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 년전 사둔 책을 만났습니다

기사입력 2022.05.20 07:25 조회수 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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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터.jpg


저는

 
사람들이 누군가에 대해서 말할 때
 
그 사람이 그 사람 맞나 하는 의심을 가집니다
 

필요 이상으로 호들갑에 치장돼 있거나
 
심하게 일그러진 채 묘사되기 때문이지유
 

이런 식견이 생긴 건
 
요 정도 살다보니 언어에서 맛과 결
 
그리고 감각까지 저절로 터득하게 된 때문이지요
 
... ...
 
십수 년전 사둔 책을 만났습니다
 
'절터 그 아름다운 만행'
 

명산대찰 名山大刹에 관한
 
흔하디 흔한 책이 아니라
 
'그저 절터' 이야기입니다
 

또한 휘황찬란한 불상 이야기도 아닙니다
 

절터...
 
절터를 폐사지 廢寺址란 말로 표현하는 게 싫습니다
 

원래 그 자리로 돌아간 곳을
 
폐사지라니요
 

이 곳에서 만난
 
치장되거나 왜곡되지 않은 맑은 언어들을 인용합니다
 

옮기는 과정에서 작가의 의도와 달리
 
제가 변용한 부분도 있습니다
 

계곡물은 흘러 자신보다 낮은 강으로 가고
 
강물은 또 자신보다 더 낮은 바다로 흘러
 
강보다 더 넓고 깊으며 낮은 바다가 된다
 
낮은 곳으로 내려올수록 물은 깊어지고 넓어진다
 
...
 
사람에게 입은 상처는 풍경이 다스리고
 
풍경이 다스려 아문 상처를
 
또다른 사람들이 매만져 준다
 
...
 
은산절벽銀山絶壁은 바로 자신에게 있다
 
세상에 자신이 스스로에게 쌓은 벽만큼
 
높은 벽이 또 있을까
 
...
빛은 그림자를 만들고
 
그를 통해 자신을 돋보이게 만든다
 
그것은 그늘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진은 빛의 예술이라 하지만
 
사진은 빛과 그늘과 그림자의 예술이다
 

그러니 그들은 모두 주연일 뿐
 
어느 하나 조연은 없다
 

자연은 모래알이든 집채보다 큰 바위이든,
 
한 포기 풀이든 천 년 묵은 고목이든
 
그 가치는 모두에게 빛나는 아름다운 존재이다
...
 
나의 발자국을 따라 눈길을 걸어온 이가
 
나에게 배불리 음식을 나눠주고,
 
앞서서 이 길을 걸어간 사람을 좇아온 나에게
 
이미 사라지고 없는 선사禪師는 넘치도록
 
아름다운 삶을 일러주었다
 
○●
소박素樸
 

소素는 아무 것도 물들지 않은 흰빛을 이야기하고,
 
박樸은 사람 손을 타지 않은 통나무를 말하는 것이니
 
노자가 이야기한 소박은
 
꾸밈이 제거된 것이 아니라
 
아예 꾸밈이 더해지지 않은 존재 자체의
 
아름다움을 일컫는다
 
...
 
