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에 대한 꿈

기사입력 2020.07.06 06:42 조회수 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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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칩거를 계기로 새로운 취미 생활이 생겼는데 그것은 바로 '유튜브 영상 제작'이다. 글을 쓰는 작가 생활을 시작하기 이전에는 명색이 마케팅 기획자로서 파워포인트 작성은 업무와 생계를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었는데 설마 거기에 슬라이드 녹화 기능이 있다고는 생각하지도 못하며 지냈다. 그 기능을 이용하면 촬영과 편집에 따른 인원과 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고 영상 제작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으니 뜻밖의 횡재를 했다.

 
물론 우리가 티브이나 유튜브에서 늘 접하는 촬영된 영상의 형태는 아니고 자신의 얼굴이 조그맣게 들어가며(이건 옵션이긴 하다) 강의 형식으로 구현된다는 약점 아닌 약점이 있다. 요즘 유튜브 콘텐츠는 '구독자(subscriber)'의 이목을 사로잡는 화려하고 현란한 영상과 자막 등이 대세여서 사진 배경(이미지)과 나레이션(목소리)의 단촐한 구성이 초라하고 볼품없어 보여 주눅이 들기도 한다. 이를테면 신형 외제 자동차들이 질주하는 고속도로에서 10년도 훨씬 넘은 국산 중고차를 몰고 느릿느릿 주행하고 있는 그런 느낌이랄까?
 
돈벌이로는 어차피 기대할 바 없으니 그저 맥이 빠지고 지쳐가는 생활에 작은 활력이 되기를 바라며 시작했다. (취미의 목적이 본래 그것 아니었던가) 어떤 소재로 영상을 제작할까 고민하다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장르는 '뮤지컬 리뷰'와 '창작자 인터뷰' 프로그램이다. 하나(리뷰)는 왠지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내용이고 다른 하나(인터뷰)는 언젠가 꼭 도전해 보고 싶었던 분야라서 그렇게 정리된 것 같다.
 
돌이켜보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터널에 갇힌 것처럼 오랜 시간 무력한 시절을 지낼 때 등대처럼, 십자성처럼 나를 지켜주고 이끌던 뮤지컬에 대한 헌정이야 그렇다 치자. 도대체 내 안에서 어떤 계기가 있었기에 다소 생뚱맞아 보이는 '인터뷰'에 대한 열의가 생기게 된 것일까? 솔직히 뮤지컬 작품은 남부럽지 않도록 관람을 했지만 사실 매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인터뷰 프로그램이나 기사는 눈여겨보거나 관심을 주지도 않고 살았는데 말이다.
 
대중 매체를 통해 일반인에게 널리 유명한 인터뷰어(interviewer)로는 손석희 사장(JTBC, 뉴스룸)과 김어준씨(TBS, 뉴스 공장) 정도가 아닐까 한다. 다른 이들에 비하여 각자 나름의 판세에 관한 탁월한 관점과 인터뷰이(interviewee)를 이끄는 특유의 스타일이 있기에 정상의 자리에 오른 사례이다. 개인의 능력을 널리 알릴 수 있는 매체 영향력(media power)이 뒷받침되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아 사안별로 여론을 형성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내가 요즘 창작자들을 만나서 그들의 삶과 애환을 듣고 그 내용을 담아 유튜브에 노출하는 행위의 종착점은 문화예술계의 언론이 되어 영향력을 가지고 싶다는 뜻일까 자문해 본다. 나의 내면에서 되돌아오는 진솔한 대답은 '그런 건 아니다'라고 한다. 나는 나 자신에게 다시 물어본다. '그럼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일을 하고 싶냐'라고.
 
젊은 시절, 필자가 운영하던 벤처 회사의 좋은 성과가 있었고 여러 매체에서 이를 소개하는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그러다가 급기야 대한민국 최고의 영향력을 지닌 KBS의 기획 프로그램에까지 소개되었다. 1999년 당시 시대의 화두는 '밀레니엄'이었고 <다음 밀레니엄에서 한국 경제를 이끌어 갈 차세대 젊은 벤처사업가 33인> 어쩌고 하는 거창한 타이틀의 취재 프로그램이었던 거로 기억한다. 당시 KBS의 수습기자를 하던 분이 오셔서 1시간 넘게 인터뷰를 했고 최종 방송은 1시간 프로그램의 한 꼭지로 3분 내외가 송출됐고 전국에서 300만 명 이상이 시청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방송이 나가고 우리 회사 앞에는 클라이언트들이 줄을 서서 찾아와 프로젝트를 의뢰했는데 주로 대기업의 담당 부서 직원들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매체의 무시무시한 위력과 편집의 달콤한 허상과 사람들의 언론에 대한 맹신 등을 체험하며 우리 회사는 높은 곳으로 비상했고 급하게 먹다가 체한 밥처럼 어느 순간 추락했다. 그 당시에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어떤 열기에 휩싸여 지나갔지만 이제 곰곰이 생각하면 <매체와의 인터뷰>는 결국 '성공'이라는 욕망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화려한 꽃과 같은 일이구나 라는 자각을 하게 된다. 매체는 항상 뉴스를 찾아 헤매고, 뉴스(기사)란 결국 대중들의 관심사에 부합해야 선택이 되어 살아남고 대중이 관심을 두는 여러 소재 중에 '성공'이라는 키워드는 절대로 상위권에서 벗어날 일이 없을 것이다.
 
필자도 젊은 시절에는 그 누구보다 '성공'이라는 마력의 성(城)에 들어가기를 희망했고 한때 크게 성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인생이 더는 정상(頂上)을 향한 상향의 등반길이 아니라 해지기 전에 왔던 곳으로 내려가야 하는 하산(下山)의 발걸음으로 지내는 요즘은 '성공'보다 더 애타게 원하는 것은 ‘성장’과 '성숙'이라는 점을 고백한다.
 
신체의 성장판은 이미 까마득한 예전에 닫혀버렸지만 눈도 침침해지고 말도 어눌해지는 퇴화에 맞서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마음의 성장판은 죽는 날까지 멈추지 않고 자라나기를 바란다. 젊어서는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안달이 나서 지냈지만 세상의 기준과 잣대로 성공과 실패를 재단질 하는 세태에서 벗어나 묵묵히 자신의 소신대로 창작의 길을 걸어가는 인생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나도 역시 그이(인터뷰이)와 함께 성숙한 자세를 지니며 품위 있게 살아가고 싶다.
 
이런 바람으로 유튜브에 채널을 개설하고 ‘人터미션’이란 이름을 붙였으니 필자와 같이 인생의 1막을 마치고 잠시 숨을 고르며 2막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보다 뜻깊고 보람찬 삶을 이어가고 싶은 발로에서 비롯된 일이었다고 또한 고백한다.
 

김광진프로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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