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세에 옥사한 일제 저항시인 윤동주

기사입력 2022.04.26 07:48 조회수 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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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1917-1945)

 
윤동주는 오늘날까지도 한국인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일제 말의 저항시인이다.
 
윤동주는 북간도 명동에서 태어나 용정의 은진중학교에 입학하여 평양의 숭실학교로 전학하였다가 다시 용정으로 돌아가 광명학교를 졸업했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가 도시샤대학 영문과 재학중, 귀향 직전에 독립운동에 관련된 혐의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하던중 광복을 앞둔 1945년 2월, 28세의 나이로 옥사한다.
 
그가 죽은 뒤 1948년에 그의 동지들이 그가 남긴 원고들을 모아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시집을 간행했다. 이 시집이 세상에 나오자 그는 비로소 일제 말기의 저항 시인으로서 유명해졌다.
 
그의 시는 청년기의 고독감과 정신적 방황, 조국을 박탈당한 비애, 그리고 어두운 시대를 살면서도 자신의 명령에 따라 순수하게 살아가려는 의지 등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역사적 경험으로 확장함으로써 한 시대의 삶과 의식을 노래하였으며, 나아가 특정 시대, 사회의 역사적 경험을 인간의 보편적 문제로 확장함으로써 폭넓은 공감대에 도달하고 있다. 대표 작품으로는 '서시', '십자가', '별 헤는 밤', '슬픈 족속', '자화상' 등이 있으며 모교인 연세대학교 교정에 윤동주의 시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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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 Dongju (1917-1945)
 
Yun Dongju, a poet from the period of Japanese colonization, is still deeply respected by Koreans today.
 
Yun was born in the North Kando region and he graduated from Soongsil School in Pyongyang and later, from the department of literature, Yonhee School (the current Yonsei University) in 1941. The following year, he went to Japan, and studied English literature at Tosisha University. Just before returning to Korea, he was arrested by the Japanese police on accusations of participating in the independence movement. He died in prison in Fukuoka, at the age of 28. This was in February 1945, just a few months before the liberation of Korea.
 
After his death, his comrades collected his drafts and published a poetry book entitled 'Sky, Wind, Star and Poem' in 1948. After its publication, Yoon became famous as a resistance poet of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Yun's poems talk about loneliness and struggle in his days as a youth, the sorrow of losing a homeland, and a desire to live a pure and innocent life in spite of the grim times. He extended his personal experiences to historical facts, and reflected the life and thoughts of a period. Furthermore, he expanded on the historical experiences of that period to pose the universal questions of mankind. Among his best known works are 'The prologue,' 'The cross,' 'Counting the stars,' 'Sad clan' and 'Self-portrait.' In Yonsei University there is a stone monument commemorating the poet.
 
윤동주 생애(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31년 명동소학교를 졸업하고 달라즈[大拉子] 중국인 관립학교를 거쳐 이듬해 가족이 용정(龍井)으로 이사하자 용정 은진중학교(恩眞中學校)에 입학.1935년 평양 숭실중학교로 학교를 옮겼으나 이듬해 신사참배 문제가 발생하여 문을 닫자 다시 용정으로 돌아가 광명학원(光明學院) 중학부에 편입, 졸업하였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 1942년 일본으로 건너가 릿쿄대학[立敎大學] 영문과에 입학, 같은 해 가을에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에 전학.1943년 7월 귀향 직전에 항일운동의 혐의를 받고 송몽규와 함께 일경에 검거되어 2년형을 선고받았다.
 
광복을 앞둔 1945년 2월 28세의 젊은 나이로 일본의 후쿠오카형무소[福岡刑務所]에서 생을 마쳤다.교우 관계는 연희전문학교 재학 중 함께 하숙 생활을 하였으며 윤동주의 자필 시집을 보관, 출간한 정병욱(鄭炳昱), 초간 시집에 추모시를 쓴 유령(柳玲), 연희전문학교 후배 장덕순(張德順), 고향 후배 문익환(文益煥), 평양 숭실중학교 동기 김형석(金亨錫) 등이 있다.처녀작은 15세 때 쓴 시 '삶과 죽음'·'초한대'이며 이 두 편의 수준이 상당한 것으로 미루어 습작은 이미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발표된 작품을 살펴보면 광명중학교 4학년 당시 간도 연길(延吉)에서 나온 '가톨릭 소년(少年)'에 동시 '병아리'(1936.11.)·'빗자루'(1936.12.)·「오줌싸개지도」(1937.1.)·「무얼 먹구사나」(1937.3.)·「거짓부리」(1937.10.) 등이 있다.연희전문시절에는 조선일보 학생란에 발표한 산문 '달을 쏘다', 연희전문학교 교지 문우(文友)에 게재된 '자화상'·'새로운 길', 그의 사후인 1946년 경향신문에 발표된 시 '쉽게 쓰여진 시' 등이 있다.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41년에 자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자필로 3부를 남긴 것이 광복 후에 정병욱과 윤일주에 의하여 다른 유고와 함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20세를 전후하여 10여 년간 전개된 시력여정(詩歷旅程)은 청년기의 고독감과 정신적 방황, 조국을 잃음으로써 삶의 현장을 박탈당한 동일성의 상실이 그 원천을 이룬다.
 
초기 시에서는 암울한 분위기와 더불어 동시(童詩)에 깃들인 유년적 평화를 지향하고자 하는 현실 파악 태도를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의 작품으로는 '겨울'·'조개껍질'·'버선본'· '햇빛·바람' 등이 있다.후기 시로 볼 수 있는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에 쓰여진 시들은 일제 말기의 암흑기를 살아간 역사 감각을 지닌 독특한 자아성찰의 시세계를 보여준다.
 
'서시'· '자화상'· '또 다른 고향'·'별 헤는 '」·'쉽게 쓰여진 시' 등이 이러한 경향을 보이고 있는 대표적 작품들이다. 윤동주의 시는 한마디로 어두운 시대를 살면서도 자신의 명령하는 바에 따라 순수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내면의 의지를 노래하였다.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역사적 국면의 경험으로 확장함으로써 한 시대의 삶과 의식을 노래하였다. 동시에 특정한 사회·문화적 상황 속에서 체험한 것을 인간의 항구적 문제들에 관련지음으로써 보편적인 공감대에 도달하였다. 유해는 고향 용정에 묻혔고, 1968년 연세대학교 교정에 윤동주 시비가 세워졌다.상훈과 추모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관에 보관중인 육필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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