게 완판 승무를 익히게 되면서 이애주의 춤판 인생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1970년대 들어 그는 다시 다섯 분의 스승을 만나 춤사위를 살찌우게 되며 1974년 '이애주 개인 무용 발표회' 이후 수많은 발표회와 해외 공연을 해오고 있다. 현재 승무의 악보화를 위한 채보작업도 구상중인 그는 1996년 12월 승무/살풀이춤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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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걷기 좋은 길, 화순곶자왈 생태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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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화장실 문화 정립시킨 WTA 초대회장 ‘Mr. Toilet’ 심재덕 11주년 추모식
세계 화장실 문화 정립시킨 WTA 초대회장 ‘Mr. Toilet’ 심재덕 11주년 추모식
눈 감고 코 막고 외면하던 곳, 님의 손길 닿으니 향기나는 세상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미스터 토일렛’ ‘심재덕’ 선생님! (장사익 씀) 화장실을 문화로 승화시킨 ‘Mr. Toilet’ 심재덕. 2020년 1월 14일 그의 11주기 추모식이 수원시 이목동 해우제 문화센터에서 열렸다. 평소 그의 인간성을 알 수 있듯이 이목동 배나무골 주민, 수원지역 국회의원, 시의원, 시 관계자, 예술인, 지인 등이 11년이 지난 지금도 예전처럼 모여 그를 추모하고 있는 것이다. 고인과는 남다른 인연이 있어 그의 장례식에서 ‘하늘가는 길’을 불러주었던 노래꾼 장사익씨의 글에서 알 수 있듯이 더럽다고 외면하던 변소를 향기나는 화장실 문화로 바꾸기 위해 자신의 몸까지 바쳐가면서 평생 화장실을 생각했다. 그래서 스스로를 미스터 화장실이라 불렀다. 화장실 문화운동에 매진하기 위해 자신의 몸도 돌보지 않아 아이러니 하게도 전립선 암으로 돌아갔다. 자신의 몸을 불태워 세계화장실 협회를 살려 낸 것이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이 날도 참석해 무반주로 천상병시인의 '귀천'을 불러 주었다) 사실 그는 화장실문화 전도사가 아니다. 국회의원, 수원시장이 그의 본문이었다. 그럼에도 그런 이름보다는 미스터 토일렛으로 불려질 바랐고 사후에도 그렇게 기억되길 원했다. 생전에 그를 만났을 때 비위생적인 화장실로 인해 세계 각국의 후진국들이 각종 전염병 발병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하며 화장실 개선만으로도 인간들의 위생이 획기적을 개선될 수 있디면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수만의 아이들을 살릴 수 있다고 역설하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 실제로 그는 자기 집을 세계 최초, 최대 변기 모양으로 만들어 살 정도로 화장실 문화에 대한 집념이 대단했다. ‘근심을 덜어내는 집’이라는 이름의 ‘해우재(解憂齋)’(지하 1층, 지상 2층)는 원래 심 전 시장이 30여 년간 살아왔던 집을 2007년 변기모양으로 지었는데 2009년 세상을 떠나면서 수원시에 기증했다. 수원시는 해우재를 화장실문화 전시관으로 만들고 일대를 화장실문화 공원으로 만드는 등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며 수원시 화장실 문화 전시관으로 운영 중이다. (사진: 해우재문화센터) 뒷간, 변소로 불리며 냄새나고 지저분한 공간이던 공중화장실을 민선 초대 수원시장, 심재덕 미스터 토일렛의 노력으로 오늘날에 이르렀다. 2002 한·일 월드컵 경기 유치를 위해 시·군간의 경쟁이 치열하던 1996년 당시 심재덕 수원시장은 화장실 TF팀을 만들었다. 또한 1999년에는 한국화장실협회를 만들어 국내 화장실 문화 개혁을 이끌었다. 오늘날 고속도로와 주요 관광지의 모습이 그의 노력이 시발점이 되었다. 이후 2007년 11월에는 화장실 전문 국제기구인 세계화장실협회(WTA)를 창립해 초대 회장으로 취임하고 세계로 화장실 문화 확산을 해 나가 결실을 맺었다. 현재는 염태영 수원시장이 고인의 유지를 따라 2014년 세계화장실협회 회장을 맡아 심 전 시장이 수원시에 뿌린 화장실 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 WTA는 위생이 열악한 개도국에 ‘희망의 화장실 프로젝트’를 통해 16개국에 33개 공중화장실 설치를 지원했다. 