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고의 라이벌 열전, 남진 vs 나훈아

기사입력 2020.06.11 10:14 조회수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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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나훈아.jpg

(주간경향에 실린 세운상가 싸롱 아마죤 광고) 

 

'라이벌'! 일반적으로 연예계에서 매체들이 만들어 내는 경쟁구도이며 상호 시너지를 일으켜 흥미가 배가되기도 한다. 오늘은 대한민국 가요사에서 최고의 라이벌로 서로의 존재감을 가졌던 '남진과 나훈아' 그 숙명적인 이야기를 풀어본다.

 
남진 본명 김남진, 1945년 해방둥이, 목포에서 금수저 물고 탄생, 부친은 목포일보 발행인이었고 국회의원도 역임. 남진은 당시로는 흔치않게 한양대 연극영화과 진학한 후 처음에는 팝가수로 데뷰했으나 연짱 실패를 했고 어느날 박춘석 선생 만나서 '가슴아프게' 불러 대박을 친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바다가~" 이어 '그대여 변치마오' '젊은 초원' '마음이 고와야지' '님과 함께' 등 연이어 히트를 치며 최고 인기가수에 오른다.
 
특히 1960년대 후반 미국의 대표적인 팝스타의 의상과 춤을 따라해서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로 불릴 정도였다. 당시에 금수저 자식들이 병역을 기피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해병대 청룡부대 근무하며 월남전에도 참전했고 영화 ’국제시장‘에서 잠시 그의 모습이 유쾌하게 보이기도 한다.
 
인기 절정의 순간에 '윤복희'와 결혼하는데 그런데 윤복희는 당시 재혼이었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면~" '부모'라는 노래를 불렀던 '유주용'과 첫번째 결혼을 했으나 '윤복희'가 '유주용'과 싸우고 홧김에 '남진'과 바람 피우고 그리고 스캔들이 났다고 하여 재혼한 것이 정설로 남아 있다. 그리고 남진은 약 10년간 미국에서 생활하며 공백기간을 갖는다. 그러나 다시 등장해 '빈잔' '둥지'등을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재기했고 요즘도 꾸준한 활동을 이어 온다.
 
다음으로 나훈아, 본명 최홍기, 1947년생이라고도 하지만 1950년생이라는 주변의 주장이 더 많다. 고향은 부산 출신으로 흑수저는 아니더라도 스탠레스 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는데 부친은 자그마한 무역업을 했다고 한다. 15세에 상경하고 서라벌 고등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17세에 오아시스레코드와 전속계약을 하고 곧이어 '사랑은 눈물의 씨앗'으로 대박을 치지만 만년 2등이었다. 676869년 가수왕을 뽑는데 계속해서 남진이 1등을 한다.
 
여기서 시민회관 칼부림 사건이 일어나는데 제대한 남진이 시민회관에서 공연을 하자 이에 질세라 나훈아도 시민회관 공연을 하면서 양측에서 긴장감 조성되고 라이벌의 양상에 영남 호남의 지역주의적 루머가 난무하기도 한다. 1972년 나훈아의 리사이틀에 남진의 사주를 받았다는 한 남자가 무대위로 올라 깨진 사이다병으로 나훈아를 피습했고 72바늘을 꿰매는 수술을 하는데 그러나 해프닝으로 끝난다.
 

남진나훈아2.jpg

(사진: kbs 가요무대 유튜브 캡처)
 

혹자는 어수선한 정치적 문제를 덮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조작사건의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고 한다. 1972년에 72바늘, 그리고 얼마후 나훈아는 백마부대 정훈대위로 베트남 위문공연을 떠나며 이 사건은 일단락된다.

 

그 이후 당시 최고의 여배우' 김지미'와 전격 결혼을 발표하는데 대한민국 연예사에서 가장 쇼킹한 뉴스로 기록된다. 몆년동안 조용히 살더니 또 이혼하고 서로의 길로 돌아간다. 그로부터 나훈아는 '잡초' '무시로' '대동강 편지' '울긴 왜울어' '영영' 그리고 대형콘서트 위주의 활동을 하며 '공연의 황제'로 등극한다.

 

나훈아를 둘러싼 얘기들은 참으로 많다. 그중의 하나로 나훈아가 젊은 여배우와 스캔들이 났고 야쿠자에게 거시기를 훼손당하는 보복을 당했다고 주장하는데 곧바로 나훈아는 사실해명을 한다. 수십명의 기자들 앞에서 바지를 내리려하더니 결국 뜸만 들이다가 내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남진은 60여편 나훈아는 20여편 영화에 출연한 명실상부 배우이기도 했는데 그때는 그랬다. 방송사에서 남진과 나훈아의 듀오 공연을 시도한 적이 여러번 있었지만 결국 두사람은 한무대에 오르지는 않았다. 역설적으로 라이벌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세월이 지나 한번쯤은 시도할만한 가요사의 빅 이벤트임에는 분명하다.


이홍주프로필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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