눈앞을 가파르게 막아선 산에서
 
하염없는 눈꽃송이 피었다간 후드득 떨어지고
 
이내 다른 나무에서 다시 핀다
 

그렇게 헌화공양獻花供養을 받으며 더없이
 
엄숙하게 빛난다
 

나는 겨울이 되면 늘 그 절터가 그리웠다
 

그 절에 머물렀던 그 많은 운수 납자들
 
또한 물끄러미 그 꽃을 바라보며
 
선정에 들었으리라
 
...
선비들의 두문杜門은 세상을 향해
 
문을 닫아거는 것으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행위이다
 

그것은 말을 하지 않을 뿐 글을 버리지 않으니
 
생각과 말을 포기한 것이 아닌
 
세상의 의견에 반反한 침묵이라 할 수 있겠으며
 
뜻이 같은 사람에게는 침묵하지 않는다
 

그러나
 
묵조의 침묵은 스스로를 향한 침묵이다
 
그저 스스로를 바라볼 뿐 자신에게나
 
누구에게도 입을 닫는 것이다
 
...
말을 잊은 곳에 남는 것이 풍경이런가
 
눈을 감은 곳에 떠오른 것이 풍경이런가
 
...
부처님에게로 가는 사람, 누군들 삶의 상처
 
없는 이가 있겠으며, 또 그에게로 가서
 
그 상처마저 아름답게 아물지 않는 이가
 
또 어디 있겠는가
 
○●○
버릇처럼 시대를 가늠하지 말고
 
양식을 따지지 말며
 
미루어 헤아리며 어루만져 보라
 

곳곳에 남아 있는 석조 유물을 보며
 
우리가 감탄해야 할 것은 그 자체의 가치가 아니라
 
그것을 새기던 사람들의 진정한 마음이다
 
...
 
아름다움과 추함은 언제나 함께 있으니
 
어느 하나로 인하여 다른 하나가 잠시 돋보인다
 
...
 
오만한 미술사의 접근 방식으로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가 아니라고 해서
 
허튼 눈짓으로 지나치지 말라
 

국보나 보물 앞에서 그것이 왜 아름다운지도
 
모르는 채 난감해본 적이 분명 있을 것이다
 

절터에서의 미술사적 눈길은
 
비록 형체조차 문드려져 알아볼 수 없거나
 
깨져서 초라한 주춧돌에게까지 소홀해서는 안 된다
 
...
 
절터에서 때론 지식이나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도 부처님은 용서하실 것이다
 

선사들의 말씀 몇 마디나
 
경전 몇 줄보다 절터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의
 
감동은 자신의 속 깊은 느낌으로 남아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
 
절터는 모든 곳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이다
 
정갈한 화병에 꽂힌 꽃이 금당에 놓이는 대신
 
논틀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억새가 헌화공양을 하고
 
법당이 있었을 곳에 제 마음껏 피어난 노란 들국화가
 
짙은 향기로 향 공양을 올리는 곳, 부처님이 앉으셨던
 
자리에는 새들이 머물다 떠나가고
 
사리 모신 탑에는 바람이 태어나고 사라진다 (계 속)
 


할머니가 이끄는 대로 탑이 있는 대로 가는데
 
그니가 해 주는 이야기를 듣는 내내
 
그리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절터 순례는 굳이 학술적이지 않아도 좋다
 

그것이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아온 이야기가 더욱
 
소중한 것이다
 
...
 
스스로 나를 움직이지 않으면 가 닿을 수 없는 곳,
 
고통을 이겨 내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바로 멀고도 먼 내 자신
 
...
 
보적선사가 자신의 모습을 그려오라 하자
 
한 제자가 물구나무를 섰다고 한다
 

스승의 가르침을 곧이곧대로 따르지 않고
 
자기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닫힌 내 마음을 열고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바람은 여린 풀이나 단단한 바위 그리고 강물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까지 만져준다
 
...
 
새벽같이 찾아들 국밥집엔 할머니가 있다
 

정갈한 구석은 어디에도 없고
 
밥을 먹고 있는 상머리에 낯선 이가 불쑥 앉아
 
새벽부터 소주잔을 권하는 곳
 
그래도 그 집을 찾는 까닭은 주인 할머니 때문이다
 

그니는 말 그대로 할머니다
 
○●
바람이 들려주는 경전 이야기
 
이지누의 '절터 그 아름다운 만행'과 함께 하다보면
 
무겁고 복잡한 생각들이 맑은 공기처럼 가벼워집니다
 

누가 말하기를
 
불교는 자비의 종교가 아니라
 
이해의 종교라고 했다는데
 
여기서 이해란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이해한다는
 
뜻이겠지요
 
... ...
 
한결 더 가벼워지고 싶은 날엔
 
여기 인용한 마음 구절 몇 개 들고
 
절이 없는 절 여행
 
그 곳에서 나를 이해하는 그 유익한 시간 한 자락
 
살포시 펼쳐보는 게 어떨까유 히이~♡

한근식프로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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