또한 세계화장실 기술표준 제정과 UN, KOICA 등 국내외 국제기구·민간기구와 협력사업 등으로 세계 화장실 문화 확산에 우리나라가 자랑스런 리더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노력의 결실로 고인이 그토록 원했던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의 ‘특별 협의 지위(Special consultative status)’를 획득하며 글로벌 비정부기구로서의 위상을 갖췄다. '영원한 수원시장'으로 수원시민에게 아직도 기억되고 있는 심재덕 전 시장을 기리기 위해 심재덕기념사업회(회장 선정선)는 수원 곳곳에 남아 있는 ‘심재덕의 발자취를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으로 심 전 시장이 복원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킨 화성행궁을 시작으로 화홍문, 방화수류정, 연무대, 광교산 반딧불이 화장실, 수원 월드컵 경기장, 해우재를 둘러보는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특히 반딧불이 화장실은 수원시가 세계화장실문화의 메카라는 호칭을 얻은 상징적인 건물이다. 매년 1월 14일이면 수원시 이목동 배나무골에서는 Mr. Toilet을 기리는 추모제가 계속 열릴 것이다. 그는 ‘영원한 수원시장 심재덕’이다. (사진: 심재덕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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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인간 문화재 - 승무/살풀이
한국의 인간 문화재 - 승무/살풀이
자신의 분야에서 높은 수준의 기예를 발휘하기 위해 생전에 기울인 노력과 그들이 이룬 예술적인 성취는 전 사회가 지닌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 된다. 이러한 다양한 무형의 문화유산 가운데 민족문화의 노른자위가 되는 소중한 것들을 선별·지정하여 그를 보존하기 위해 지정한 것이 무형문화재이다. 정부는 1997년 음악, 무용, 연극, 놀이와 의식, 무예, 공예, 음식 등 여러 분야에서 103종목의 중요무형문화재와 180명의 보유자를 지정해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분들이 해마다 세상을 떠나고 있어 안타깝게도 전승이 끊겨 그 살아 있는 기예를 다시는 볼 수 없어지게 되는 일도 많다. 여기서는 국가에 의해 지정된 인간문화재 중에서,명인에서는 음악· 무용· 연극· 놀이와 의식, 무예 등 공연예술 분야에서 전통을 이어가는 예인들을, 장인에서는 입사장· 염색장 등 우리의 물건을 만들어 온 공예의 달인들을 소개한다. 승무/살풀이 이매방 (사진: 덕담 박승우) 이매방(李梅芳, 1926년 5월 5일생)옹은 전남 목포의 전통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당시 할아버지 이대조씨는 목포 권번에서 승무와 고법을 가르치던 명무, 명고수였다. 그는 목포 권번에서 할아버지에게서 검무, 승무, 법무를 차례로 학습해 갔다. 판소리도 겸하려 했으나 상성이 터지질 않아 할아버지는 그에게 "평생 춤만 춰야 한다"고 했다 한다. 그 후 7 ~8년간 목포 권번에 있으면서 어린 동기들을 가르치고 광주 권번을 오가며 박여구 선생에게 승무와 북을, 이창조 선생에게선 검무를 각각 익혔다. 그렇게 익힌 그의 승무는 6대째 계보를 이룬다. 목포공고 졸업 후 임방울 단체서 승무를 추기도 하고 23세 때는 군산에 무용연구소를 개설하여 지금까지 이어 내려져 오고 있다. 1987년 인간문화재 제27호(승무)로, 그리고 1990년에는 제97호(살풀이춤)로 지정되었다. 이애주 (사진: 덕담 박승우) 이애주(李愛珠, 1947년 10월 17일생)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유치원 때부터 무용에 소질이 있었다고 하는 그는 초등학교 입학 후 곧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당시 국립국악원에서 무용을 담당하고 있던 김보남에게 맡겨졌다. 이때 춤동작의 기본인 승무는 물론 궁중정재와 춘앵무, 검무까지 익히게 된다. 이후 서울대 체육교육과, 대학원을 졸업한 뒤 문리대 국문과에 학사 편입하여 다시 공부하며 전통 민속춤에 대한 이론의 바탕을 쌓게 된다. 1969년 한영숙(1920~1989)을 만나 승무 예능보유자인 그녀에게 완판 승무를 익히게 되면서 이애주의 춤판 인생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1970년대 들어 그는 다시 다섯 분의 스승을 만나 춤사위를 살찌우게 되며 1974년 '이애주 개인 무용 발표회' 이후 수많은 발표회와 해외 공연을 해오고 있다. 현재 승무의 악보화를 위한 채보작업도 구상중인 그는 1996년 12월 승무/살풀이춤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