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한국 & 사람기사 일본에 있는 가족을 그리며 외롭게 사망한 비운의 천재화가 이중섭2020/11/20 호는 대향(大鄕). 1916 년 9 월 16일 평안남도 평원군 생. 외가가 있는 평양의 종로보통학교에서 수학. 오산고등보통학교에서 예일대학교 출신의 미술교사 임용련(任用璉)의 지도로 일본 도쿄문화학원(분카학원, 文化學院) 미술과 입학, 재학 중인 1937년 일본의 자유 미협전에 출품하여 각광을 받으며 1940년에는 미술창작가협회전에서 협회상을 수상하고 1943년에도 역시 같은 협회전에서는 태양상(太陽賞)을 수상했다. 분카학원을 졸업하던 무렵 일본인 여성 야마모토[山本方子]와 1945년 원산에서 결혼하여 이 사이에 2남을 두었다. 1946년 원산사범학교에 미술 교사 부임. 북한 땅이 공산 치하가 되자 자유로운 창작 활동에... 한국 미술품 경매의 신기록을 쓰고 있는 수화 김환기화백2020/11/05 한국 미술품 경매의 신기록을 쓰고 있는 김환기화백은 동양의 직관과 서양의 논리를 결합하여 한국적 특성과 현대성을 동시에 표현한 한국의 대표적 현대화가이다. 김화기의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수화(樹話),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면 읍동리에서 태어났다. 1936년 일본대학 미술과를 졸업했는데 대학재학 시절에 아방가르드 미술연구소를 만들고 신미술 운동에 참여하는 등 초창기 한국 추상미술운동에서 선도적 역할을 했다. 광복 후에는 서울대와 홍익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모더니즘 운동을 전개하였고 1956년에는 파리로 건너가 3년간 서구미술을 체험했다. 1965년에 상파울루 비엔날레의 커미셔너로 출국하였다가 미국에 들렀다가 그대로 미국에 정착하여 사... 한국의 전통시장 (7) 경동약령시장2020/10/14 약령시장은 조선시대 효종 때부터 열린 한약재 전문 재래시장으로 청주, 대전, 공주, 대구, 전주, 원주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서울 제기동과 대구 남성로 일대만 남아있다. 약령시(藥令市)라는 명칭은 관(官)의 명(令)에 따라 개시(開市)했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라는 설이 있다. 서울 약령시는 과거 '제기동 약재시장'으로 불리기도 했고 '경동시장 한약재거리'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조선왕조 궁중음식(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의 혼과 맥을 잇다, 황혜성장인2020/09/29 (사진:덕담 박승우) 조선왕조 궁중음식의 혼을 되살려낸 황혜성선생.평생을 바쳐 궁중음식의 전통과 맥을 이어온 장인이다. 황혜성(黃慧性 본관은 평해 1920.7.5~2006.12.14)선생은 1920년 충청남도 천안에서 태어났다. 황선생은 처음부터 궁중음식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충청도에서 유일한 여성고등교육기관이었던 공주고녀를 나온 후 일본으로 유학해 후쿠오카시 지쿠시 여자고등학교(筑紫高等女学校, 현재의 지쿠시 여학원 중학교・고등학교)를 졸업한다. 이후 어머니의 배려로 교토여자전문학교(京都女子専門学校, 현재의 교토 여자 대학)의 가사과에서 일본 음식과 서구식 영양학을 공부했다. 5년간의 일본유학을 ... 국가무형문화재 제77호 유기장 기능보유자, 이봉주(1926~)2020/09/13 1926년에 평북 정주군 덕언면 납청에서 출생인 이봉주선생은. 작업 도중 튄 불똥에 시력을 잃어 한쪽 눈을 쓰지 못하지만 그의 메질은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1948년 월남한 이후 지금까지 방짜유기와 더불어 살아온 선생은 고집스럽게 놋그릇의 전통 맹맥을 지키고 있는데 무형의 전통이 결코 저절로 이어져 오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산 증인이다. 유기의 생명은 금속과 불, 이 두 가지 인연이 오늘날 선생을 있게 했다. 고향인 납청에선 정작 방짜유기 제작 기술을 배울 기회가 없었고 해방 후 22세 때인 1948년에 월남하여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서 납청 방짜유기 공장을 크게 하던 탁창여 선생과의 인연으로 ... 처음 1 2 3 4 5 6 7 8 9 10 다음 맨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